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늘 깨어 계시며, 자신의 말씀을 종들의 입에 두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의 음성으로 사용하시게 하라. 원수가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라. 우리에게서 성령이 흘러 넘치게
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원수들이 도망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의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시29:3)
한 인간이 기도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을 자유케 해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는가? 모든 중보기도자들이 같은 권세를 가지는가? 결국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뜻하는 바는 그것이 무엇이든 이루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그분의 백성들을 사용하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연구하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 우리가 가장 먼저 깨달을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세상과 개개인의 삶을 향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살기보다는
그저 오늘 하루하루 즐기며 산다. 교회도 우리가 왜 이 땅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지 깨닫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악이 관영한 이 세상’에서 한시 바삐 벗어나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죄를 범해왔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성경 첫머리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6-2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지으셨다. 다른 모든 만물을
먼저 창조하신 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 오직
예수님만이 꼭 그대로의 하나님의 형상이시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과 비슷하게 창조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존귀를 인간에게 입히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살과 영, 하늘과
땅을 연합시키셨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은 이 땅에서 그분의 대리자로 서야 한다. 하나님의
대사인 인간은 이 땅에서 대리자의 권세와 지배권을 부여 받았다. 더치 쉬치는 그이 저서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중보기도’에서 창세기1;26-28절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아담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였다. 하나님과 너무 닮은 나머지 하나님이 아담
안에서 환영처럼 비치게 했다. 하나님은 아담 안에서 인식되었는데, 이것은
아담이 이 땅에서 ‘영향력 있는’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아담은 하나님을 대표하여 그분의 뜻을 이 땅에 나타냈다. 아담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자 또는 경영자였다. 땅은 아담에게 맡겨진 구역으로 아담의 책임 아래, 보호 아래 놓여 있었다. 아담은 파수꾼 혹은 관리인이었다. 이 땅이 더 좋아지느냐? 나빠지느냐? 하는 것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 달렸다
하나님의 대리자인 아담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발하거나 대변인 역할, 더욱이
그분의 성품과 권위도 나타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아담과
하와는 이 땅에서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창세기 3장은 인류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버린 타락에 대한 기사를 들려준다. 아담과 하와는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분명하고도 확실한 명령을 의식적으로 또 고의적으로 어겼다. 타락의 결과로 우리는 땅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포기해버렸다. 고로
하나님과 인간은 분리되었다.
회복 - 타락 후에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사 아담과 하와에게 구속과 회복을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어느 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3:15).
이 약속은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8,19).
예수께서는 새 언약을 개시하러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언약을 통해
일하신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겼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회복의 길이 열렸다. 인간은 거듭날 때 비로서 하나님의 언약의 파트너가 된다.
현대의 중보기도자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파트너로서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는 틈을 메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개인과 도시와 나라들을 회복시키시기를 위해 틈을 메울 사람을 찾으시지만 이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고 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겔22:30).
틈 메우기 - ‘틈’과 ‘균열’은 같은 뜻이다. 적의 공격으로 성벽이 무너졌을 때 그 틈을 메우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성경은
성벽을 수리해야 할 때에 거짓 선지자들은 정작 코빼기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 되어 성벽 수리에 따르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꺼이 틈을 메우고자 했다(시편106:23). 그러나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통해 값을 지불하시고, 하나님과 인간의 틈을 메우고, 벽을 수리하실 수 있다. 그 일을 통해 예수께서는 인간이 잃은 것을 다시 사셨다. 또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인간의 법적 권리를 회복시키셨으며, 그것으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성취하셨다.
하나님의 대리자란 에스겔이 말한 대로 하나님이 틈을 메우려고 찾고 계시는 그런 사람이다. 웹스터사전은 ‘균열’(breach)을
“깨짐 또는 깨져서 벌어짐, 법이나 약속을 지키지 못함, 위반, 침해, 벽이나
수비 라인에서 돌파하여 열림, 깨지거나 찢긴 곳”이라고 정의한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틈을 메우고 중보자의 역할을 할 중보기도자들을
세우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언약 관계에 있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바로 당신과 나다. 우리는 이 땅이 치유 되도록 돕는 하나님의 음성이
될 것이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 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시편 58:12)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틈을 메우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서, 성령의 능력으로 영감 있는
말을 하는 데도 쓰임 받을 수 있다. 시편 29편은 하나님의
음성(소리)이 이루어내는 많은 것들을 말한다. –시편12:3-9.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殿)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 이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이루는
자신의 능력을 우리의 말에 두고 계신다. 요한복음7장의 말씀처럼, 성령이 우리를 통해 강처럼 흘러 넘친다. “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7:38 ,39)
생수의 강은 하나님의 음성이 흐르게 하는 수단이다. 시편 29편에 따르면, 하나님의 음성이 물 위에 있다. 그 다음으로 그분의 소리가 중보 기도자들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생수의 강물 위에 있다. “폭풍을 꾸짖으신 후, 예수께서는 폭풍을 꾸짖어야 했다는 것을 암시하시면서
그들의 두려움과 불신앙을 꾸짖으셨다. 예수께서는 또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후에 우리가 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영감 된 선언의 힘을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소리가 된다”
시편29편에는 하나님의 음성(소리)이 하는 일들이 여럿 열거되어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소리가
‘부순다’는 표현이다.
‘부수다(break)’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샤바르(shabar)의
몇 가지 유력한 예는,‘산산 조각내다, 잘게 부수다, 잘게 찢다(야생 곰처럼), 무터뜨리다, 멸망시키다(왕국이나 도시나 민족을),
참회하며 비탄에 잠기다(즉, 깊이 뉘우치다), (자궁이)갑자기 열리게 하다(즉, 아기가 나오다)’샤바르에 대한 정의를 보면, 중보기도자들을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음성이 한편으로는 악한 일들을 무너뜨리며,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자들이 마음을 찢고 회개 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분의 백성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음성은,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분의 목적을 ‘낳을’ 수 있도록 ‘태를 열 수도 있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그 백성들이 머고 마시며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보고
율법판을 ‘깨뜨렸다’(샤바르,출32:19). 거짓 신들의 제단이 샤바르의 대상이 될 때가 많았다(왕하18:14; 23:14 . 대하34:4). 이것은
하나님의 대리자들의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소리가 생수의 강을 타고 흐를 때 어둠의 일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러나 어둠의 일들을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하는 수많은 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흔들기도 한다. ‘흔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추불’(chuwl)이다.
추불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를 갖는다. –두려워하다, 고통으로 떨거나 겁에 질리다, 분만 중이다, 아이를 낳다, 생산하다, 낳게하다
–
하나님의 음성은 원수를 두렵게 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원수가 겁에 질려
고통하며 떨게 만든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은 생산하거나 낳는 능력이 있다. 그분의 음성은 우리의 수고의 열매를 낳는다. 분명 우리가 영적인
영역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더 많이 기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지만 즉각적인 응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깨가 얼마나 많은가. 다니엘이
응답을 받는 데 21일이 걸렸다는 것을 기억하라(단10;12,13) 때때로 우리가 한 중보기도가 응답되기 까지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야 할 때 - 나님께서는 언제나 원하시는 때에 일을 하실 것입니다”. 이런 말을 몇 번이나 들어 보았는가? 그러나 이 말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전3: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중보기도자들에게 ‘잇사갈의 기름 부음’을 주셔서 시세를 알게 하실 것이다.(대상12:32). 물론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이루실 준비가 되어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이루실 준비가 되면 그 말씀을 중보기도자들의 입에 두신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 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렘1:9-12)
여기서 ‘지켜’[watching]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샤카드(shaqad)인데, 이 단어는 “깨어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다, 방심하지 않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깨어 계신다. 그분은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입에 두신 말씀을 행하시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고 방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살구 나무를 보여주셨다. 왜 보여주셨는가? 살구 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샤카드’와 스펠링이 비슷하다. 모든 나무 가운데 살구 나무는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그래서 히브리적 사고(思考)로 살구 나무는 ‘깨우는 자’로
이해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이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방심하지 않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살구 나무를 보여 주신 것이다. 살구 나무가 ‘깨우는 자’의 의미인 것과 마찬가지고 하나님께서는 늘 깨어 계시며, 자신의 말씀을
종들의 입에 두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의 음성을 사용하시게 하라, 원수가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라. 우리에게서 성령이 흘러 넘치게
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원수들이 도망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예언적 중보기도 이렇게 하라 – 예언적 중보기도를 드릴 때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마음과 의중을
파악한다. 그러면 그분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우리는
자기 마음에 맞는 기도를 드릴 뿐, 하나님의 의중은 전혀 파악하지 못할 때다 많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하고, 그분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분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드림으로써 큰 도약을 이룰 수 있다. 예언적
중보기도를 드리는 것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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