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5/2009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그리스도의 재림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그리스도의 재림 
계시록 6장의 흰 말 탄자와 계12장의 흰 탄자는 어떻게 다른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께서 일곱 인으로 봉한 책 가운데 첫째 인을 떼실 때, 네 생물중에 하나가 천둥 같은 소리로 ‘와서 보라’ 고 하였다. 그때에 요한이 보니 흰 말 한 마리가 있고 그 위에 말 탄자가 활을 가지고 또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였다. 4대 병마 가운데 붉은 말은 전쟁 검은 말은 기근, 청황색 말은 사망이라는 데는 의가 없다 .그러나 흰 말에 대하여는 학자들 간에 그 해석의 일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주석저서 70권(국내40 국외30권)을 수집하여 비교대조 연구한 결과 흰 말을 그리스도 및 복음 운동으로 보는 견해는 34%이고 적그리스도로 보는 견해가24%였다. 이 흰 말이 예수님인데 적그리스도라고 한다든지 그와 반대로 적그리스도인데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대한 정답은 우선 원어상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하고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를 바로 적용시키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1. 먼저 스가랴6장의 흰 말 탄자와 계6장의 흰 말 탄자를 같은 사건으로 보면 안된다. 이것은 외형적(흰말)으로만 같을 뿐이지 그 내용상으로는 전혀 다르다. 다음과 같이 도표로 구분 하였다.


내용 스가랴5장 게시록6장 1 말의 출처 두 놋산 사이 어린 양이 첫째 인을 떼실 때 2 말의 수 백마들(복수) 한 마리 말 3 말의출동 자동적이다 피동적이다.생물이 ‘오라’고 외칠때 4 말의 사역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함 하나님의 심판(재난) 5 말의 방향 북방(흑마가 뒤를따름) 방향이 없고 적마가 뒤를 따름 6 말 탄 자 없음 말 탄자가 활을가지고 면류관이 있음 7 배 경 과거사건(이루어진 예언) 미래사건(미래에 이루어질 사건) 위에 나타나 있는 대로 단지 ‘희다’ 는 것 외에는 같은 점이 없다. 그러므로 슥6장의 흰 말과 맞추어 계 6장의 흰 말 탄자를 그리스도의 승리로 보는 견해는 지나친 오류라고 지적한다.

 2. 계6장의 흰말탄자와 계19장의 흰 말탄자를 같은 사건으로 보아도 안된다. 그러나 이경우도 단지 흰 말이라는 것 외에는 동일한 점이 없다. 사탄은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데 선수이다.(고전11장14절) 뱀은 사탄 마귀를 가리키지만(계12장9) 구약의 광야 뱀은 정반대로 예수님을 가리켰다.(요3:14)계6장의 적그리스도9짐승)가 흰 말을 탔다는 이유 때문에 계19장의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것은 상징적인 비유에서 상반되어 진리를 정각하지 못한 데서 오는 오류인 것이다. 다음 도표에 계6장과 계19장을 비교, 대조 하여보았다.

  내용 계시록6장의 흰 말 탄자 계시록19장의 흰 말 탄자 1 이름 없음 신실과 진실 2 모습 눈이 없음 불꽃같은 눈이 있음 3 복장 복장이 없음 피에 적신 옷 4 상급 면류관(단수) 많은 왕관(복수) 5 무기 살 없는 활 한 검 6 부하 추종자가 없음 백마 부대가 뒤를 따름 7 승리방법 이기려고 하더라(불확실) 단번의 승리 8 표상 상징 실제(예언의 성취) 9 시기 일곱 인이 시작한 때 일곱째 나팔이 지난 후 10 목적 많은 사람들을 기만해서 죽임 천년 왕국 건립 

3. 복음과 예언이 조화를 이루어야한다. 마24장은 예수님의 종말 교훈으로 일명 소계시록 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와 계시록의 순서는 정확하게 일치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음 도표와 같다- 요한계시록(예언서) 마태복음(복음서)
1. 6:2 흰 말 24:5 적그리스도
2. 6:4 붉은 말 24:6 전쟁
3. 6:5 검은 말 24:7 기근
4. 6:8 청황색 말 24:9 사망
5. 6:9-11 순교자의 호소 24:10 순교
6. 6:12-17 어린 양의 진노의 날 24:29-31 그리스도의 재림
7. 8:1 반시 동안 고요함 24:32-33 무화가 나무를 배우라 

4. 말씀의 순서를 바로 깨달아야 한다.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을 때 하나님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쓰고 일곱 인으로 봉한 백을 하늘에서나 땅 아래서나 아무도 뗄 사람이 없으므로 크게 울었다(계5:1-4)그리고계6장에 와서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셨다. 그때 네 생물중 하나가 천둥 같은 소리 같은 큰 소리로 오라고 외칠 때 요한이 보니 흰 말 한 마리와 그 말을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했다.(계6:1-2)

무슨 말인가 바로 성도를 짓밟고 또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대적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우주의 대주재자시오, 심판의 주권자이시다. 지금 그 분께서 일곱 인 중에 첫 인을 떼신 것이다. 그때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리 소리 같이 ‘오라‘고 외쳤다. 만일 흰 말 탄자가 예수님 이라고 한다면 문맥의 조화를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판의 진행에 있어서 일대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예수님이 인을 떼시는 주권자이신데 어떻게 네 생물일 외치는 말에 순종하여 흰 말을 타고 출동하시는가? 하나님의 계시 체계에 이러한 혼선의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계시는 질서 정연하다. 즉 하나님--그리스도--천사--요한--일곱교회--천사(계1:1) 이러한 순으로 계시가 진행된다. 흰 말 탄자가 예수님 이라고하면 계시의 순서에 역행한다. 그러므로 흰 말 탄자는 적그리스도가 분명하다. 어린 양 - 인을 떼시는 분 네 생물 - 심판의 수종자 흰 말 - 심판의 도구(적그리스도)

  5. 계시록은 반드시 다니엘서와 맞추어 해석해야 한다. 다니엘서의 구약에서의 위치는 신약에서의 위치와 동일하다. 더욱 계시록은 다니엘서를 보충하여 완성시키면서 불가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다. 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1260일(계11:3,12:6) 42달(계13:5) 한 때 두 때 반 때 (계12:14)등은 다니엘서에 근거 하지 않으면 바른 해석을 할 수가 없다. 이 일수는 다니엘 70이레 예언 가운데 남은 ‘한 이레’(7년)의 절반 (1260일)에 해당하는 일수이다.(단9:27,7:25,11)70이레 가운데 69이레는 이미 정확하게 성취되었고 남은 한 이레(7년)의 예언이 남았는데 A.D70년에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불태운 티도장군(TITUS)와 같은 그가(적그리스도가)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로 출연하여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7년 조약을 굳게 체결하게 되면 마지막 한 이레가 시작되면서 교회의 무서운 박해가 시작된다. 여기서 단9:27을 그가(HE) 바로 계6:2절의 흰 말 탄자이다. 여기서 6:2절의 흰 말 탄자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들은 단9:27도 그리스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문맥상으로 깊이 연구하면 그는 적그리스도인 것이 분명해진다. (70이레의 해석 참조)

  6.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2:3-4)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지 아노라(요일2:18) 위의 성구들이 밝힌 대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기 전에 먼저 세계적인 배도가 일어난다. 이 배도의 주동자는 적그리스도이다. 이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오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어린 양이 인을 떼실 때에 흰 말의 출현은 곧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흰 말 뒤에 나타나는 붉은 말9전쟁) 검은 말(기근) 창백한 말(사망)등으로 땅의 4분의1이 피해를 입는 것은 바로 흰말 곧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나타나는 종말의 현상인 것이다. 혹자는 흰 말을 복음의 승리 또는 두 증인의 사역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흰 말의 뒤를 따라 나타나는 위의 현상들은 복음과 상반되어지기 때문에 받아드려지지 않는다.

  7. 마지막으로 원어의 해석이 적그리스도인 것을 증거한다. 성경을 해석할 때 지나친 영해와 상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원 뜻을 잘못 해석하는 위험을 방지하는 일과 난해 해석 등은 원어에 의존하는 길 밖에 없다. 구약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에는 한 단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고유번호가 있다. 그리고 그 단어에는 성性과 시제 품성등이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나타나있다. 하나님이 지상의 언어 가운데 이 두 언어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계시록에 잇는 많은 상징들을 해석할 때 원문을 무시하는 경향들이 있기 때문에 오류에 빠지는 일이 허다하다. 계6:1-2벌의 헬라어 원문을 바로 해석하면 한사람도 흰 말 탄자를 (계6:2) 계시록 19:11과 짝 맞추어서 그리스도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원문 해석을 반대할 자도 있지 못 할 것이다. 이것은 말씀자체가 증거하는 권위인 것이다.

  (1)흰 말 탄 자가 가진 활 활은 심판의 도구가 아니다. 흰 말 탄자가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그 손에는 마땅히 활이 아니라 검을 들어야 한다(계2:12) 진짜 흰 말 타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시는 눈이 불꽃같은 충신과 진실의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 계6장의 흰 말 탄자는 활은 기만의 화살이 분명하다. ‘저희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호7:16) ‘저희 열조 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같이 빗나가서(시78:57)

  (2)흰 말 탄자가 받는 면류관 계시록 19장과 짝을 지어서 여기 흰 말 탄자가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그 면류관이 동일해야한다. 그런데 원문에는 동일하지 않으니 동일인물이 아닌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계6:2절에 나오는 흰 말탄자의 면류관은 운동경기에서 이긴 자가 쓰는 월계관(즉 ‘스테파노스“)이고 계19:12의 면류관은 임금이 쓰시는 왕관 즉 ‘디아데마타’이다. 계시록 6:2절과19:12를 동일한 면류관으로 번역한 것은 크나큰 오류이다. 공동변역에도 원문대로 월계관(CROWN)과 (DIADEM)으로 구분 하였다. 또 한 계6:2절의 면류관은 단수이며 19:12절의 면류관은 복수이다. 우리 예수님의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이 있다. 만왕의 왕이시며 창조주이시며 평강의 왕 공의의 왕등 수많은 왕이시다 그러나 6:2절의 면류관은 단수이다. 계6:2 면류관 ‘스테파노스’단수, 화관 - 적그리스도 계19:12 면류관 ‘디아데마타’복수 완관들 - 예수님

  (3)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니콘 카이 히나 니케-세) ‘니콘‘은 승리하다를 뜻하는 현재 능동태 분사이다. 그리고 ’니케세‘는 이기다의 제1 부정과거 능동태 가정법이다. 즉 한 번은 이기었으나 그 다음은 불확실하다. 이 구절이 예수님에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승리는 ‘에니케센’이다(계5:5) 이 말은 ‘이기다’ 를 뜻 하는 제1 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이며 이것은 과거에 단번데 이기신 결과적 승리를 뜻 한다. 예수님의 승리는 과거 단 1회적인 위대한 결정적 승리이다. 이제 활을 들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불확실한 미래사에 속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십자가에서 단번의 승리요 그 승리는 영원한 완전승리이다, 그 분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다. 이제 곧 하나님의 오른손에 일곱 인으로 봉한 심판의 책을 인수하여 영광의 구름을 타고 인류를 심판하러 오실 승리의 왕이시다. 손에 활을 들고 잠시 있다가 시들어 없어징 월계관을 쓰고 이제 이기고 또 이기시려고 하는 세상의 정복자가 아니시다.

  (4)‘그들의’ 땅 4분의 1의 권세 오늘까지 많은 계시록 해석자들은 원어상의 해석을 무시하고 자기 주관적 해석이나 외국의 번역에만 의존하여 땅 4분의 1에게는 청황색 말에게만 국한된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네 병거 (흰 말,붉은 말,검은 말 ,청황색 말) 에 주어진 권세를 의미한다. 뉴톰슨 관주 주석에는 이것을 바르게 해석하였다. (P405) '저희가 땅 4분의 1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계6:8) 이 때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은 모두 단수인데 ‘저희’표준어 번역에는 ‘그들‘ 복수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땅의4분의 1의 권세가 네 병거를 해석하여 준다. 전쟁의 붉은 말, 흉년의 검은 말,사망의 청황색 말, 땅의 짐승은 곧 적그리스도이다. 계시록에 나타난 짐승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를 뜻 한다.(계13:1,17 19:20)

  (5)상징과 실상을 혼동하면 우상이 된다. 성경에는 많은 상징과 비유가 있다. 상징은 실상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을 해석할 때 상징을 실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상징과 실상을 바로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성경 해석상의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 실상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되 상징은 그속에 있는 영적의미를 바로 알아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처음부터 많은 상징과 비유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6장의 흰 말은 상징이고 19장의 흰 말은 실제이다. 성경에서 흰 색은 언제나 거룩하고 성스러움을 나타내는 승리를 뜻하였다. 흰 세마포(계6:11) 흰 구름(계14:14) 흰 보좌(계20:11)흰 돌(2:17)흰 두루마기(계6:11)흰 옷(계3:4)이것들은 모두 예수님의 거룩성과 관계있다. 뱀은 사단을 상징하지만 이스라엘 광야에서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물게 하셨다. 이때 모세가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지시하고 불뱀에 물린 자는 누구든지 놋뱀을 쳐다보면 산다고 하였다.

(민21:9) 놋 뱀은 먼 훗날 십자가에 돌아가실 예수님의 모형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든은 이 상징이 되는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먼 훗날까지 놋으로 만든 뱀을 만들어 예배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이해하지 못하면 멸망당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깨달았더라면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였을 것이다. 히스기야왕이 즉위하자 그때까지 이스라엘이 신으로 예배하던 놋뱀 우상을 모두 부수고 ‘느후스단’ 이라고 하였다.

(왕하18:4)‘느후스단’은 놋조각 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뱀의 상징적인 의미를 바로 정각하지 못한 까닭에 하나의 놋조각에 불과한 ‘느후스단’을 신으로까지 모시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놋뱀의 놋조각을 구원의 대상으로 여겨 여러 신당에서 아세라 목상과 함께 ‘느후스단’ 우상을 만들어 경배 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서 산당으로 방황하는 자 가운데는 영적 미숙 단계에서 진리의 실상과 상징을 혼동하여 ‘느후스단’ 우상에서 경배하는 자가 허다함을 각성하고 산당의 우상을 모두 부수고 성전 예배로 돌아와서 진리를 바로 깨닫는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될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