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뒤에 40년이 지났습니다. 그들은 이제 곧 들어갈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서 다시금 언약갱신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명기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낭독되고 그 앞에서 그들은 결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지계표는 말 그대로 땅의 경계를 정하는 것인데, 이것을 옮긴다는 것은 땅을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굉장히 무서운 죄로 단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 가지의 예를 보여주고 있는데, 바로 이스라엘 왕 아합입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이 탐나서 그 땅을 빼앗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결정적인 멸망을 선포해버리십니다(왕상 21:19). 아합의 아내 이방인 이세벨은 아합이 왕으로서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안에서는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가 되는지 아합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에 그들의 죄를 지적할 때, 호세아 선지자는 여러 가지 죄 중에서 바로 지계표를 옮기는 것을 지적하여 말씀하십니다(호 5:10). 결국 지계표를 옮기는 것은 그 백성의 생사와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 백성의 근본적인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백성은 누구입니까?
한마디로 하나님백성은 지계표를 옮기지 않는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소극적으로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극적인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하여 진정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적극적으로 감사의 영광을 돌리는 삶을 말합니다. 결국 지계표의 문제는 하나님백성의 기초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하나님께서는 생사의 문제를 걸어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백성과 세상 사람들의 인생이 ‘근본 기초’가 다릅니다. 욕망이 기초가 되느냐 아니면 만족과 감사가 기초가 되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감사하는 삶’이란 결단코 예의범절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방인들에게 감사란 예절의 문제요 사람됨의 문제일 수 있지만, 하나님백성들에게 감사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기초의 문제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영적인 온도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그것은 오직 우리에게 감사의 향기가 나고 있는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지계표를 옮길 때, 하나님은 그들 안에 감사의 향기가 말라있다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향기가 말랐다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으로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앞두고 한 여인이 비싼 향유를 부었습니다. 온 집안에 향유의 향기가 진동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비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향유의 향기이기 이전에 그 영혼 속에서 풍겨나는 감사의 향기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에서 감사의 향기가 풍겨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하나님백성의 향기가 진동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영혼의 영적 온도계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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