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란
우리는 흔히 몹시 놀라거나 무서움을 당하거나 충격적인 일을 당했을 때 "아, 혼났다"라고 합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편을 향하여 "너, 혼 좀 나봐야 알겠니?" 혹은 "혼낼 테다"라는 말들을 쓰기도 합니다.
국어사전에서 '혼이 나다'라는 말은 '정신이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충격을 받았을 때에 심장이 일시적으로 멎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며 때로는 죽기도 합니다. 의학계에서는 뇌사상태 또는 심장의 정지 상태를 사망이라고 하고, 종교계에서는 육체에서 정신이 빠져나가는 것 또는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사망이라고 합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영혼이란 육체가 아니면서 육체에 깃들여 인간의 활동을 지배하며 죽어서도 육체를 떠나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정신적 실체'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불사불멸의 신령한 정신'이라 했고 철학에서는 '인간이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은 지성과 의지를 발휘하며 영원히 존재한다'라는 영혼불멸설이 있으며 불교에서는 '윤회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영혼이 존재하느냐'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영혼이 실재한다면 나의 영혼은 어디에서 왔으며 죽은 후 나의 영혼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결코 무심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만 있는 영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왜 생길까요? 이것은 바로 동물들에게는 없는 영혼이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은 영혼이 없기 때문에 인격체라 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이 땅에서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서 끝나는 것입니다.
동물과 식물과 미생물이라는 삼자(者)가 공생 공존하는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그들 모두는 인격체인 사람을 위해 생존하다가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므로 그들에게는 영원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서는 인간을 위해 노동을, 죽어서는 살코기를 제공하고 가죽을 남기고 기름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인 것입니다. 지상에서는 가장 존귀한 존재입니다.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격체입니다. 사람의 육체를 분석해보면 그 값은 불과 몇 푼 안 되지만 돈으로는 그 값을 정할 수 없는 엄청난 존재로서 즉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만물 위에 존재하는 인격체인 것은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자유의지를 지닌 영(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혼이 없다면 사람은 한낱 원숭이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단지 물질의 집합체라는 이 육체는 물질이기에 물질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어쩌면 그렇게도 위대하고 장엄하고 도저히 값으로는 따질 수 없는 인격체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디에 있나?
그렇다면 이 영혼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대자연의 법칙 속에서 반드시 그 목적과 이유가 있습니다. 목적이나 이유, 근거도 없다면 그것을 대 법칙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육신이 아니라 그 속의 영혼인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이 육신 속에 나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가 육신이 죽으면 영혼이 분리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이며 육신은 눈에 보이는 한낱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흙이라는 물질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불행한 일로 인하여 그 "오른팔"이 영영 떨어져 나갔다면 즉 수술로 잘라 내야 할 경우 "나를 왜 자르느냐" 혹은 "나를 왜 쓰레기통에 넣느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나"는 잘려 나간 그 "오른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잘려 나가지 않은 부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오른팔"이 나를 떠나서 어디로 실려 나가 물에 태워지든 . 쓰레기 더미 속에서 썩든,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진 것입니다. "나"는 100% 여기에 있는 것이지 잘려 나간 만큼 "내"가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양팔과 양다리가 모두가 잘려 나갔다고 해도 역시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이지 결코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몸의 반이 잘려 나갔다고 했을 때 몸의 반쪽은 여기 에 있고 나머지 반쪽이 저기에 있다고 해서 두 개의 "내"가 있는 것도 아니며 오로지 "나"는 잘려 나간 것과는 관계없이 그대로 완전한 "나'로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나라는 영혼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머지 반마저 썩었다고 해서 여기에 있던 "나"도 육체와 함께 썩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없어지고 썩어지는 것은 물질로 구성된 육체인 것이지 영혼이 어찌 같이 썩겠습니까? 나머지가 없어졌다고 해서 "내"가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갔다는 말일까요? 다만 썩어진 물질과는 관계없이 "나"는 그냥 남는 것입니다. 육체 속에 깃들어 "나"라는 형태를 가진 눈에 보이는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인간들은 각각 다른 모습의 인격체를 갖고 있습니다."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맨 처음의 생각이 어떠하냐에 따라 인격이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생각"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인격도 모두 다르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생각"은 또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어떻게 마음을 결정할 것인가?"라고 하는 그 "사고(思考)의 배경"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이 곧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라는 영혼이며 나의 실체인 것입니다. "나"라는 실체가 없다면 생각이나 행동, 습관, 인격도 없는 것입니다.
영혼이 곧 사고를 조종하고 이 사고에 의해 행동하며 각자 개성이 다른 인격체로 형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살인자나 간통자, 사기꾼, 사업가, 선량한 사람등등. "나"라는 실체가 " 어떻게 생각하게 하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의 수천수만 수억 종류의 인격체가 모여 사회체제 속에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육체 모두가 썩어진 후의 나의 실체인 "나" 즉 "나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말입니다.
영혼이 돌아갈 곳
"영혼은 과연 어디로 갈까요?" 참으로 허황(虛荒)되고 막연한 생각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나는 그 어디에서부터인가 왔다는 이 사실은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디에서부터 왔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죽은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는 사람이 참 많은 듯합니다. 그리고 쉽게 알 수 없는 일이라며 "그걸 알 수 있다면 내가 당장 유명한 철학자가 되게?" 혹은 "죽으면 그만이지", "모두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나도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천국이 어디 있고 지옥이 어디 있어? 당신은 가 봤어?"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말이 있습니다. 닭이 없는 데 달걀이 생겨날 수 없고 달걀이 없는데 닭이 어떻게 생겨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은 해결할 수 없는, 팽팽히 맞선 어떤 논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어느 것이 먼저였느냐에 대해서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먼저냐에 대해서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닭이 먼저 라면 그야 당연히 달걀을 낳을 수 있지만 달걀이 먼저라면 달걀은 절대로 닭이 될 수가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달걀은 반드시 닭이 적당한 온도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품어 주어야만 부화가 되고 병아리가 되는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두면 썩어 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닭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구상에 있는 모든 종류의 동물의 최초의 조상들은 모두가 한 쌍의 똑같은 모양의 성숙된 어미들이 먼저 생겨나지 않고는 지금의 동물 후손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최초의 어미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는 생겨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최초의 어미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는 생겨날 수가 없으므로 우리 인간들은 그 만든 자를 "창조주" 또는 "조물주"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흙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연을 다스리며 살아가도록 하심으로 이 세상의 역사(歷史)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진행 과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의 진행 과정 속에서 이 순간 살고 있으며 그 목적이 모두 이루어지면 창조의 대상은 영원 속으로 들어갑니다. 결국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되돌아가고 그 영(靈)은 창조주께서 도로 찾아가실 것입니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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