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4/2010

제 11 강 신부의 패러다임 : 기초적 진리들 (아 1:12-17)

I. 1:5-17 개관
A. 신부는 예수님에게 “당신이 저를 어디서 먹여 주시나요?( 1:7)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그녀에게 7가지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선언하는 것(1:8a), 그녀에게 3가지 가르침을 주는 것(1:8b,c,d), 그리고 3가지 확증(1:9-11)을 주는 것입니다.

B. 그녀가 예수님의 탁자에서 먹으면서 3가지 반응을 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어둡고 포도원처럼 지켜지지 못했다는 연약함 가운데서도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합니다(1:5-7).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14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 1:12-14)

C. 그 때 그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에게 그녀가 아름답다는 계시는 더욱 증가되었습니다. 신부는 5가지 반응을 합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잘 생긴(handsome; beautiful God) 으로, 그녀가 사랑하는 분(my Beloved)으로, 화창한(pleasant) 으로서, 그래서 현재적으로는 그녀의 사랑을 안식으로 인도하며, 언젠가는 그녀를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하시는 분으로 알게 됩니다(v.16-17).

II. 십자가 묵상 :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유익 ( 1:13)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 1:13)

A.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과 그분이 십자가로 가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공급에 대한 계시를 받습니다.

B. 몰약은 인도, 아라비아, 동아프리카에 있는 여러 종류의 나무나 관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향기로운 진액입니다. 그것은 매우 값지고 향유를 만들 때 사용되며(7:17), 향을 태우는 거룩한 기름이며( 30:23), 사람을 장사지낼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19:39-40). 그것은 쓴 맛이 납니다. 세 명의 왕(동방박사)이 예수님의 탄생 때에 그분의 예언적인 죽음의 상징으로 몰약을 가져옵니다(2:11).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몰약을 제공받습니다(15:23).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합니다( 45:8).

C. 몰약은 우리의 육신적인 방식이 죽음을 직면할 때, 향기롭지만 비통한 실상을 말합니다.

D. 에스더의 아름다움을 위한 준비는 몰약과 다른 향품으로 목욕하는 것을 포함합니다(2:12). 몰약은 아가서에서 8번 언급됩니다( 1:13; 3:6; 4:6, 14; 5:1, 5, 13).

E. 고대의 어떤 부유한 여인들은 밤새도록 향기가 공급되기 위해서 몰약 한 묶음이나 목걸이를 착용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솔로몬은 이 사치스럽고 값비싼 선물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F. 신부는 예수님이 밤 동안 그녀의 품에 놓여진 한 묶음의 몰약과 같다고 선언합니다. 십자가는 왕 되신 예수님이 신부에게 주신 사치스럽고 값진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풍부한 헌물”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그분이 겪어내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우리의 가치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견뎌내신 것 안에서 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가치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실은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고 우리와 영원한 관계를 갖기 위한 길을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것입니다

G. 몰약은 우리의 마음에 밤새도록 놓여 있습니다. 밤이라는 것은 그녀의 유혹과 시련의 어두운 시간을 의미할 뿐 아니라, 견디어 내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녀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H.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임 당하신 어린 양에게 영원히 놀랄 것입니다( 5:8-12). 우리가 그분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실제로 볼 때, 영원토록 우리의 마음은 놀라고 감사로 압도될 것입니다. 끝없는 세대 동안,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놓여 있는 “한 묶음의 몰약”으로 볼 것입니다.

I. 우리는 밤낮으로 그것을 우리 마음에 가져 와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십자가를 묵상함으로 그분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1:4d). 가장 많이 순종하고 예배하는 성도일수록 십자가를 가장 많이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항상 묵상하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묵상하는 것을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지루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III. 예수님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에 대한 계시 ( 1:14)
A. 예수님은 그녀에게 아름답고 향기로운 활짝 핀 고벨화 송이와 같습니다. 고벨화는 향기로운 꽃을 가진 관목이거나 작은 나무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마음의 계시를 가진 사람들에게 고벨화 송이와 같습니다. 그분은 종교에 의해 잘못 말해지는 그런 부담스럽고 지루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1:14)

B. 진리안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이해하게 될 때, 그분의 계명은 부담스럽지 않고 그분의 멍에는 쉽습니다.

...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 11:30)

C. 예수님의 성품은 꽃들의 다발(송이)과 같습니다. 그분은 하나의 꽃이 아니라 다발입니다. 이것은 그분이 소유하고 있는 아름다움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강조합니다. 엔게디의 포도원들은 풍부한 향기로 유명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난 향기를 소유하셨습니다.  

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 ( 5:16)

D. 우리는 예수님의 진리 즉 그분이 “고벨화 송이”와 같다는 것을 온 땅에 말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 진리를 이해하게 될 때 더욱 쉽게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친절이 가득하신 아름다운 하나님에 대해서 설교해야 합니다. 그분은 복음으로 우리를 흥분시키시는 향기롭고 부드러운 하나님이십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약화)하느냐 ( 2:4)

IV. 신부가 왕의 식탁에서 잔치함 : 그녀의 예배가 일어남 ( 1:12)
A.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식탁을 제공하셨고(고전10:21), 그 곳에서 십자가와 우리가 의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오는 유익(고후5:21)으로 우리를 먹이십니다. 신부는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그녀의 구원과 관련된 진리들을 먹습니다. 이 진리들은 그녀에게 향기가 올라가는 것과 같은 예배를 가져옵니다. 이것은 탕자가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식탁에 앉을 때에 발견했던 진리들에 해당됩니다(15:20-28). 예수님의 두 번째 계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 1:12)

B. 그녀의 예배는 순전한 나드의 향기와 같이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순전한 나드는 문자적으로 “끝이 뾰족한 나드”를 말합니다. 나드는 값비싼 향유를 만들어 내는 인도에서 자라는 동양 식물입니다

C. 예수님이 우리를 먹이시는 것은 향유와 같이 우리 영으로부터 즉각적으로 올라가는 예배를 생산해 냅니다.

D. 우리는 하나님에게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이것은 감사와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2:14-16)

E. 누가복음 7장에서 한 창녀가 바리새인 시몬의 집으로 달려들어 옵니다. 그녀는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발 위에 붓습니다. 방에 가득한 향기는 그녀의 사랑 안에서 예수님이 보셨던 향기를 말합니다.

F. 우리 영혼의 원수들의 목전에서 우리가 주님의 식탁 위에서 먹을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왕의 식탁에서 우리 영을 먹이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우리는 수치와 죄책감의 압력으로 인해 굶주리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23:5-6)

G.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예수님이 소유하신 의 안에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들로서 간주하거나 알아야 합니다(고후5:21).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산 자요, 죄의 심판에서 자유케 된 자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산 자로 드리면서 “당신의 의를 내게 주셔서 나를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정죄로 가득한 거지로 오지 마세요.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 하나님께 드리라 ( 6:11-1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8:1)

H.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영으로부터 어떤 향기가 나옵니까? 하나님이 확신과 감사의 향기를 맡으시나요? “나는 마음이 어둡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나는 하나님께 사랑스럽다”라고 말하는 이해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향기로운 예배는 우리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 하루 종일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I. 예수님은 그분의 모든 대적들을 위에 승리하신 위대한 왕이십니다. 왕은 우리에게 감정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왕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계획이 편만하게 될 것을 신뢰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모든 창조된 질서 위에 왕으로 다스리는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사랑이 결정하는 것을 건설하시는 권위를 갖고 계십니다. 그분은 위대한 왕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계획은 편만하게 될 것입니다.

J. 그녀의 3가지 반응의 요약( 1:12-14) : 첫 번째, 그녀가 왕의 식탁에서 먹을 때( 1:12) 그녀의 삶은 순전한 나드와 같이 올라가는 즉각적인 예배와 경배로 가득하게 채워집니다. 두 번째, 그녀는 항상 그녀를 향한 그분의 사랑과 그분이 십자가의 몰약을 견디실 때 그녀를 위해 성취하신 것을 묵상하거나 먹이로 삼습니다(1:13). 세 번째, 그녀는 그분의 아름다움과 가득한 기쁨을 봅니다(1:14).
  
V.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 대한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계시 ( 1: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 1:15)

A. 이 단락에서 우리는 신부의 패러다임 안에 있는 두 가지 기본적인 진리들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은혜와, 그 분이 “나의 사랑”이라고 부르시는 자로서의 그녀를 향한 그분의 감정에 대한 계시 안에서 그녀는 그분에게 아름답습니다. 그녀는 미성숙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1:12-14). 이 기본적인 진리는 하나님에게 우리가 아름답다는 진리를 더 많이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구비시킵니다.

B. 우리가 연약함에도 하나님에게 아름다운 이유는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 우리의 사랑스러움은 의의 선물을 받음으로부터 나옵니다(고후 5:17-21).

두 번째, 거듭날 때 성령님이 우리 영 안에 하나님께 대한 “예”를 심어 놓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한 우리 마음의 모든 움직임은 자원하는 영이라고 불리는 그분의 사역입니다( 51:12; 26:41).

세 번째, 우리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정서적인 성격과 관련됩니다.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는 부드러운 감정들과 열정들은, 그분이 우리를 향해 어떻게 느끼시는가를 결정합니다. 아름다움은 바라보는 이의 눈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물들을 사람이 보는 것과 매우 다르게 보십니다(삼상 16:7; 55:7-9).

네 번째,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우리의 영원한 목적지의 렌즈를 통하여 우리를 보십니다.

C. 모든 신자들은 예수님이 “나의 사랑”이라고 부르시는 사람입니다. 그분은 우리 모든 각자를 사랑하고 추구하시기로 선택하셨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나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요 그분이 사랑하시는 자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 15:9)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주님의 품에 의지하여...( 21:20)

D. 우리가 아름다우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랑받고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리의 마음은 흥분됩니다.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내가 연약할 때에도 예수님 때문에 나는 하나님에게 아름답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더 빠르고 깊게 성장할 것입니다. 신부는 처녀들에게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라고 가르쳤습니다.

We will remember Your love more than wine. (Song 1:4)
포도주보다 더 좋은 당신의 사랑을 기억할 것입니다 ( 1:4 의역)

E. 신부의 영적인 여정은 2가지 믿음의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1:5). 나는 그녀가 그녀의 죄를 발견함과 동시에 그녀가 하나님께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이것을 “은혜의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값 없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 우리는 더럽고 수치스럽다고 느낄 뿐입니다. 우리가 수치를 느끼는 동안 우리는 수치스러운 일을 계속 하게 될 것입니다. 더러움을 느끼는 사람은 더럽게 삽니다. 예수님에게 아름답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미성숙한 신자는 그분에게 달려가게 되고 멀어져 가지 않을 것입니다.

F.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알게 될수록 우리는 다른 이들을 향한 그분의 빼앗긴 마음을 더욱 더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합된 교회의 아름다움도 보기를 원하십니다. 관계의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그분이 모든 크리스천을 향하여 마음이 빼앗기신다는 지식 안에서( 4:9)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1:4d).

G. 개관 : 소개하는 방식으로 그녀는 “나는 마음이 어둡지만 하나님께는 사랑스럽다”라고 고백합니다(1:5).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너는 아름답고, 너는 나의 사랑이며, 너의 뺨은 사랑스럽다”라고 말하셨습니다(1:8a, 1:9b, 10). 그리고 나서 그녀는 예수님을 아름다운 분으로 보게 됩니다(1:12-14). 이제 그분은 “너는 아름답다”라고 강조하십니다(1:15).

VI. 신부는 비둘기 같은 눈을 가졌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 1:15)

A. 성경에서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이것에 대한 내포된 몇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B. 한 마음(Single-minded) : 비둘기는 주변을 보는 시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앞만 똑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좌우에서 일어나는 일에 쏠리지 않습니다. 비둘기의 눈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눈(Single-minded)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 6:22)

C. 충성 : 비둘기는 그들의 생애에서 한번만 짝짓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들의 짝이 죽으면 그들은 다시 짝짓기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충성심을 말합니다. (: 만일 배우자가 죽었을 때 사람이 결혼하는 것이 불충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D. 15절에서 그녀 자신을 하나님에게 아름다운 자로 보는 것의 결과는 더욱 더 하나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E. 성령님은 원래부터 비둘기의 눈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분은 예수님에게 한 마음이시고 충성스러우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에게 우리에게 비둘기의 눈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F. 관점 : 우리는 예수님과 우리 삶에 대한 성령님의 관점을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고벨화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분으로 보아야 하고, 우리의 순종에 있어서와, 모든 정죄를 거절함으로 확신을 갖게 되는 은혜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VII. 신부의 예배와 믿음 : 그녀의 5가지 반응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 1:16-17)

A. 하나님에게 사랑스럽고 아름답다는 계시에 대한 5가지 반응은 비둘기의 눈으로 보는 것과 관련됩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잘 생긴(handsome) 분으로 보고, 그녀가 사랑하는 분 (Beloved) 으로 보고, 유쾌한 분으로 보는데, 그분은 그녀의 삶을 현재적으로 안식과 안정감으로 인도하고, 오는 세대에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합니다.

B. 그녀는 예수님에게 “당신은 잘 생기고 나의 사랑입니다”라고 선언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은 아름다운 하나님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더욱 더 보게 되고 그분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될수록 그녀가 하나님과 함께 걸을 때에 갖는 영적인 기쁨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16). 이것은 아가서 2:3-5절에서 더욱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아름답고 유쾌한 분으로 볼 때 충만한 순종이 더욱 합당하게 여겨집니다.

C.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에게 순종하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가 충만한 기쁨을 갖게 되거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기쁘고 즐겁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지속적인 대화를 계속할 때(1:12-17) 우리는 이렇게 하게 됩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에도 우리의 영은 이러한 기쁨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15:9-11)

VIII.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 안식, 신뢰와 영광 ( 1:16-17)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 1:16-17)

A.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그녀에게 풍부한 안식과 그녀의 삶에 대한 확신을 가져옵니다(1:16). 신부는 “풍성한 안락 의자”에서나 푸른 침대에서 안식하고 있습니다. 푸른 들판은 때때로 풍부한 들판이나 넘치게 성장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주님의 안락 의자는 편안하고 푸르고 생명으로 가득합니다. 그것은 사막(황무지)이 아닙니다. 우리의 확신은 풍성한 안락 의자와 같이 풍부한 것입니다.

B. 주님의 안락 의자는 두 가지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안식과 확신입니다.

  1. 용서의 안식 :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의 은혜로 용서받았다는 확신을 가질 때 이것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로 인해 용서를 받을 때 안식합니다.

  2. 친밀감의 안식 :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추구할 때 이러한 안식을 경험합니다. 우리 삶의 최고의 목적이 하나님과의 친밀감이라고 결론내리기 전까지는 안식이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과의 친밀감은 예수님의 지도력에 순종하는 지혜를 포함합니다. 어거스틴은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그가 안식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안식할 수 없다”라고 썼습니다.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용서의 확신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과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거리낌 없이 나아가는 위대함을 거의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C. 우리가 정죄에 대한 두려움이나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 설 때에 거리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신부의 패러다임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 대한 확신과, 교회가 우리를 종교적이라고 부르고 세상이 우리를 어리석다고 할 때에도 우리가 순종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D.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혹은 아름다움과 능력으로 가득한 집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녀가 “우리의 침대나 안락 의자”라고 언급하는 이유는 그것이 깊은 구원의 연합 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고전 6:17).

E. 그녀는 그들의 집의 들보는 백향목이며, 그들의 서까래는 잣나무라고 말했습니다(1:17). 들보와 서까래는 집을 위한 구조를 만듭니다. 집의 구조들은 숨겨져 있습니다. 백향목과 잣나무는 솔로몬 시대에 나무로 만들어진 가장 훌륭하고 값비싸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건축 자재입니다. 백향목과 잣나무는 성전을 건축하는데 사용되어졌고 그래서 그것의 구조는 부패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성전 안에 나무는 인성의 상징입니다.

F. 하나님은 견고한 집을 건축하십니다. 주님과의 거처는 강하고 탁월하고 견고합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신부를 위한 훌륭한 집을 주실 수 있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집은 강합니다. 그것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그것은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과 능력 안에서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그 집을 영원히 함께 하는 “우리의 집”으로 또는 그들의 거처로 봅니다.

너희는 ... 하나님의 권속이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느니라 ( 2:19-22) 

너희도 ...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벧전 2:5)

<출처: 카페선두주자/마이크 비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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