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개관 : 삶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커지기를 구하는 신부의 부르짖음
A. 신부는 은혜의 향기가 흐르는 마음의 동산으로, 시련의 북풍과 축복의 남풍 둘 다 불어오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아 5:3-7의 2가지 시험으로 다가오는 차가운 북풍을 위해 담대하게 기도합니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아 4:16)
B. 이제는 그녀의 마음의 동산이 그분의 동산으로 바뀌는 때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그녀의 것이 아니라, 그분의 동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서 유업을 가지고 계십니다(엡 1:18). 이것은 아가서의 전환점입니다. 첫 4장에서 그녀의 관심은 자신의 유업이었습니다. 다음 4장에서는 초점이 그분의 유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소유권 아래서 살아가는 그녀 안에서 그분의 유업을 즐기십니다. 그분은 아 5:1에서 9번, 아 5:2에서 6번 그분의 소유권을 나타내시기 위해 “나의”라고 부르십니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아 5:1)
II. 예수님이 그녀를 고난의 교제로 부르시다 (아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아 5:2)
A.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난당하시는 자로 계시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부르셔서 고난의 교제 가운데 그분과 연합하게 하십니다(빌 3:10). 그녀는 2가지 시험이 따라오는 순종 가운데 반응합니다(아 5:3-5). 첫째, 예수님은 그분의 임재를 그녀에게서 가져가심으로써 시험하십니다(아 5:6). 둘째, 그분은 그녀를 잘못 다루는 영적 권위들을 허용하십니다(아 5:7). 그녀는 사랑 가운데 반응합니다(아 5:8).
내가 그와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 (빌 3:10)
B. 예수님께서 깊은 밤 동안 겟세마네 동산에서 계셨기 때문에, (밤에 내린) 이슬이 머리에 가득 덮인 “겟세마네의 예수님”으로 신부에게 오심으로써 그녀를 친밀감 안으로 부르십니다.
C.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마음을 열어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깊이를 경험하도록 부르십니다. 그분은 아 5:1에서 선언하셨던 것처럼, 그분 자신을 위하여 그녀의 마음의 온전한 소유권을 취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아 4:16의 북풍을 위한 그녀의 기도의 응답으로 그녀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두드리시는 것은 우리에게 성령님의 새로운 차원으로 들여 놓으시려는 주도성과 갈망을 언급합니다. 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새로운 분량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D. 북풍이 막 다가오기 시작할 때, 그녀는 하나님 안에서 확신 가운데 자면서 안식하고 있습니다. 폭풍 가운데 잠드셨던(마 8:23-27) 예수님은 “믿음의 안식”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순종 가운데 걸어가면서 영적인 것에 깨어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살전5:6; 롬13:11; 엡5:14).
E. 그녀는 아 2:8과 같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금 그녀에게 그분을 그녀의 연인으로 계시하십니다. 신랑의 음성은 세례 요한이 하나의 소리가 되었을 때 들었던 것입니다.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요3:29)
F. 예수님께서 친밀한 관계의 다른 면들을 나타내시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확신을 주시는 4가지 이름으로 그녀를 부르심으로써, 그녀가 자신을 그분께 열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5:2)
1. 나의 누이 - 이것은 그녀와 같은 인성을 가지셨음을 뜻합니다. 그분은 모든 면에서 그분의 형제들과 같이 되기 위하여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견디셨습니다(히 2:11-17).
2. 나의 사랑 - 이것은 그녀를 향한 그분의 부드러운 사랑을 상기시켜 줍니다. ‘은혜의 동기부여’는 두려움이나 판단 대신에 사랑과 감사에 의해 동기 부여 되는 것입니다. “애정에 근거한 순종”은 예수님의 감정을 경험한 것에서 흘러나오는 가장 강력한 형태의 순종입니다. 사랑의 병에 걸린 사람은 사랑을 위해 그 어떤 것도 견디어 내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가장 지속적인 순종입니다.
3. 나의 비둘기 - 이것은 그녀의 한 마음과 충성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비둘기로 상징되십니다. 비둘기는 짝이 죽었을 때 다시 짝짓기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비둘기가 충성스러운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둘기의 눈은 두 사물에 동시에 초점을 맞출 수 없고, 주변 시야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타협하지 않는 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녀의 눈은 그분에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4. 나의 완전한 자 - 그녀의 의도는 완전하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습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성숙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험이 있기 전(아 5:2)과 후(아 6:9)에 그녀가 모든 타협을 거절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녀를 그분의 ‘완전한 자’라고 부르십니다.
II. 신부가 온전한 순종으로 예수님께 반응하다 (아 5:3-5)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my heart yearned for him)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아5:3-5)
A. 신부는 순종 안에서 일어나 그녀의 마음을 예수님께 엽니다. 이 시험의 시간 후에 그분의 첫 마디는 그녀가 순종으로 반응하였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아6:4-5). 우리는 예수님의 의의 옷으로 덮여져 있습니다(사 61:10; 슥 3:1-5). 우리의 의로움 즉 옷은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사64:6). 그녀는 불결한 옷을 벗고 그분의 의의 옷을 입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옷을 입기를 즉 타협 가운데 살아가기를 거절합니다. 그녀는 선언합니다. “내가 어찌 나의 옷을 다시 입겠는가?”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 하심이 ... (사 61:10)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 도모하지 말라 (롬 13:14)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와 같이 시들므로 ... (사 64:6)
B. 그녀는 발을 씻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미 깨끗하였으므로 발만 씻을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요13:6-14). 이것은 매일 영적으로 씻겨져야 하는 필요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녀는 타협으로부터 자신의 발을 더럽히지 않기로 했습니다(아 5:3d). NIV는 이것을 마치 그녀가 침대에서 나오기를 거절하므로써 타협한 것 같이 번역했습니다. 문맥은 이제 그녀가 순종 안에서 예수님과 관계하고 있다는 것에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C. 하나님의 손이 마음의 문틈과 문빗장 위에 은혜를 풀어놓고 계십니다(행11:21-23). 그녀는 예수님을 그녀의 사랑 혹은 그녀가 사랑하는 분으로 말합니다. 그녀의 마음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사모하면서(my heart yearned for him) 즉시 일어나 겟세마네의 예수님을 향해 문을 엽니다. 전에는 일어나기를 거절했었습니다(아 2:13-17).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아 5:4-5)
D. 문틈에 손을 들이미시는 예수님은 그녀의 마음을 열도록 도우시는 것을 뜻합니다. 그녀의 마음이 닫혀진 것은 그녀의 결정에 영향을 주는 생각과 감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E. 몰약이 그녀의 손과 손가락으로부터 마음의 문틈으로 즙과 같이 떨어집니다. 이것은 2가지 시험의 어려움을 받아들이도록 도우시는 풍성한 은혜를 말합니다. 몰약은 장례에 쓰이는 향료입니다. 이것은 자아의 죽음과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몰약 즙과 같은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몰약이 떨어지는 손가락은 몰약의 산에 오르는 헌신을 그녀가 이행할 때, 살아 역사하는 믿음을 뜻하는 것입니다(아 4:6).
IV. 첫째 시험 : 예수님이 그분의 임재를 그녀에게서 거두어가시다 (아 5:6)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났네 그가 말할 때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물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아 5:6)
A. 주님은 아가서(3:1-2; 5:6)에서 두 차례 자신을 신부에게서 숨기십니다. 아 5:6-7에서 그녀가 온전한 순종 가운데 걸어가고 있음에도 그분은 임재를 거두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이 계절은 불순종으로 인해 아 3:1-2에서 그녀가 받았던 징계와 다른 것입니다.
B. 아 5장에서 예수님은 그녀를 “나의 완전한 자”(2절)라고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병(8절)으로 인해 그녀의 마음은 그분을 사모(4절)하고 그분을 향해 벌떡 일어나면서(5절), 자신을 열어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C. 그녀의 최고의 갈망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아1:2-4l 2:3-6). 하나님께 사랑 받는 느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느낌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쁨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D. 예수님은 우리를 버려두시거나 떠나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히13:5). 그러나 그분은 때때로 우리를 시험하시고, 우리의 사랑이 그녀가 아 4:16에서 기도했던 것처럼 성숙해지게 하시기 위해, 그분의 명백한 임재에 대한 확연한 느낌을 거두어가십니다. 이것은 죄 때문도 아니요 마귀의 공격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분의 얼굴을 순종하는 자로부터 가리시는데, 그 이유는 더 위대한 방식으로 그분을 향한 그들의 마음의 사모함을 끌어내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3:5)
E. 중세에 어떤 카톨릭 묵상집에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걸어가는 자를 시험하시는 영적 계절을 뜻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그분의 임재를 느낄 수 없는 시간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이것은 16세기 십자가의 성 요한에 의해 소개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은 이것에 대해 어떤 신학도 없습니다.
F. 욥이 의로운 사람으로서 환난을 당할 때, 그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으로 세워졌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욥1:8)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G. 그녀는 밖으로 나가 외쳐 부르면서 더욱 강렬하게 그분을 찾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러한 계절은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성숙하게 하시는 훈련의 한 부분입니다. 시험의 기간에 믿음의 고백은 항상 똑같아야 합니다.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아 2:4)
V. 두 번째 시험 : 신부가 상하고 거절당하다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져갔도다 (아 5:7)
A. 순찰하는 자들과 파수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도시의 성벽을 지키는 지도자들이나 영적 권위자들을 뜻합니다. 그들은 그녀를 때리고 상하게 합니다. 그들이 그녀를 거절하고 박해하기 전에는 그녀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낯선 사람이 당신을 고소할 수 있지만, 오직 친구만이 당신을 박해할 수 있습니다. 친구의 집에서 박해 받는 것은 예수님까지도 겪으셔야 했던 하나님의 패턴의 한 부분입니다(시 55:12-21).
B. 지도자들이 그녀의 겉옷(veil)을 벗기는 것은, 그녀의 영적 보호막(covering)을 제거함으로 그녀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역할의 영역을 제거하는 것을 뜻합니다(고전 12:10).
VI. 그녀가 드리는 겸손과 사랑의 반응 (아 5:8)
A. 그녀의 겸손은 미성숙한 예루살렘의 딸들에게도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영(teachable spirit)을 통해서 보여집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아 5:8)
B. 그녀는 2가지 시험을 허락하신 예수님께 화내는 대신에 오히려 그분을 향해 사랑의 병이 걸립니다.
누구든지 나(예수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 11:6)
C. 신부의 2가지 삶의 비전은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고 사역 가운데 그분과 함께 달려가는 것입니다(아 1:4). 그녀가 하나님께 받은 많은 약속들은 이것의 기반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 어렵고 그분의 임재에 대한 느낌조차 없을 때, 예수님께 순종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먼저 자신의 위로를 위해서 하나님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그분을 위해 순종할 것인가? 주님은 그들의 삶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분께 순종할 사람들을 갈망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유업이 되기 위해 가장 우선되는 문제입니다. 그분은 사랑 안에 함께 멍에를 짊어질 신부를 원하십니다.
D. 아가서에는 신부의 7가지 위기가 나옵니다. 죄의 위기(1:5-6); 두려움의 위기(2:8-9); 하나님의 징계의 위기(3:1); 온전한 순종의 위기(4:6, 16);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지는 위기(5:6); 교회 안에서 거절의 위기(5:7); 박해와 분열의 위기(6:13).
<출처:선두주자커뮤니케션/IHOP번역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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