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2012

‘조심하면 중간은 갈 수 있었는데’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욥36:24)

잘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영적 지식 중에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에 대한 것이 없었다. 즉 문외한(門外漢)이었다. 이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들이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사람을 예수님 앞에 데려 왔다. 그는 삼중고(三重苦)를 겪고 있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그 사람을 고쳐줄 능력도, 지식도, 가능성도 전혀 없었다. 만약 그 사람을 바리새인들 앞에 데려 오면 당황할 뿐일 것이다. 성경은 너무나도 단순(simple)하게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를 고쳐주셨다.
그 벙어리가 말할 뿐만 아니라 보게 된 것이다. 말을 하고 보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이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얼마나 기뻐했을까?

이 일에 대해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듣고 말하기를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 하느니라”고 한 것이다.
바알세불이란 사단과 마귀의 이름으로도 그다지 익숙지 않은 용어이다. “바알세불”은 “바알”(Baal)과 “제붑”(zebub)의 합성어이다. “바알”(Baal)은 가나안 이교신 아하시야의 돌발적 사고와 죽음의 기사가 나오는 에그론의 블레셋인들의 제식에 나타났다. “제붑”(zebub), 또는 “파리들의 주(lord of flies)"라는 뜻이다.

“제붑”(zebub)에 나오는 ‘b’들은 모두 ‘v’로 발음되는 것으로 파리들이 붕붕거리는 것을 의성어 형태로 모방한 것이다. 제식용의 작은 금파리들이 가나안 유적의 발굴에서 재발견되고 있다. 유대인의 전통에서 바알세붑이라는 칭호는 사단을 나타내는 명칭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고대 이교적 칭호들과 마찬가지로 이 단어의 음은 불분명하게 바뀌어 바알세붑이 바알세불(Baalzebul) 또는 베엘세불(Beelzebul), 즉 “똥의 주”가 되었다. 바리새인이 말한 것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예사롭지 않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와 사단이 사단을 내어 쫓을 수 없는 영적 진리를 예를 들어 반박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 하였느니라”(마 12:28)고 하시면서 성령의 역사임을 분명히 하셨다.

성령을 훼방하면 죄 사함은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임을 밝히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32).

생각해보라 “파리의 주” 혹은 “똥의 주”라는 뜻을 가진 칭호를 우리 주님 메시야에게 사용하였다니. 그리고 주님의 능력을 한낱 귀신의 왕을 힘입은 것이라고 하다니. 잘 모르면 알려고 하고 그래도 모르면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예수님의 신적 권위(Divine authority)를 인정하는 것이 이만큼 중요하다.

오늘날에도 성령 하나님(God the Holy Spiriy)의 역사는 우리의 이성이나 지식을 뛰어넘어 역사하신다. 오, 주님의 신비에 대해 문외한(門外漢)이 되지 않게 하소서! (큐티일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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