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4:1-8 개관
A. 하나님의 징계의 계절이 지난 후에 그녀가 아직도 믿음과 순종 안에서 성숙해 가는 과정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녀를 아름답다고 부르심으로써 신부를 놀라게 하십니다. 그녀의 성품 안에 순종하려는 갈망이 아직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그분은 그것을 인정하십니다. 아4:1-5에서 솔로몬은 농부의 언어를 사용해서 술람미 여인의 8가지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분은 여인의 삶에 움트고 있는 8가지 싹을 확증해 주십니다. 그것들은 아직 그녀의 인격으로 형성되기 이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마음 안에 있는 갈망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B. 행함의 영역에서 승리를 얻은 후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마음을 정하여 순종하기로 했을 때, 순종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마음 정한 후에, 우리는 싸우고 있는 영역에 대해서 전쟁을 선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장의 모든 단계에서, 그분의 넘치는 자비하심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으며, 그분의 즐거워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순종하는 데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승리를 원합니다.
C. 우리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때라도, 하나님께 아름답습니다. 여인의 징계의 계절이 끝난 직 후 주님은 그녀가 그분께 아름답다고 선언하십니다. 약함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아름답다는 계시는, 신실한 신자가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성장해 가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계시로 인해 변화됩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아 4:1)
D. 두려움 없는 그녀의 온전한 마음의 헌신 (아 4:6)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으로 가리라 (아 4:6)
E. 신부는 함께 산으로 가자(아2:8-13)는 그분의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정함으로써, 예수님의 확증에 반응합니다. 그녀는 이제 몰약의 산으로 가면서 십자가를 받아들입니다. 그녀는 “내가 가리라”고 말하면서 안전 지대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기로 확고히 결정을 내립니다.
F. 그녀는 그냥 “예!”라고 대답할 뿐 산에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2가지 시험(아5:2-8)을 직면하기까지 산에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분은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그녀의 자원함을 보십니다. 주님은 그녀의 연약함이나 성숙함이 아니라, 자원하는 영으로 그녀를 정의하십니다.
G. 예수님은 그녀가 온전히 아름답다고 부르시는 확증의 말씀을 쏟아 부으십니다(아 4:7).
나의 사랑 너는 (모든 것이) 어여쁘고 (아름답고) 아무 흠이 없구나 (아 4:7)
H. 그분께서 처음으로 그녀를 그분의 배우자로 부르시면서, 신부는 왕과 함께 영적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산으로 가리라는 새로운 헌신과 함께, 그녀는 충성된 신부로서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 4장에서 우리는 그녀가 성숙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아 4:8)
I. 그 후 예수님은 신부를 향한 그분의 갈망을 보여주시고(4:9-10) 그녀의 영적 삶과 열매 맺는 사역을 풍성한 동산이라고 확증해 주십니다(4:11-15). 그녀는 그분의 온전한 개입을 간구합니다(4:16).
II. 예수님의 마음은 그분의 사람들을 향하여 빼앗기셨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아4:9)
A. 이 구절은 아가서를 요약하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한 갈망으로 가득차 계신 것을 알지 못합니다. “빼앗겨진 마음”의 좋은 정의는 (웹스터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특별하게 매력적인 누군가로 인해 기쁨 혹은 즐거움의 감정으로 가득 찬 상태입니다.
B. 예수님의 빼앗기신 마음에 대한 계시는, 우리를 100가지 순종에 대해 준비시키십니다. 극단적인 순종(아4:6)에 대한 신부의 결정은 아 5:2-8에서 이뤄지게 됩니다.
C. 우리의 구원이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통한 합법적인 위치를 받아들이는 것의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고후 5:21).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감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정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더 많이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알기 때문에(요일 4:19),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분의 사람들을 향한 즐거움으로 가득합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아 7:10)
III.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패러다임
A.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패러다임은,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감정을 계시 받는 것이 기초가 됩니다. 자상한 아버지와 열정적인 신랑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계시는 종교적 역사 안에서는 새로운 사상이었습니다(히 4장에 대한 바클레이 주석을 보세요).
B. 유대 전통에서, 하나님에 대해 가장 강조된 것은 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분이 거룩하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경험을 공유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함께 공유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됨에 대한 정의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을 인간의 딜레마를 공유할 수 없는 분으로 바라보았습니다.
C. 그리스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인간으로부터 감정적으로 분리된 존재로 보았습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리스 사상가들은 스토아 학파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가장 큰 특징은 ‘아파테이아’(apatheia) 즉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음’이었습니다. 그들은 만약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느끼신다면 그분이 느끼시는 것으로 인해 영향 받거나 통제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슬픔이나 기쁨을 느끼는 존재는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을 가지고 있는 대상으로 인해 조정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누구라도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보다 큰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그리스 철학의 학파)는 신은 영원한 기쁨 안에서 동떨어져 사는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중간적인 세상에 살면서 지구 상에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신이란 큰 행복 가운데 살면서, 인간의 일들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 있습니다.
D. 유대인은 하나님을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이해했습니다. 스토아 학파는 아무 느낌이 없는 신이었고, 에피쿠로스 학파는 동떨어진 신이었습니다. 종교적인 사상들의 맥락에서 고의적으로 인간의 감정, 고통, 약함에 스스로를 구속시키는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에 대한 사상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E. 예수님은 인간 경험을 감싸 안으시고, 그래서 동정하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8)
F.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사랑, 동정, 온유를 가질 수 있으시고 자신을 사람의 옷에 감추어 십자가에서 진노를 당하실 수 있다는 것은, 첫 세기의 종교적인 성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패러다임이 그 당시 얼마나 극적이었는가를 실감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G. 깊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영에 독특한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천사들이 사랑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쁨을 가질 수 있지만 애정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사랑의 능력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상상할 수 없는 높이를 가져다 주지만, 또한 만약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다면 그 남용으로 인해 깊은 고통을 안겨줄 만큼 위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III.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계시하심 (5강의 개관)
A.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것과 똑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향해 가지신 사랑(애정)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꼭 같은 크기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치에 대한 최종적인 언급입니다. 그것은 모든 신자에게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God's favorite)로 볼 수 있는 권리를 줍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 15:9)
B. 저는 보다 강력한 순종의 모습으로서 “사랑에 근거한 순종”을 언급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에서 순종이 흘러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병에 걸린 사람은 사랑을 위해 그 어떤 것도 참아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지속적인 순종입니다. 그것은 “의무에 근거한 순종”(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의 순종) 혹은 “두려움에 근거한 순종”(부정적인 결과들에 대한 두려움에 의한 순종)보다도 강력한 것입니다.
C. 우리가 하나님의 인격 안에 있는 극단적인(사치스러운;extravagant) 열정을 이해할 때, 복음은 가장 영광스럽게 됩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것과 다가오는 부흥 가운데 혹은 영윈의 시간 가운데 우리를 위해 하실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분이 어떻게 느끼시는지 또는 그분이 하시려는 것을 왜 하시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D. 하나님의 애정에 대한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생명보다 그분을 더욱 사랑하게 합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 12:11)
E. 바울은 하나님을 위한 자신의 희생을 회고하면서,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영광과 비교했을 때 그가 포기한 것은 배설물과 같다고 증언했습니다. 사랑안에 있는 신자들에게 지나치게 큰 희생이란 없는 것입니다.
F. 위대한 질문은 “왜 하나님의께서 우리에게 마음이 빼앗겨 계신가?”입니다. 그분의 인격은 사랑의 갈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분께서 가지고 계신 인격의 모습 때문에 그러한 인자하심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평가하십니다. 예수님이 누구인가, 그분이 어떻게 느끼시는가, 그리고 그분이 삶을 어떻게 진행시키시는가 때문에, 그분은 우리 안에서 사랑스러움을 보십니다.
IV. 신부를 향한 예수님의 열정적인 애정
9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10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아4:9-10c)
A. 내 누이 - 예수님의 누이는 사람이 되신 그분과 관련됩니다(히2:11-17). 그분은 모든 일에 그분의 형제들과 같이 되시기 위해, 형언할 수 없는 겸손과 고난을 참으셨습니다(히2:17). 그분은 한 없이 낮아지셨고 우리는 그분의 누이가 되기 위해 한 없이 높아졌습니다(마12:49-50).
B. 내 신부 - 예수님의 신부로 불려진다는 것은 우리와의 사랑스러운 동역을 원하시는 그분의 갈망을 나타냅니다.
C. 누이와 신부로서의 그녀의 2가지 정체성은 7번 강조되었습니다(4:8, 9, 10, 11, 12; 5:1, 2).
D.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 - 예수님의 마음은 우리가 그분께 드리는 헌신을 보실 때마다 감동되십니다. 그분을 사랑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우리의 마음은 그분을 감동시킵니다. 우리의 순종은 어떤 특정한 영역에서 승리를 얻은 후가 아니라, 단지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순종하기로 정했을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사랑스런 자비를 자신감 있게 받을 수 있고, 성장의 모든 단계에서 그분의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 번 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의 순종과 관련되어 주목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려고 바라보는 것은, 수준 높은 결정으로부터 나타나게 됩니다. 신부의 패러다임은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메시지 안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E. 네 목의 구슬 한 꿰미 - 성경에서 목은 저항(목이 곧은)하거나 복종하는 의지를 말합니다. 왕은 그녀의 목을 원수를 물리치는데 효과적인 다윗의 망대(아4:4)과 그녀를 아름답게 하는 금 목걸이(아1:10)로 묘사했습니다. 그녀의 목에 “구슬 한 꿰미”는 그녀가 그분에게 드리는 모든 순종의 반응을 의미합니다. 사랑을 위한 우리의 모든 각각의 결정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이 그분을 향하는 모든 사랑의 움직임들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6:10)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10:42)
F.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을 아름답다고 여기십니다. 사랑 안에 기초한 우리의 순종은 우리를 아름답게 하며 예수님께 큰 기쁨을 가져다 드립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3-4)
G. 네 사랑은 포도주 보다 진하고 -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은 포도주 보다 낫습니다” (아1:2) 라고 그녀가 이전에 드렸던 고백을 돌려 주고 계십니다. 포도주의 은유(隱喩)는 마음을 유쾌하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결혼의 맥락에서 포도주는 축제의 음료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축복을 좋은 포도주로, 죄를 나쁜 포도주로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다른 어떤 특권보다 낫고 이 세대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입니다.
H. 예수님께서 “너의 사랑은 피조물의 광채보다 더 아름답도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사랑을 그분의 권위 아래 있는 모든 것들보다 귀하게 평가하십니다. 그분은 창조물을 깨끗하게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그녀가 순종하기로 내린 새로운 결정으로 인해 기쁨으로 가득 차 있으십니다(아 4:6).
V. 그녀의 마음(생각, 말,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기쁨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11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아 4:10-11)
A. 네 기름의 향기 - 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진 그녀의 사고를 뜻합니다. 보이지는 않는 향기가 식물의 내적인 질을 나타내듯이, 우리의 생각은 내적 삶의 향기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우리의 의도와 말씀 안의 묵상은 하나님께 향기처럼 올라갑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 2:14-15)
B. 각양 향품 보다 - 진귀한 향품은 값비싼 선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에게 향품을 주었습니다(왕상10:2).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이 왕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향품을 가지고 왔습니다. 향품은 제사와 희생에 사용되었습니다(출30:23-24).
C.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 이것은 그녀가 예배와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말씀드릴 때, 또한 다른 이들을 먹이거나 격려해주면서 축복할 때, 그녀의 말들이 꿀처럼 달콤하다는 뜻입니다. 그녀의 속량된 입술이나 말은 홍색실과 같다고 묘사했습니다(아4:3). 꿀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그 맛이 달콤합니다. 꿀을 생산하려면 벌이 많은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D. 내 신부 -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신부로부터 듣게 되시는 모든 사랑의 말들을 주목하고 계십니다.
E.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 이것은 약속의 땅의 특징을 나타내며 어린 아이를 먹이는 데 사용되는 두 가지 음식(벧전2:1)을 말합니다. 다른 이들을 세워주기 위해 말한다는 반복되는 주제는 성경 안에서 현저합니다(엡4:29; 골4:6). “네 혀 밑에”라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가득한 입은 그 혀 밑에 (혹은 그 마음 안에; 시 10:7) 고통(잔해)이 있습니다. 신부는 그 혀 밑에 (혹은 그녀의 마음 안에) 진리를 가지고 있고,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표현되는 것이 일치합니다. 그녀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일치되고, 동시에 진실합니다.
F.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 는 신부의 행실이 하나님 앞에서 향기롭다는 것을 뜻합니다. 의복은 신부가 순종으로 행하는 것을 나타냅니다(계19:7-8).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충성됨 없이 수치로 삶을 마치지 않도록 “우리의 의복”을 지키라고 경고하십니다(계 16:15).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그분으로부터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가 드러나지 않게 하라고 권고하십니다(계3:18). 레바논 산은 향기로운 나무와 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 시간과 물질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것과는 반대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로부터 받은 물질적인 섬김이 마치 하나님께 올라가는 향기로운 향기와 같다고 하였습니다(빌4:18).
VI. 예수님을 향한 신부의 극단적인(사치스러운) 헌신 (extravagant devotion)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아 4:12)
A. 잠근 동산 - 이것은 개인적인(대중에게 열려지지 않는) 정원입니다. 그것은 동물이 와서 더럽히지 않게 울타리를 쳐 놓은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먹을 것을 성장시키기 위하여 대부분의 동산이 사용되지만, 반대적으로 왕의 동산의 목적은 즐거움과 쉼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 가꾸어지기 위해서 많은 일꾼들이 노동을 해야 하는 값진 장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동산입니다(고전 3:6-9; 아 6:2,3; 2:16).
B. "잠근 동산” 혹은 “봉한 샘”으로 산다는 것은 죄와 타협의 오염으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잘라내는 것을 뜻합니다. 타협에 대해 마음을 잠글 때, 우리는 우리 왕의 즐거움을 위한 장소가 됩니다. 덮여지지 않고 공급되는 물은 오염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민19:15).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민 19:15)
C. 봉한 샘 - 은 (동물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더럽혀지지 않은 물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샘물은 귀한 것이었고, 동산이 잘 가꾸어지기 위해 귀중한 물을 공급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봉한 샘으로 살아가는 것은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D. 욥은 그의 눈과 언약을 세워 거룩하지 않은 것을 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욥 31:1). 이렇게 하면서 그는 마음을 잠근 동산이 되게 했습니다.
VII. 젊은 신부의 풍성한 결실에 대한 묘사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며 (아 4:13-14)
A. 그녀는 아름다운 과수(상쾌한 과일들), 향기 나는 나무, 많은 나무와 향풀로 가득한 과수원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삶과 사역에서 풍성하게 결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열매는 하나님 안에서 떠는 마음을 갖는 경건(롬6:22; 7:4-5; 갈5:22; 엡5:9; 히12:11; 13:15; 약3:18)과 다른 이를 위한 사역(요4:36; 롬1:13; 15:28; 빌1:22; 골1:5-6) 둘 다를 나타냅니다.
B. 석류(13a)와 아름다운 과일(13b)은 달콤하며,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는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벨화와 나도풀은 우리의 삶 안에 일어나는 성령님의 귀하고 값진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도와 번홍화, 창포, 계수(14a,b)는 그녀의 사역 가운데 나타나는 다양한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각종 유향목(14c)은 기도의 사역을 뜻합니다. 몰약과 침향(14d)은 십자가와 자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귀한 향품(14e)은 그녀의 사역을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는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VIII. 신부의 삶에 나타나는 성령님의 3가지 사역 묘사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아 4:15)
A. 신부는 우리의 삶에서 성령님을 경험하는 다른 방식들을 언급하는 세 가지 물의 근원으로 묘사됩니다. 신자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시 1:3)로 그려집니다. 굳어진 마음은 건조한 땅(사 1:30)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생수의 우물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요 4:14; 7:38). 샘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입니다. 우물은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시내는 높은 곳에서부터 우리에게 부어지는 성령님과 같습니다.
B. 샘은 지면 아래 감춰진 물의 근원입니다. 이것은 공급의 내적 근원 즉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말합니다(골1:27). 이 동산은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홀로 감춰진 동산; 12절과 대조적입니다). 즉 이것은 다른 이들을 축복하기 위해 흘려 보내시는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입니다.
C. 우물은 필요한 때에 끌어 올릴 수 있도록 물을 저장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우물 안의 물은 건조한 시기에 공급할 수 있도록 저장된 물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난 경험으로부터 끌어올려지는 하나님 안에 있는 개인적인 역사입니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저장된 공급의 근원을 뜻합니다.
D. 시내는 물이 밖으로 흘러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시내는 땅 밖으로 나아가며 샘물은 땅 아래 있는 것입니다. 시내는 물이 왕성하게 흘러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내는 산 즉 레바논의 높은 곳에서 흘러오는 것이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물 즉 성령님을 뜻합니다. 이것은 공급의 외적 근원을 말하는 것입니다(행 8:18).
IX. 보다 많은 기름부으심을 향한 그녀의 간구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아 4:16)
A. 그녀는 이제 2가지의 기도를 드릴 만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충분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녀는 역경의 북풍과 축복의 남풍 2가지 모두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녀는 2가지 모두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향기 나는 동산이 되는데 전략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B. 북풍아 일어나라 - 이것은 시험과 역경의 차가운 바람을 의미합니다. 이 기도는 아 5:3-7에서 제가 “궁극적인 2 가지 시험”이라 부르는 것을 그녀가 통과하면서 응답됩니다.
C. 남풍아 오라 - 그녀의 두 번째 기도는 예수님께서 그녀를 성숙시키는 축복의 신선한 바람을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각 계절에 필요한 북풍과 남풍의 적절한 구성을 아는 지혜를 가지고 계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성품과 부르심을 알고 계십니다.
D. 나의 동산에 불어서 - 그녀는 자신의 마음과 섬김의 동산이 깊게 영향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교만, 야망, 분노 등의 깊은 주머니는 우리가 어려운 환경 가운데 일하게 되면서 드러나게 됩니다.
향기를 날리라 - 그녀는 하나님의 향기로운 임재로 가득 채워지기를 갈망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녀는 사랑 안에서 자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E.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 이것은 그녀의 동산이 그분의 동산으로 변화된 것을 보여 줍니다. 그녀는 온전히 하나님이 것입니다, 그녀는 동산이 그분의 정원으로 변화된 것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온전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녀는 헌신의 기름부음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과 사역을 자기의 것 대신에 “그분의” 동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 안에 유업을 가지고 계십니다(엡 1:18). 이것은 아가서의 전환점입니다. 첫 4장에 그것은 그녀의 것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분의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열매를 먹기를 원하노라 - 이것은 예수님이 성령님이 그녀 안에 이루시는 일들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X. 예수님은 유업으로서의 신부를 즐거워하신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아 5:1)
A. 신부는 이제 예수님의 온전한 소유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분은 그녀의 삶과 사역에 있어서 주인되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9번이나 “내”(My)라는 말로 표현하십니다. 나의 동산, 나의 누이, 나의 신부, 나의 몰약, 나의 향 재료, 나의 꿀송이, 나의 꿀, 나의 포도주, 나의 우유.
B. 내가 내 동산에 들어가서 - 그녀가 예수님이 오셔서 “먹기를” 원하신다는 아 4:16의 기도에 대해 그분이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누이와 신부의 2가지 유업으로서 그녀의 온전한 소유권을 취하십니다.
C. 나의 몰약과 나의 향 재로를 거두고 - 예수님은 성령님이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 것을 모으십니다. 나의 몰약은 십자가를 받아들임으로써 예수님을 따르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나의 향 재료는 그녀의 삶에 부어지는 은혜를 뜻합니다.
D.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 예수님은 성숙한 교회의 열매를 취하십니다. 4:16에서 그녀는 그분께 오셔서 드시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교회 안에 풀어 놓으신 것을 즐기십니다. 꿀은 예수님이 그녀의 삶으로부터 취하여 드시는 즐겁게 하는 음식을 말합니다.
E.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 예수님은 자신을 향해 갖고 있는 신부의 사랑을 축하하십니다. 포도주는 축제를 위한 것이고, 우유는 힘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녀의 사랑으로 축제를 벌이시고 즐거워하십니다.
F.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 예수님은 교회가 성숙한 신자의 풍성한 결실을 즐거워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사랑 받는 친구들은 다른 신자들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 안에 역사하고 있는 죽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생명이 흘러갈 수 있음을 기록했습니다(고후 4:10-12). 그는 하나님의 향기가 하나님과 다른 이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고난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주님께서 받으시고 교회를 채우기 위한 산제물입니다(롬 12:1). 우리는 은혜로 다른 이들을 강하게 하고 먹일 수 있습니다.
G. 아 5:1의 예수님의 5가지 행하시는 일에 대한 요약 : 그분은 몰약을 모으시고 꿀송이를 드시고, 마시면서, 다른 이들이 참여하는 잔치에 그녀를 내어주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동산에 들어오셨습니다(5:1a). 즉 그녀 곁에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꿀송이와 꿀을 드셨습니다(5:1c). 즉 그녀의 성숙함의 열매를 드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포도주와 우유를 드셨습니다(5:1d). 즉 그녀의 성숙함을 즐거워하시며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친구를 초청하셔서 먹게 하십니다(5:1e). 즉 교회가 성숙한 신자들의 열매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출처:선두주자커뮤니케션/IHOP번역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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