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어 구원의 은총을 맛보고 있는 사람이 다시 멸망 당할 수 있는가? 예수 믿는 자가 무서운 죄를 짓게 될 경우, 그는 회개하여 다시 용서받을 수 없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히브리서 6장의 본문은 우리에게 ‘그렇다’라는 답변을 주는 것 같다.
이와 유사한 교훈이 히브리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毁謗)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 하느니라”(막 3:28~29).
갈라디아서 5:19~21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예수 믿어 구원에 참예하게 된 신자는 멸망 당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게 되며,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면 용서받는다고 말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용서될까? 안 될까?
그렇다면 이 두 주장의 말씀은 어떤 조화를 이루는 것일까? 히브리서 본문에 대해 칼빈
(Calvin)의 말을 들어보자. “타락하는 것도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는 특수한 것으로 하나는 일반적인 것이다. 성도가 어떠한 일에 또 어떠한 길에서 그리스도인의 상태에서 타락하는 수가 많고 따라서 모든 죄는 타락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도적질, 위증, 살인, 술 취함, 간음 같은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죄인이 하나님께 어떤 한 가지 일로 범죄 한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그의 은혜를 거부함에서 오는 복음에서의 전적 이탈 또는 타락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떠나는 것이고 성령에 대해 범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점차적으로 미끄러져 나가 전적 파멸에 이르는 것이다.”
수많은 성서학자들은 이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으나 만족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대체로 타락한 자는 진실로 거듭난 자가 아니라 명목적으로 신자였다는 것과 거듭났다 해도 택함을 받지 못했다는 견해(Alford)를 내놓았다. 또한 본서가 당시 유대인 신자들에게 주어졌다는 독특한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회복할 수 없는 죄인은 배교(背敎)하는 사람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 성경에 보면 도저히 양립할 수 없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여럿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할 것은 있다. 그것은 성도의 삶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죄악의 문제는 매순간 그리고 날마다 보혈을 의지하여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해결될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라는 사죄(赦罪)의 약속을 붙들어야 한다.(큐티와 일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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