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세례 요한이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약속을 이루시려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찬송가).
“보라!” 믿는 것은 보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봅니다. 성경을 통해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준비한 한 마리 속죄양입니다. 그 속죄양 위에 하나님께서는 세상 죄를 짊어 지웠습니다.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리고 하나님의 어린 양은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한 마리 양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실 때 저와 여러분의 죄도 거기에 포함됐겠습니까, 안됐겠습니까? 물론 포함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본인이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내 죄를 지고 갔다”고 해도 지고 간 것이고, “내 죄는 지고 가지 않았다”고 해도 지고 간 것입니다. 그것을 믿든 안 믿든 똑같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예수님은 다 지고 가셨습니다. “슬픔과 수고로 주께 오니 내 죄를 지시고 내 죄를 지셨네. 그 사랑 내 맘에 기쁨 되니 내 죄를 지셨네. 네 죄를 지시고 내 죄를 지셨네”(찬송가).
주님 앞에 나아올 때는 슬픔과 답답한 마음으로 왔는데, 주님 앞에 와서 말씀을 보니 주님이 이미 내 죄도 지고 가신 것입니다. 저의 죄, 여러분의 죄,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지고 가셨습니다. 그 거룩한 죄 없는 분의 몸에 우리의 죄를 지웠으니 예수님이야 말로 죄 덩어리인데, 예수님은 그 죄를 지고 어디로 가셨습니까? 죽음의 형벌을 받으러 십자가를 메고 사형장 골고다로 가신 것입니다. 죄는 죽음의 심판을 받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사형집행 전날 밤 예수님은 갖가지 고통과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십자가 형틀을 직접 짊어지고 사형장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전날 당한 고통스런 몸에 형틀을 지고 병사들의 채찍을 맞으며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머리에 가시로 엮어 씌운 면류관 때문에 예수님 얼굴에는 피가 범벅이 되었습니다.
필자가 이스라엘을 여행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관광차 운전기사가 도중에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길가에 있는 가시나무를 가리켰습니다. 그 가시는 억센 탱자나무 가시와 비슷하면서도 그 보다는 훨씬 날카롭게 생겼습니다. 일행 가운데 몇 사람이 차에서 내려 가시를 하나씩 꺾었습니다. 필자도 그 가시를 하나 꺾다가 잘못하여 가시에 찔렸는데, 금방 손에서 피가 났습니다.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날카롭게 생긴 그런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웠습니다. 가시가 예수님의 이마에 깊이 박혔습니다. 왜 가시면류관이 예수님의 머리에 씌어졌습니까?
창세기에 보면, 아담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창세기 3:17,18).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썼다는 것은 인간의 죄의 저주를 머리에 쓰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사상이 항상 악하다는 말씀과 같이(이사야 59:7), 인간이 머리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의 이마에 가시가 박혔습니다.
골고다에 도착한 예수님은 자기가 지셨던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 박혀 달리셨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높이 달리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고, 예수님은 그 형벌을 스스로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주시려는 천국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은 죽음의 잔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의 거룩한 손에 대못이 박혔습니다. 우리의 발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의 발에 큰 못이 박혔습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의 가슴이 창에 찔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으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의 몸이 채찍에 상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의 죄(罪)가 예수님을 죽이신 것입니다.
오전 9시에 못 박혀 오후 3시에 운명(殞命)하셨습니다. 여섯 시간 동안 극한 고통과 수치와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전날 너무 고통을 많이 받으셨던 까닭에 조금 일찍 돌아가신 듯합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라는 말씀을 끝으로 남기고 머리를 숙이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로마 군인이 밑에서 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찌르자, 심장에 구멍이 뚫려 몸에 남은 피와 물이 다 쏟아졌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마태 27:50) 터졌습니다. 이를 보던 로마군 백부장이 심히 두려워하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그 때 나도 거기 있었다면 무엇이라고 말했겠습니까?
주님 양편에는 강도 두 사람이 못 박히고, 예수님은 그보다 중죄인으로 취급되어 그 가운데 있는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가시면류관이 깊이 박힌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이고, 대못이 박힌 데다 무게로 인해 찢어진 양손과 양발에서는 피가 흐릅니다. 채찍에 상한 몸에서도 피가 나옵니다. 그리고 창에 찔려 구멍 난 가슴에서는 핏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십자가 밑은 온통 피로 물들고, 그 아래쪽까지 피가 흥건합니다.
그 때 거기서 그 광경을 봅니다. ‘아, 정말 비참하구나! 저 사람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렇게 죽어야만 했을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셨겠지요? 예수님께 죄가 있습니까? 성경은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 나를 죄로 책(責)잡겠느냐”고 하신 그 분입니다. 그럼 무슨 까닭으로, 그토록 비참하게 죽으셔야 했을까요? 누구의 죄 때문에 그 분이 죄 값을 담당하신 것입니까? 죄인의 죄, 곧 내 자신의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비참한 모습은 바로 내 모습입니다. 죄인인 내 모습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비참한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알려고 눈 감고 생각해 볼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비참하게 죽으신 그 광경을 그려보면 됩니다. 예수님의 그 모습은 바로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모습입니다. 내 죄에 대한 저주가 하나님 앞에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저주와 형벌을 받아야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내 대신 예수님 몸에다 내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될 심판과 저주는 그렇게 예수님이 다 받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찬송가 141장 2절).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그 사랑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도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사랑도 이루어졌습니다. 둘 다 완전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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