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역설의 종교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삽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집니다. 그리고 움켜쥐는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손을 펴서 주는 사람은 부요하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받기 원하는 자는 주라!" 이것이 씨앗 신앙의 두 번째 원리입니다. 그리고 요절은 누가복음 6:38절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빌립보서 4:19절은 물론이요, 이 구절도 암기하시기 바랍니다.
받는 것은 주는 것을 뒤따릅니다. 바침의 기회를 거절하는 것은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면 그것이 곧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숨을 쉴 때마다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뱉습니다.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는 내뱉어야 합니다. 농사하는 농부는 땅에 주어야 합니다. 즉 그는 씨를 심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잡초 이외에 아무 것도 수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씨앗을 심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만 씨앗 신앙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 신앙과 십일조는 다릅니다. 십일조는 어떤 수확이 있은 연후에 그것에서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입니다. 반면에 씨앗 신앙은 우리가 받을 수 있도록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후에 주는 것이 아니라 받기 전에 주는 것입니다. 농부는 항상 밭에 씨앗을 먼저 뿌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경이 약속하고 있는 축복을 누리려면 씨앗 헌금을 드림으로 먼저 축복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씨앗을 심을 때 얼마나 심어야 할까요?
오랄 로버츠 목사님은 "당신이 하나님께 바치려할 때 너무 많은 것으로 출발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신앙 정도에서 출발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리하게 시작부터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여러분의 믿음대로 시작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작으나마 수확의 기쁨을 맛보십시오. 일단 수확을 함으로써 씨앗 신앙이 실제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여러분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더 많이 심고 싶어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둡니다. 이것이 만고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한 많이 심는 것이 좋습니다. 많이 심을수록 많이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좋은 씨는 다 먹어버리고 부실한 것들을 뿌리는 것 보았습니까? 못 보셨지요? 농부는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씨로 뿌립니다. 씨앗이 좋은 것이 아닐 때 그것은 싹이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라더라도 수확이 적게 나오든지 아니면 전혀 없든지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씨앗 신앙의 기적"이라는 책에서 오랄 로버츠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당신이 바칠 때 가장 좋은 것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주님의 가장 좋은 것을 구하십시오. 희생의 정도가 큰 만큼 축복의 정도도 큽니다. 예수님은 '네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도 도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고통의 풍랑 위를 걸을 때"라는 책에 보면 오랄 로버츠 목사님의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툴사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교회는 흑인들 사이에 세워진 침례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는 감옥에서 예수님을 만나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나온 후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목사안수를 받아 툴사에다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지 교회가 비좁아 건물을 신축해야만 했습니다.
한 번은 오랄 로버츠 목사님이 그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그는 씨앗을 심는 믿음을 통한 세 가지 기적의 열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이 갖고 있는 지폐 중에서 가장 큰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드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있는 어떤 절실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드릴 것을 부탁했고, 그로써 하나님이 그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기대하라고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가장 좋은 것을 먼저 드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구하고, 또 그것을 기대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교회의 헌금 드리는 관습에 따라 줄을 서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들 자신이 지닌 가장 큰돈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모든 회중들이 주님께 헌금을 드릴 때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런 광경은 오랄 로버츠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 주의 수요일에 교회의 한 과부가 담임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 여자 분은 나이가 많고 교회 안에서 영향력이 있는 분으로서, 모든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자 성도님은 목사님에게 빨리 좀 와 주십사고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집에 오자 그 여자 분은 지갑을 열어서 닳아빠진 20불 짜리 지폐 한 장을 목사님께 건네주었습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이 "자매님, 이것은 너무 큰돈입니다. 우리보다는 당신에게 이 돈이 더 필요합니다"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지난 주일날 오랄 로버츠 목사님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지폐를 하나님 앞에 드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목사님은 자기의 음성이 아니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셨어요.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을 통해서 나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과, 그럼으로 인해서 우리의 가장 큰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될 거라고요. 그런데 나는 주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오랄 로버츠 목사님 자신의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5센트 짜리 몇 개만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이후부터 나는 오랄 로버츠 목사님이 아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에게서 큰 지폐를 내어라. 그리고 나서 너의 가장 필요한 것을 내가 채워줄 것을 믿으라!' 이 20불 짜리 지폐는 꼭 필요한 때를 위해서 내가 저축해 두었던 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꼭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이 그의 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목사님, 이제 이 20불을 거절하지 않으시겠지요? 그렇게 되면 제게서 기적을 빼앗으시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니 받으세요."
그 목사님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그 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과부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수년 동안을 두려운 생각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드리는 적은 헌금, 그것을 저는 그다지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질 못했습니다. 나는 내가 드린 것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그것을 되돌려 받지 못할 것 같았지요... 그런데 오랄 로버츠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나의 돈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에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내게 다시 되돌려주실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사업을 위해 가장 큰돈을 드린 것입니다. 이제 나는 달라졌습니다. 나의 영혼은 평안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돌보아주실 것을 믿습니다. 다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앞으로 더욱 더 많은 씨앗을 심을 계획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 부인은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필요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채워주시는지 교회에서는 더이상 어떤 것도 가져다 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크게 고무시켰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부인처럼 좋은 씨를 심으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돈 중 가장 큰 것을 심고 기적을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필요가 크면 클수록 더 큰 금액을 심으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말을 해주면 종종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나 드릴 게 있어야 드리지요. 저는 너무나도 궁핍하기 때문에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랄 로버츠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나가 줄 수 있는 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당신이 아무것도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가장 줄 것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면 엘리야가 찾아간 사렙다 과부였을 것입니다. 당시 기근이 몹시 심했습니다. 과부에게는 한 조각 떡을 구워만들 밀가루와 기름 몇 방울이 전부였습니다. 그것으로 마지막으로 떡을 만들어서 사랑하는 자식에게 주고 죽을 작정이었습니다. 이런 과부가 드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극한 상황에 ?獵? 과부에게도 드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그 떡을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과부는 경멸하는 눈초리로 쏘아보거나 히스테리칼하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심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가뭄이 다 지나가도록 밀가루 통에서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통에서 기름이 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 결과 과부와 아들은 기근이 다 지나도록 날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며 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식사 대접 한 번하고 이렇게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저와 생각이 같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엄청난 재산을 바친 것도 아니요, 식사 대접 한 번 한 것뿐인데 어떻게 이런 큰 축복을 받을 수가 있었을 까요? 왜냐하면 돈의 가치는 사람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돈이 그 액수대로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돈이 그 액수대로가 아니라 바치는 사람이 느끼는 대로 그 돈의 가치를 인정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계산법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 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막 12:41-44)
똑같은 액수를 드리더라도 그 사람의 형편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하나님 앞에서는 그 돈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그것은 상대적으로 더 좋은 씨앗이고, 따라서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궁핍할 때야말로 최고의 씨앗을 하나님께 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심을 것이 없다 라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지고 있는 적은 것이라도 심으십시오. 하다못해 천원이나 혹은 백원이라도 심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경제적인 기적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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