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2010

은혜의 성령을 거부한다면

( 11) 1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2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지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러졌도다 3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이 훼멸되었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황무하였음이로다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 떼를 먹이라 5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6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7 내가 이 잡힐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9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10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랐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11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14 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우매한 목자의 기구들을 취할지니라 16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17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
 
이 시간에 “은혜의 성령을 거부한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은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거짓 목자를 따른 이스라엘의 비극을 잘 예언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 예언은 A. D.70년 로마의 침략으로 그대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이스라엘 역사상 비극 중의 비극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배척한 죄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결코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된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거부한 모든 불신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좀 더 깊이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이 앞의 10장의 봄비와 같이 임하시는 성령과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에 무관심하고 배척하는 죄가 얼마나 큰가를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2,000년 전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믿는다면서 예수님을 배척했듯이 오늘날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성령님을 배척하고 무관심한 죄가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죄나 성령을 배척하는 죄나 모두 큰 죄입니다. 그래서 히10:29에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했습니다. 그럼 은혜의 성령을 거부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
 
1. 은혜의 성령을 거부하면 아름다운 형상을 이룰 수 없게 됩니다.  (1-3)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지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러졌도다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이 훼멸되었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황무하였음이로다”
 
여기 나무들은 침략을 당할 시 모두 작벌될 것을 가리킵니다. 아끼는 나무이건만 침략자들은 그것을 참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나무는 인성을 곧잘 비유합니다. 성막에서도 나무는 인성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마가복음 8장에 소경의 눈이 조금 열렸을 때 사람을 나무 같은 것이 보인다고 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영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성경에서 진리를 보지 못하고 나무 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나무는 인성인데 그 인성의 아름다움이란 곧 인격에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를 가리킵니다. 성령을 거부하면 이 인격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불과 같은 시험이 오면 그럴듯하게 착한 마음은 다 불타버립니다. 불타지 않는 완전한 인격은 오직 성령의 은혜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갈5:16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려면 먼저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가능합니다.
 
2. 은혜의 성령을 거부하면 유리방황하며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합니다.  (4-6)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 떼를 먹이라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메시야를 배척한 이스라엘은 마치 잡아먹힐 양 떼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생가해 보세요. 참된 목자 예수님을 죽였으니 스스로 목자 없는 양이 된 것입니다. 들판에 버려진 주인 없는 양떼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잡아먹어도 누구나 잡아다가 팔아도 죄도 안 되는 보살핌을 받지 못한 가련한 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이방 나라가 칠지라도 건져내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은혜의 성령에 무관심한 죄가 바로 그렇습니다. 마치 버려진 양떼와 같습니다. 그래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유리방황합니다. 하나님의 붙들어 주시는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치고 저것이 쳐도 하나님께서 신원해 주시지 않습니다. 고난을 당해도 주시는 위로도 없습니다. 성경의 약속이 나에게 해당 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 같고 사랑해 주시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예수도 믿어지지 않고 천국도 믿어지지 않고 영생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가련한 모습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다르겠지만 우리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래서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성령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3. 은혜의 성령을 거부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줄래야 줄 수가 없게 됩니다.  (7-14) “내가 이 잡힐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랐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에게 이 양이 과연 어떤 양인지 이 양들을 한 번 먹여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스가랴는 가장 좋은 마음 가지고 은총과 연락의 지팡이로 먹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마음을 좋게 써도 어찌나 악하게 대항하는지 한 달 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양들을 치던 목자들이 어찌나 악한지 관계를 끓을 수밖에 없었고, 그 소속된 양들도 똑 같아서 죽든지 말든지 버려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 은총은 하나님의 은혜요, 연락은 백성들 간의 유대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불신이란 존재할 수 없도록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나타나신 최선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사랑이 무엇인지 능력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이고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보여주시고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악한 지도자는 물론이고 백성들도 똑 같이 야합하여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본문 12절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은 삼십에 살 것까지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이처럼 은혜의 성령을 거부하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큰 은총을 주시고 싶어도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은총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은혜라면 연락은 성도의 교통입니다. 성령을 거부하면 이 두 가지가 다 끊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적용해 주시는 분을 멀리하고 어찌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성령의 은혜가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4. 은혜의 성령을 거부하면 거짓에 속아 헛된 것을 섬기게 됩니다. (15-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우매한 목자의 기구들을 취할지니라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
 
여기 한 목자는 바로 악한 목자입니다. 이스라엘이 참 목자 예수님을 거부한 결과 악한 목자에게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악한 목자는 양들을 사랑하지 않고 돌보지 않을 뿐 아니라 잡아먹고 발굽까지 찢어 도망할 수 없게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악한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악했는지 마 23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이렇게 진리에 우매함이란 비참한 것입니다. 오늘 날도 사이비 교주를 따르는 사람들, 교주에게 자기 영혼과 몸과 재물과 시간과 인생의 목표와 자식과 미래와 천국과 모든 것을 다 유린당하고도 그것이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교주는 자기를 떠남이 영원한 멸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이런 일이 있을까요? 그들에게 성령이 계셨다면 그 마음에 이건 아니야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 30:20-21)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라"
 
은혜의 성령을 멀리한 죄로 도움 받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은혜 받지 못하면 헛되고 헛된 죄악과 세상 것을 위해 그것이 행복인양 인생의 목적인양 일생을 그렇게 살아갑니다. 전도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1:2-3) 그랬습니다. 그런데 은혜 받지 못하면 가치의 혼란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의 상을 위해 살지 않고 땅에 썩어질 것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 전에는 모든 것이 헛된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성령 없이 하는 일들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봄비로 임하시는 성령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 전의 삶은 부끄러움이요 실패요 무가치하고 헛되며 방황입니다. 성령을 사모하십시다. 예수님을 나의 주로 믿고 하나님을 날마다 경외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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