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2010

하나님의 사랑 7 -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세례 요한이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약속을 이루시려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찬송가).

“보라!” 믿는 것은 보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봅니다. 성경을 통해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준비한 한 마리 속죄양입니다. 그 속죄양 위에 하나님께서는 세상 죄를 짊어 지웠습니다.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리고 하나님의 어린 양은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한 마리 양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실 때 저와 여러분의 죄도 거기에 포함됐겠습니까, 안됐겠습니까? 물론 포함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본인이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내 죄를 지고 갔다”고 해도 지고 간 것이고, “내 죄는 지고 가지 않았다”고 해도 지고 간 것입니다. 그것을 믿든 안 믿든 똑같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예수님은 다 지고 가셨습니다. “슬픔과 수고로 주께 오니 내 죄를 지시고 내 죄를 지셨네. 그 사랑 내 맘에 기쁨 되니 내 죄를 지셨네. 네 죄를 지시고 내 죄를 지셨네”(찬송가).

주님 앞에 나아올 때는 슬픔과 답답한 마음으로 왔는데, 주님 앞에 와서 말씀을 보니 주님이 이미 내 죄도 지고 가신 것입니다. 저의 죄, 여러분의 죄,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지고 가셨습니다. 그 거룩한 죄 없는 분의 몸에 우리의 죄를 지웠으니 예수님이야 말로 죄 덩어리인데, 예수님은 그 죄를 지고 어디로 가셨습니까? 죽음의 형벌을 받으러 십자가를 메고 사형장 골고다로 가신 것입니다. 죄는 죽음의 심판을 받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사형집행 전날 밤 예수님은 갖가지 고통과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십자가 형틀을 직접 짊어지고 사형장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전날 당한 고통스런 몸에 형틀을 지고 병사들의 채찍을 맞으며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머리에 가시로 엮어 씌운 면류관 때문에 예수님 얼굴에는 피가 범벅이 되었습니다.

필자가 이스라엘을 여행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관광차 운전기사가 도중에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길가에 있는 가시나무를 가리켰습니다. 그 가시는 억센 탱자나무 가시와 비슷하면서도 그 보다는 훨씬 날카롭게 생겼습니다. 일행 가운데 몇 사람이 차에서 내려 가시를 하나씩 꺾었습니다. 필자도 그 가시를 하나 꺾다가 잘못하여 가시에 찔렸는데, 금방 손에서 피가 났습니다.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날카롭게 생긴 그런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웠습니다. 가시가 예수님의 이마에 깊이 박혔습니다. 왜 가시면류관이 예수님의 머리에 씌어졌습니까?

창세기에 보면, 아담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창세기 3:17,18).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썼다는 것은 인간의 죄의 저주를 머리에 쓰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사상이 항상 악하다는 말씀과 같이(이사야 59:7), 인간이 머리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의 이마에 가시가 박혔습니다.

골고다에 도착한 예수님은 자기가 지셨던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 박혀 달리셨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높이 달리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고, 예수님은 그 형벌을 스스로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주시려는 천국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은 죽음의 잔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의 거룩한 손에 대못이 박혔습니다. 우리의 발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의 발에 큰 못이 박혔습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의 가슴이 창에 찔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으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의 몸이 채찍에 상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을 죽이신 것입니다.

오전 9시에 못 박혀 오후 3시에 운명(殞命)하셨습니다. 여섯 시간 동안 극한 고통과 수치와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전날 너무 고통을 많이 받으셨던 까닭에 조금 일찍 돌아가신 듯합니다. 예수님은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라는 말씀을 끝으로 남기고 머리를 숙이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로마 군인이 밑에서 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찌르자, 심장에 구멍이 뚫려 몸에 남은 피와 물이 다 쏟아졌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마태 27:50) 터졌습니다. 이를 보던 로마군 백부장이 심히 두려워하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27:54)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그 때 나도 거기 있었다면 무엇이라고 말했겠습니까?

주님 양편에는 강도 두 사람이 못 박히고, 예수님은 그보다 중죄인으로 취급되어 그 가운데 있는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가시면류관이 깊이 박힌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이고, 대못이 박힌 데다 무게로 인해 찢어진 양손과 양발에서는 피가 흐릅니다. 채찍에 상한 몸에서도 피가 나옵니다. 그리고 창에 찔려 구멍 난 가슴에서는 핏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십자가 밑은 온통 피로 물들고, 그 아래쪽까지 피가 흥건합니다.

그 때 거기서 그 광경을 봅니다. ‘아, 정말 비참하구나! 저 사람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렇게 죽어야만 했을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셨겠지요? 예수님께 죄가 있습니까? 성경은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고 하신 그 분입니다. 그럼 무슨 까닭으로, 그토록 비참하게 죽으셔야 했을까요? 누구의 때문에 분이 값을 담당하신 것입니까? 죄인의 , 자신의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박혀 죽으신 비참한 모습은 바로 모습입니다. 죄인인 모습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비참한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알려고 감고 생각해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비참하게 죽으신 그 광경을 그려보면 됩니다. 예수님의 그 모습은 바로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모습입니다. 내 죄에 대한 저주가 하나님 앞에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저주와 형벌을 받아야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대신 예수님 몸에다 내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심판과 저주는 그렇게 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찬송가 141 2).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그 사랑이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도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사랑도 이루어졌습니다. 완전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