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두멍(키요아)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출38:8)
물두멍의 원리는 일상생활에서 범하는 허물이 씻김 받는 과정이고, 원죄를 사함 받는 것은 번제 단에서 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희생이라는 번제로써 우리의 원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원죄로 말미암아 약해져서 항상 마귀의 미혹을 받으며, 그로 인하여 날마다 죄를 짓게 되는데, 그것을 허물이라 합니다.
물두멍은 자신의 더러운 행실을 깨끗하게 씻는데 있습니다. 물두멍을 성막바깥 뜰에 두었습니다. 그 당시 광야생활에서의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작업을 끝내고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뵈옵기에 앞에 더러운 손발을 씻는 기구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두 가지로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희생은 인류에게 전가된 원죄를 없애주신 일입니다. 이것을 “행위에서가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저주신 선물이라”합니다(엡2:8). 다르게 설명하면, 하나님께서‘인류의 원죄를 없애기 위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일은 사람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준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한 사건에서 원죄사함과 허물의 씻김이라는 두 가지 원리가 적용됩니다.
그리스도께서ㅡⓐ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인류의 원죄 사함이요, ⓑ흘리신 피는 날마다의 생활에서 범하는 허물의 씻김ㅡ을 말합니다. 믿는 자는 예수의 희생으로 구원의 은총을 받았으면 성전 안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런데도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미움과 질투와 술수와 분리시키면서 당을 짓는 사람이라면 그는 날마다 물두멍 주변에서만 맴도는 사람일뿐입니다. ‘예수의 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말하는데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으로 인하여 날마다 번제단과 물두멍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입으로 ‘믿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그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았으므로 거듭났다고 말은 하지만 지성소와 성전, 그리고 그 안에 놓여 질 기구들을 만들지 않아서 예수님이 그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거듭납니까? 번제 단에서 자기를 희생시키지 않았는데 어떻게 피로 허물이 씻김을 받습니까?
그런 사람의 사람을 보면 항상 불만이 가득하며, 기만과 술수와 입에서는 항상 거짓말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신자들이‘믿기만 하면 된다.’는 신앙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들이 물두멍에서 씻음으로써 깨끗하듯이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흘려주신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았으므로 깨끗하여 졌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번제 단에서의 희생이 없는 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처음부터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날마다 범하는 허물이 물두멍에서 씻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합니다. 왜 들어가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삶의 우선으로 두지 아니하고 자신을 우성순위에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예물(헌금)을 드리는 희생이 없었습니다. 혹이 예물을 드릴지라도 믿는다는 흉내만 애면서 인색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희생하지 않는 탓입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6~27)
이 말씀은 삶이 바탕이나, 믿음의 기초를 증거 궤에서 시작하지 아니하고, 반대로 물두멍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 반석이라는 페트라(πτρα)는 예수님 자신을 말합니다.
이 뜻은 삶이나 믿음의 기초를 예수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삶이 기초를 증거 궤에 두라고 하셨는데도 그 말씀을 듣지 않고 물두멍에 기초를 두는 사람이 모래위에 집을 짓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거듭나지 못하는 원입니다.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물두멍 주변에만 맴돌고 성전 안으로는 들어가지(희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두멍의 의미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니라.”(출30:19~20)
수족은 손과 발입니다. 손과 발을 물로 씻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는 죽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회막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씻어서 죽임을 면 하게하는 것이 물두멍의 원리입니다. 히브리어 아드브레겔이라는 수족은 손과 발을 말하는데,‘아드’는 팔꿈치아래 부분을 말하고,‘브레겔’은 무릎관절 아랫부분입니다. 수족을 씻는 물(마임)은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맞으실 때 흘리신 피로 바꾸어졌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영접할 때 갈보리 산위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를 바라보면서 회개하며 구원을 간구하면 원죄는 사함 받아집니다. 그러나 거듭남이라는 성화가 되지못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범하는 허물은 피로 씻김을 받아야 됩니다. 이것이 물두멍의 원리입니다. 이 약속은 창세기에서 하나님과 노아와의 약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생물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로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창9:15)
갈보리 산 십자가위에서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혈기 있는 자가 멸망하지 않는 것은 그분의 희생으로서 구원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원죄는 사해졌으나 날마다 범하는 허물이 씻김을 받아야 됩니다. 그 허물이 씻김 받는 곳이 물두멍입니다.
물로 씻는 행위를 아사프로 발음합니다. 이는 허물을 씻어서 깨끗하게 함을 말합니다. 화제를 아쉬세로 발음하는데, 이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연이 하나님께로 올라가서 화해를 이루게 하는 제사입니다. 기본적으로 화제는 구원론 적 입장에서 취하며, 신약으로 넘어와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연결됩니다. 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성도들은 허물을 씻어야 됩니까? 그 씻음의 뜻과 물두멍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또 물두멍 안에 담겨져서 제사장들의 수족을 씻게 했던 물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언제부터 더러워졌는가?
모든 사람은 아담으로부터 이어지는 원죄로 말미암아 의지가 약해지고 판단이 흐려져서 마귀의 미혹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더러운 허물을 페샤와 파라프토마(παρπτωμα)로 발음하며, 뜻은‘탈락, 이탈’또는‘실책’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아니하는 오류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탈됐다는 뜻이 허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더러움을 씻는 제사가 구약에서 화제였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의 피로 허물이 씻김으로 바꾸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에서부터 씻음을 가져야 됩니까? 증거 궤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맺고, 자신이 거룩하게 되기 위하여 감사와 기쁨으로 어두움을 밝히고 영혼구원에 힘쓰는 삶이 희생입니다.
다음은 물두멍에서 씻어야 된다고 성경은 교훈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맺지 아니하고, 뜰에 있는 물두멍에서부터 믿음을 시작하는 잘못을 범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시작을 증거 궤와 물두멍, 두 곳 중에서 시작하는 순서가 바꾸어졌을 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옵니까? 앞에서 설명했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져야 되는 증거 궤에서부터 시작할 때에는 항상 성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물두멍에서부터 시작할 때에는 항상 바깥에 머문다는‘위치’를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계시록 11장2절에서 성전바깥 마당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믿음의 물두멍에서부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42달 동안 이방인들에게 내어주어서 짓밟힌다 하였습니다. 말씀의 뜻은 대 환난에 남겨져서 지구정부가 실시하는 제도 사회에서 박해를 당할 때 모든 사람에게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함을 당하게 됨을 말합니다.
물두멍에서 씻김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째서 대 환난에 남겨져서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려고 싸와야 합니까? 예수님의 의로 교회가 다 어린양의 신부로서 들림 받는다고 했는데 어째서 휴거되지 못하고 대 환난에 남겨집니까? 그리고 어떻게 됩니까?
①.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4)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육신의 죽임을 당하고 영은 부끄럽게 구원은 받습니다. 그들이 구원받는 것은 살았을 때, 곧 대 환난이전에 허물이 씻김 받지 못했던 것을 대 환난을 통해서 자기를 희생시켰기 때문에 예수의 피가 그들의 허물을 깨끗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②.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마22:12~14)
여기서 예수를 부인하고 지구정부 통치자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은 유황불 못이라는 영원한 저주가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수의 피로 허물이 씻기지 않아서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 탓으로 대 환난에 남겨졌다가 연단 장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44절을 읽으면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의 수족을 묶임에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합니다. 또 사도행전 21장11절을 읽으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바울에게 수족을 결박한다고 성령의 말씀이 예언되었다 했습니다. 죽음 뜻할 때 수족이 묶입니다. 그리고 바깥 어두움에 쫓겨날 때에도 손발이 묶임을 당합니다. 살아난 자는 수족을 풀어 놓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짓게 하는 손발의 역할을 묶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로 씻음을 받지 못하면 수족을 씻지 않음과 동일하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족이 묶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이 되어야 죽임을 면하게 됩니다. 이것이 물두멍에서의 씻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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