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인 기원전 1,500년경부터 기원후 100년까지 약 1,600년이나 되는 긴 기간에 걸쳐 기록되었다. 기자(記者)는 약 40명이며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기록된 구약이 39권,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 기록된 신약이 27권, 합계 66권으로 되어 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성경을 기록한 장소는 시나이 반도, 이스라엘, 바벨론, 소아시아여러 지역, 로마, 지중해 작은 섬 등이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신분은 학자, 혹은 장군, 왕, 농부, 어부, 의사, 세리 등으로 높은 지위의 사람도 있고 천한 사람도 있으며, 유식한 사람도 있고 무식한 사람도 있어, 여러 계층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 성경을 기록했다. 유식한 자라고 하여 자기의 유식(有識)을 기록한 것도 아니고, 무식한 자의 무식이 그대로 쓰여진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이다. 다만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종이가 없었으므로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기록하였다.
그런데 성경은 곧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나 보는 책으로 잘못 인식되다 보니, 특정 종교의 경전(經典)으로서 평가되기도 하고 막연히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고전(古典)의 하나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전승(傳承)과 신화를 모아 놓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란 표현이 신구약 합쳐 3,800번 정도 나온다. 성경 기자들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기록하라고 하신 것을 받아서 기록한 것이라고 성경 곳곳에서 증거한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지도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가라사대’ 라고 했다니까 그렇게 믿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이 기록케 하셨다면 그게 사실인지 분명히 밝혀지게 되어 있으므로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예로써 다음의 말씀을 실례로 든다.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예레미야 30:1,2).
“유다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년에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예레미야 36:1,2).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 갈대아 땅 그발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에스겔 1:1,3).
만일 사람이 자기의 생각을 기록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그 거짓은 금방 드러나고 만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지식의 범위를 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설사 어떤 영적 계시(啓示)로 썼다고 해도, 그 계시를 준 영이 하나님이 아닌 바에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알고 계시는 일을 드러내 주지 못한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쓰라고 하셨다는 언급이 없을지라도, 그 말씀하신 바가 하나님의 지혜의 소산인지 사람의 지혜로부터 나온 것인지는 연구해 보면 안다. 사람의 두뇌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조차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이란 구절이 3,800번 씩이나 사용된 성경이 사람이 지어낸 것인지, 참으로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고 인간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하나님께서 섭리와 계시로써 기록케 하신 말씀인지 연구해 보고 살펴보자.
다음으로, 성경이 종교(宗敎)경전이나 도덕(道德)경전은 아닌가도 짚고 넘어가겠다.
종교라는 것은 사람이 신을 찾으려는 노력 혹은 신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선행·고행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종교라는 것은 사람이 신을 찾으려는 노력 혹은 신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선행·고행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섬기는 대상을 향한 헌신과 봉사, 자신을 정결케 하기 위한 수행 또는 타인에 대한 선행에 대하여는 어떤 기대가치가 내재되어 있고, 해당 종교의 경전들은 결국 그것을 행하게 하고자 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런데 성경은 정반대의 측면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 뜻을 이루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어떤 노력·행위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없음을 선포한다.
종교경전은 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외면적인 행위를 규제할 행위의 준칙(準則)일 뿐이지만, 성경은 종교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창조주의 뜻이다. 읽어 보지 않고서도 “아! 성경, 참 좋은 말씀이죠!” 라며, 마치 사서삼경이나 명심보감 등과 같이 인간 언행을 가다듬어 줄 좋은 가르침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더도 말고 4복음서만 읽어 봐도, 정신 차리고 보면 무서운 경고가 더 많다.
지옥 심판(審判)을 경고(警告)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를 향해 하는 소리인데, “좋은 말씀”이라니 그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오래 전에 미국의 저명한 법률가요 문학가이며 다재다능한 인재로서 뉴멕시코 주지사를 지내기도 했던 웰리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웰리스는 ‘사람이 지어낸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가 어째서 하나님의 아들인가? 그는 단지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웰리스는 자신이 허구(虛構;fiction)라고 생각해 온 성경을 연구하여 ‘사람이 지은 책’이라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생각을 했다. 그런 목적하에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속적인 조사와 연구를 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의 완전성·정확성을 시인,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그가 성경에서 생명과 진리를 발견한 후 가장 먼저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이 바로 그 유명한 『벤허(Benhur)』이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조차 익숙한 명작을 탄생시켰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라고 성경을 비판하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다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게 된 사람은 수없이 많다. 웰리스가 발견한 것처럼 성경은 하나의 종교경전이 아니다. 한 마디로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는 증거로 주신 하나님의 책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진리를 찾는 마음으로 자세히 성경을 상고하면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 5:18).고 말씀하셨다. 일점은 히브리 문자 중에서 가장 작은 부분이며, 일획은 의미가 변하는 문자 중에 가장 작은 부분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는 성경은 결코 폐하지 못하는 것이며 (요한복음 10:35 참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 24:35)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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