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2009

예언적인 꿈과 환상의 유형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 2:17).

  마지막 때에는 예언과 더불어 꿈과 환상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음성을 잘 듣기 위해 예언적인 꿈과 환상에는 어떤 유형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1. 환상의 유형들 - 환상은 꿈과 달리 잠이 든 상태가 아닌 의식이 깨어 있는 중에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하는 환상에는 ‘내적 환상’과 ‘열린 환상’, 이렇게 두 가지 기본적 유형이 있다. 

  내적 환상 - 내적인 환상은 주변에 있는 사물들 같이 실제로 보이는 것처럼 강력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마음에 그려보는 어떤 것과 같다. 내적 환상에는 ‘영적인 환상’과 ‘비몽사몽간의 환상’ 두 가지 형태가 있다.

  (1) 영적인 환상 - 이것은 어떤 사람이 그의 영적인 세계에서 환상을 갖거나 어떤 것을 보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영적인 환상의 한 예를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바울이 겪었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기로 작정하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갑자기 대낮의 해보다 밝은 빛이 나타나 자신의 주위를 비추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당시 그는 자신을 향하여 말하는 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9:4,5).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의 육적인 눈으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으나 영적인 영역에서 그분을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환상’으로서 환상의 첫 번째 유형이다. 가장 하위 형태의 환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비몽사몽간의 환상 - ‘영적인 환상’보다 좀 더 높은 차원의 환상이 있는데, 비몽사몽간에 나타나는 환상이 그것이다. 이러한 환상의 예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처음 갔을 때의 체험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사도행전 22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니라 하시거늘”( 22:17,18).

사람이 비몽사몽간에 빠지면 육체적인 감각은 일시정지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가 신체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것들을 느낄 수 없다. 이것은 의식을 잃은 상태가 아니라, 다만 육체적인 것보다 영적인 의식이 더 깨어 있는 것일 뿐이다. 다음은 이민 교회인 아틀란타제일장로교회의 서삼정 목사님의 간증이다.

 625전쟁 때 피난처에서 고향에 돌아온 직후였다. 미군들이 마을 뒤 개천에 주둔해 있던 어느 날 밤, 어머니와 잠깐 누웠다가 미군 세 명을 환상으로 보았다. 가운데 사람은 키가 조금 컸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어머니에게 환상을 이야기 했다. 어머니는 급히 일어나 건넌방으로 건너갔고, 잠시 후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환상에서 보았던 그 군인 세 명이었다. 환상에서 본 대로 가운데 군인이 키가 컸다. 당시 미군들은 밤마다 젊은 여자들을 찾아다녔는데, 어머니는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 것이었다.(서삼정,「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예수 믿는 맛이 난다」, 두란노, P.50)

서 목사님이 경험했던 환상은 비몽사몽간의 환상이었다. 사도 베드로 역시 비몽사몽간에 나타나는 환상을 체험하였다. 하느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가지고 가라고 말씀을 하셨던 때이다. 베드로가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고 있을 때 거기서 그는 ‘비몽사몽간에 빠지게’ 되고 하늘이 열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베드로가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10:9~11).

그는 영적인 세계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이러한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베드로와 바울이 비몽사몽간에 빠져 영적인 세계를 보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들이 경험한 비몽사몽간의 환상은 두 번째로 높은 형태의 환상이다.

  열린 환상열린 환상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환상으로서 ‘눈을 뜬 상태에서 보는 환상’이다. 이것은 사람의 육체적 감각기능이 정지되는 것도 아니고 눈도 감지 않은 상태이다. 즉 모든 육체적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영적인 세계를 맛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열린 환상은 주위의 다른 어떤 것과 똑같이 실제적으로 보이는 환상이다. 천사의 방문과 같은 것이 이 범주에 해당된다. 우리는 천사들을 실제의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주의 천사가 기드온을 방문했던 것 등이 이에 대한 예이다( 6:11). 고넬료는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느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체험했다( 10:3).

케네스 해긴(Kenneth E. Hagin)은 그가 체험한 눈을 뜬 상태에서 본 환상을 다음과 같이 간증한 바 있다. “…눈을 뜬 상태에서 나타난 환상 속에서 평상시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분명하게 (예수께서) 나의 방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내 침대 옆에 그분이 앉는 것을 보았으며 또한 나는 내가 평상시에 들어왔던 여느 사람들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그분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케네스 해긴, 에태해 역,「나는 환상을 믿는다」, 목양세계선교회, P.161)

이처럼 ‘눈을 뜬 상태에서 보는 환상’은 나의 육체적 기능이 모두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영적인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는 아주 높은 차원의 환상이다. 이러한 환상을 열린 환상이라고 한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다면 내적 환상은 물론 열린 환상과 같은 높은 차원의 환상도 체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예언적 꿈의 유형들꿈의 효능은 의식의 방해가 최소화된 가운데 -잠이 든 상태이므로- 하느님께서 빠른 동영상처럼 그분의 뜻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하는 꿈은 대개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별할 수 있다.

  (1) 생각나게 하는 어느 날 당신이 휴가를 떠나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당신은 여권을 갱신하지 못했고 챙겨야 할 소지품도 잊고 떠났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꿈을 꾸었다면 그것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확인해 보라”는 신호이다. 이렇게 나의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꿈을 무시해 버린다면 어려움이 닥친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난관에 처한 모습의 영적지도자나 지인(知人)을 꿈에서 만날 때가 있다. 이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잊지 말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라는 신호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음성을 무시하면 내가 꿈에서 본 그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만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예를 확인할 수 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비’라는 약속을 생각나게 하였다( 15:1~6, 12~16). 하느님은 솔로몬의 두 번째 꿈에서 불순종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생각나게 했다(왕상 9:2~9, 왕상 3:5~15).

  (2) 경고하는 꿈속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하거나 계단에서 넘어져 다치는 경험을 했다면, 나에게 닥칠 수 있는 사고를 경고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일 수 있다. 이러한 사고는 누구에게나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꿈에서 체험한 것을 무시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대처를 해야 한다. 즉 계단을 오르내릴 때 조심하고 운전하는 습관이 나쁘다면 그것을 고치는 지혜가 필요하다.

 창세기 31 24절에 하느님은 야곱의 외삼촌 라반에게 나타나서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고 했다. 또 마태복음 1 20절에도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고 했다. 이 외에도 하느님이 아비멜렉 왕에게 경고한 꿈이 있다( 20:2~7).

 (3) 예언적 미래에 성취될 사건을 꿈에서 경험하였는데, 실제로 자신의 생애 가운데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창세기 37:5~11에 어린 요셉의 꿈이 결국 이루어졌다. 나단 선지자가 잠자고 있는데 하느님의 말씀이 임하여 다윗 왕의 아들이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했다(삼하 7:4~17). 분명 그것은 나중에 성취될 사건이었다. 따라서 예언의 꿈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놓고 말하기보다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원 원장이었던 모 목사는 별세하기 수년 전에 자신의 장래에 대한 예언적 꿈을 꾸었다. 어느 날 그는 꿈속에서 큰 나무에 원숭이 한 마리가 높이 올라가는 것을 쳐다보면서 “아이고, 저 놈 좀 봐라. 엉덩이가 빨갛구나!” 하며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갑자기 원숭이가 나무에서 뚝 떨어져 죽었다. 그가 가까이 가서 땅에 떨어져 죽은 원숭이를 살펴보니 원숭이가 아니고 자기였다. 그는 이 섬뜩한 꿈을 꾼 지 얼마 후 건강에 문제가 생겨 모든 사역을 중단하고 몇 년간 투병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슬프게도 그가 꾸었던 꿈은 교만으로 말미암아 추락할 것이며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 꿈이었다.

 다음은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의 꿈이다. 때는 1865년이다. 미국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백악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때 꿈에서 사람들이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 소리를 따라서 계단을 내려갔고 한 사람이 죽어 관에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링컨은 궁금해서 옆에 서 있는 경호원에게 관 속에 죽어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물었다. 경호원이 대답하기를 관 속에 있는 사람은 총에 맞아 죽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이라고 했다. 이 꿈을 꾼 후 얼마 있다가 아브라함 링컨은 암살되었다.

  (4) 반복적인 잠자는 가운데 이례적으로 반복되는 꿈을 꿀 때도 있다. 이 꿈이 내용에 따라 기쁨을 주기도 하고 괴로움을 주기도 한다. 창세기 41:1~7에 바로 왕은 임박한 기근에 대한 꿈을 반복적으로 꾸었다. 느브갓네살 왕 또한 반복적인 꿈을 꾸었다. 이것은 세상 지도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할 시기라는 신호이다( 2:1).

 때는 1912, 타이타닉(the Titanic)호라고 하는 배가 영국에서 뉴욕으로 떠날 때였다. 그 때 한 소녀가 꿈을 꾸었다. 거대한 배가 가라앉는 꿈이었다. 그 소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다시 잠을 청하였다. 같은 꿈을 다시 반복하여 꾸었다. 또 타이타닉 호를 타기 위해 예약하여 놓은 사람이 꿈을 꾸었다. 그는 자기가 타려고 하는 배가 꿈에서 기울어져 물속에 잠기는 것을 서너 번 꾸었다. 그 때 사방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이 꿈으로 인해 그는 예약을 취소하고 그 배를 타지 않았다. 이러한 꿈이 있은 지 며칠 후 타이타닉 호는 침몰하였고 1500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5) 악몽꿈에는 보통 두 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두려움과 불안을 주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기쁨과 기대감을 갖게 하는 꿈이다. 악몽은 기분 좋은 꿈은 아니지만 하느님이 주시는 꿈의 유형엔 ‘악몽’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욥기 7 14절에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래시고 이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라고 했다. 느브갓네살 왕 역시 꿈을 꾸고 나서 두려움과 번민에 휩싸였다( 4:5). 빌라도의 아내 또한 마음에 괴로움을 주는 꿈을 꾸었다.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예수)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27:19).

이처럼 꿈은 기쁨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괴로움을 주는 것도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꿈을 주의 깊게 생각하며 나 자신을 뒤돌아보아야 한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언적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든 때에나 꿈에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 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33:15~17).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주님은 자기 백성들이 그 분의 모든 의사소통 수단에 익숙해지기를 원하신다. 꿈과 환상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식이다. 하느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시며 그러한 방법들 가운데 한 가지로 어떤 때는 꿈을, 때로는 환상을 선택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꿈과 환상의 여러 가지 유형들에 관해 배울 필요가 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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