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7/2009

구원받는 것과 멸망받는 것, 어느 것이 쉬울까? 2 [강병국목사]


성령의 능력으로 일함
하나님의 성령 충만한 자녀들은, 능하신 정복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리를 전하는 일에있어서, 좀 더 확신에 차 있고 좀더 공격적이며 담대하게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육체의 힘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장되시는 그분(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적하는 자(사단)보다 능력이 크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이제 다음 질문을 생각해 봅시다. 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인가이 질문의 뜻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나 그리스도인 생애를 사는 것이 쉽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인간의 타고난 본성과 힘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자 애쓰는 것처럼 세상에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순종의 길이 즐겁고 기쁘답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한일서 5:3). 요한은 사랑의 대 원칙을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것,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열매일 경우에는 힘든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시편의 기자도 요한의 말에 동의하였습니다.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편 40:8)라고. 진실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무거운 짐이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두가지를 말하겠습니다. 첫 번째,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시며, 자신을 최선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그는 그리스도를 최고로 사랑하며 그분을 결코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원칙과 규칙의 요구가 기쁨이 될 수 있음
성경에 기록된 요구들과 범죄자에게 가해지게 될 형벌들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한 제재들과 위협적인 형벌들이 우리의 순종을 더욱 힘든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작성한 두가지의 가상 인터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방금 종합 진단을 마쳤다고 가정합시다. 의사가 제게 결과 보고를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건강진단 결과 당신은 제가 시키는 대로 정확히 따르지 않으면 죽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제가 지금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야 하며, 당신의 여생 동안 매일같이 저의 지시를 그대로 이행해야 합니다. 당신이 살아있는 한 매일같이 이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죽게 될 것입니다.

잠시 이것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의사가 말한 것은 죽음의 형벌이 따라오는 엄한 규칙들 임에 틀림 없습니다. 저는 그 의사의 처방을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저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명령들을 따르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일 의사가 식사를 제 때에 잘 하라고 명령하였다면, 위장에서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낼 때마다 건강에 유익한 식사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의 신체의 법칙들은 제가 규칙적으로 식사하는 것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몸에서 자동적으로 보내는 유익한 요구입니다. 먹는 것은 제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의사의 엄한 지시를 따르도록 저 자신에게 억지로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의사가 저를 위한 최선의 처방을 내렸다고 믿기 때문에 아무런 불평없이 의사의 지시를 따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그리스도인 생활 가운데는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의 자연적인 산물인 사랑의 법칙이 작용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계명들이나 형벌들은 전혀 위협이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계명과 원칙을 주신 분은 바로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최선의 유익을 위하여 계명과 원칙을 준수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 행복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킬 것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하는 분께 순종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의무를 즐거운 특권으로 바뀌게 해줍니다.

좁은 길이 힘들고 불행한 길인가?
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종종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여러가지 제재가 많아요” 그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종교보다 훨씬 더 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제약들이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만듭니까?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신랑 신부가 서로가 주고받은 약속들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저는 갓 결혼한 부부들이 그들의 서약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마냥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침례 의식은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과 결혼하는 예식입니다. 누군가가 새로 침례 받는 한 그리스도인을 실망시키기 위해서 애쓰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얘, 너는 이제 큰일났다. 생각 좀 해봐라. 넌 더 이상 술집에도, 춤추러도 가지 못한다. 넌 주일에 골프 게임도 하지 못하게 되었단다. 이제 너는 여러 명의 남자 친구들과 사귈 수 없게 되었단다.” 새로 거듭난 그 그리스도인은 밝은 미소로 말할 것입니다. “좋아요. 그래도 좋아요. 오히려 그것이 저에게 큰 기쁨인걸요.” 신부의 응답에 대한 설명이 고린도후서 5 14절에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사랑은 사람들을 움직여서, 자신을 위해 죽으신 분을 기쁘시게 할 일들을 행하게 합니다. 그런 봉사와 순종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는 어떤 것도 무거운 짐이나 멍에가 될 수 없습니다.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흠정역),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요한계시록 22:14).

사랑이 없는 결혼과 사랑이 없는 종교는 비참함
참된 회심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제 말이 이상하게 들리고 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무아적 봉사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떤 부부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 망가짐에 따라서, 결혼을 괴로운 속박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들의 잘못은 결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태도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떠나서 그분과의 관계가 끊어질 때, 그들은 종교적 의무들에 대하여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잘못은 종교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마음에 사랑이 없음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자신을 부인하면서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누가복음 9:23). 그분의 말씀은 순종의 길이 힘들고 불행하다는 뜻인가요? 천만에요. 그분께서는 단지 그리스도인의 생애 중에 마음을 혼란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유혹들이 존재하는 현실을 묘사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는 언제나 우리를 미혹하여 그리스도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육체적, 세상적 유혹들이 있습니다. 더 높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강력한 영향력이 없다면, 그것들의 감정적 유혹이 우리를 압도할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성경 말씀에는 사랑의 권위가 잘 나타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강한 사랑이 나를 그분께 붙들어 매며, 육체적, 세상적으로 접근해오는 사단의 끊임없는 유혹에 대해서 “No!”라고 말하게 합니다. 사단이 던지는 유치하고 어리석은 도전들이 나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방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해서, 항상 그분께 머물러있기로 선택할 것입니다. 첫째, 나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그분을 더 사랑합니다. 둘째, 그분께서는 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신뢰합니다.

사단은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육체나 감정은 신뢰할 수 없는 것임을 잘 압니다. 우리는 의와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이지, 마음이나 생각 속에 떠오르는 느낌이나 감정을 근거로 해서 그분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마귀를 섬기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들이 감정에 의해서 속임을 당해서 눈이 멀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일시적인 만족을 얻기 위하여 죗된 쾌락을 따르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참으로 눈멀고 귀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판단하지 못하는 로봇처럼 자신의 육체적 욕구가 지시하는대로 움직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 준수되어야 할 신령한 사랑의 법을 따를 만한 힘이 없는 것입니다. 육체적 욕망들에 대항하여 저항할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에, 육체가 지시하는 대로 생각과 몸을 내어 맡기게 됩니다. 또한 자아 역시 외부적인 자극들이 던지는 감정적 호소에 굴복하게 되어서 육체의 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타락한 의지력은 힘을 잃고 휘청거리면서, 감정과 감각이 요구하는 대로 끌려 다니게 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옳은 일보다는 그릇되고 악한 일을 하는 것이 더 쉽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실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옳고 의로운 일에 대한 확신이 너무도 강력하여서, 아무도 그들에게 죄악적인 일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진리의 말씀이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복음의 기쁜 소식이 있는데, 저는 모든 독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주고자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의로움을 주시고, 거룩하게 될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죄책감과 죄의 세력으로부터 넉넉히 해방될 수 있습니다.

승리를 얻는 방법
혹시 나쁜 습관이나 죄를 점진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에 대하여 들어 보셨습니까? 때때로 그것은 “점차적으로 줄이는 방법” 혹은 “노력하면 된다” 등으로 불리워집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런 방법은 별로 효력이 없습니다. 물론,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유혹과 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 그 방법이 부분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노력을 통하여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우리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다가, 1년쯤 후에 나와 마귀를 비교해보면, 그는 여전히 우리보다 강합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죄의 세력을 깨뜨릴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항상 우리보다 더 강한 적과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패배를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의 아름답고 고귀한 비밀로 안내합니다.

이제 승리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요구하기 위한 성경의 4대 계단을 알아보십시다. 우리가 찾아보고자 하는 4개의 성경구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놀라운 역사에 대하여 잘 말해줍니다.

첫째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린도전서 15:57). 여러분의 마음에 이 기이한 메세지를 깊이 새기십시오. 승리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으며, 어떤 선행을 많이 행한다고 해서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한가지는 그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는 일이며, 그 승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값없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사단을 이기고 승리를 얻으신 유일한 분이시며, 우리가 얻는 모든 승리는 그분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식욕의 노예이며 어떤 사람들은 알코올이나 담배의 노예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불순한 행위들이나 급한 성격 또는 세속적인 욕망들을 억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허우적거립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선물로 주어지는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그 능력을 구한다면 그것을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까? 승리를 요구하는 여러분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즉시로 응답해 주실 것을 전적으로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그리스도께서 보증하는 약속으로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성경절은 마태복음 711절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죄에 대한 승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구하는 모든 자에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다음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우리가 구한 후에, 승리를 쟁취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짓말 하실 분이 아님을 압니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순간, 우리는 약속의 성취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선물에 대해서 감사하며, 마치 그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어떤 종류의 성취 느낌이나 표시를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약속 안에 있는 능력이 우리의 소원과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세 번째 성경절로 로마서 611절을 보십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 지어다.”여기서“여기다(consider)”라는 말은 “믿는 것 또는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간주하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믿음의 연습은 승리를 요구하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하며, 그런 후에는 그 요구가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승리할 것을 믿어야 하며, 동시에 자기 자신을 죽은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죽은 자는 성내지 않습니다. 죽은 자는 이기적인 탐심을 갖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죄에 대해서 승리를 얻고자 한다면, 여러분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흡연 습관이나 늘 붙어 따라다니는 죄를 극복하기를 진정으로 소원하십니까? 지금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승리를 주리라.” 여러분이 구원받았음을 믿는 한, 여러분은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십시오. 승리를 위한 능력을 간구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여러분이 승리를 구하는 순간, 승리는 능력의 보급소로부터 여러분의 생활 안으로 즉시 놓여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느낄 수는 없을지라도, 그것은 틀림없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있습니다. 러분이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 항상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승리가 너무도 극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죄를 혐오하게 되며, 죄를 증오함으로써 죄가 가져오는 맛을 잃어버립니다. 때로는 흡연 중독자가 흡연에 대한 욕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욕구와 욕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유혹의 순간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하늘로부터 우리의 마음 속으로 전달되어서 솟구쳐 나오게 됩니다. 우리의 육체와 감각이 우리에게 죄를 행하라고 격렬하게 요구할지라도, 우리의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조용한 호소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성령의 음성에 굴복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은 하늘을 찌를 듯이 향상됩니다.

승리를 위한 마지막 단계는 로마서 13 14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자신에게 이르러온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너무도 강해서, 이제는 죄의 세력에 빠지는 일은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예전의“노력”을 통한 방법으로서는 대부분의 경우가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패에 대한 한 예화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린 철수는 어머니의 명령을 어기고 수영하러 갔었기 때문에 꾸중을 듣게 되었습니다. 왜 어머니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전 유혹을 받았기 때문이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나는 네가 아침에 수영복을 가지고 가는 것을 보았다. 왜 아침에 수영복을 가지고 갔지?” 철수는,“유혹 받을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승리를 쟁취하는 일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투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타협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실패할 경우를 위해서 미리 대책을 세웁니다.

지금 말씀 드리는 이런 방법이 실망을 줄 수도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일 실패한다면요? 승리가 계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심이 흔들려야 합니까? 천만에요. 우리는 단지 자신의 연약함을 더욱 더 절감해야 하며, 더욱 더 많이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더욱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의존해야 된다는 진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실패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통하여 승리와 능력을 나누어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변경시키지는 못합니다. 받는 자의 편에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약속일지라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분명한 한계선이 예수님의 말씀에 명시되어있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태복음 9:29).

형제자매들이시여! 승리는 단순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작용합니다. 여러분이 기꺼이 구원받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죄를 기꺼이 버리고자 하지 않는 자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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