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2010

과연 무엇이 성경적인 교회인가? 1

오늘부터 이 달 30일 마지막 주일까지 계속해서 연재로  과연 성경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성경이 말하는 교회, 정말로 주님이 이 땅에서 교회는 이런 모습이 되어야된다  라고 간절하게 소원하셨던 주님이 꿈  꾸셨던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떤가, 사랑과진리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인가? 성경적인 교회인가? 아니면 인간이 세워놓은 제도나 전통이나 또는 교단이나 또 어떤 신학의 흐름의 제한을 받는 그런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가 저희는 그것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얘기하던지 간에 성경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만 합니다. 성경이 아닌것은 우리가 참고할 뿐이지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다시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정검하기 원합니다. 또 우리 교회와 우리 교회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의 교회들, 어떤 모습이 되어야될 것인가를 우리가 진지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성경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왜 제가 전하게 되었냐하면 저희가 올 해로 창립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진리교회를 세운지 10주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저희가 여기까지 오게 된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안에는 말 할 수 없는 고민이 있습니다. 갈등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기 위해서 아무리 애를 쓴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것 때문에 제 안에 고민과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고 주님이 다 받으실까, 우리가 모여서 기도한다고 주님이 다 들으실까, 우리가 열심히 모여서 교회 행사를 한다고 주님이 정말로 기뻐 받으실까, 이런 것에 대한 끊임없는 궁금증, 그리고 정말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모습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될까에 대한 소원함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언제나 부딪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그것은 저는 아직까지 이 교회다, 바로 이 교회가 그토록 주님이 꿈꾸시던 바로 이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그교회다 라는 교회를 찾아 불 수가 없었습니다. Sample이 없는 거에요. Example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항상 고민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 아, 우리가 이런 교회를 닮아가면 좋겠다, 이런 교회를 따라가면 좋겠다’ 하는 그런 example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런 한 없는 고민과 갈등이 제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 그런 고민과 갈등을 아시고 다시 한번 올해 10주년을 맞이해서 2월달부터 교회에 대해서 새로운 주님의 마음, 주님의 그 desire, 주님의 뜻, 주님의 계획, 주님의 plan을 말씀해 주시기 시작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저는 약 4주에 걸쳐서 성경적인 교회인가? 정말 성경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저도 전통적인 교회에서 자랐어요. 아주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아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러분들에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건 그럼에도 그 교회는 절대 성경적인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교회에서 자라면서 그것이 교회인줄 알고 자랐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전부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교회의 전부가 아닌줄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진짜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랐던 교회, 여러분이 어떤 교회에서 자랐든지 간에, 여러분이 어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셨든지간에 여러분이 자랐던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는 아닙니다. 아니,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제가 왜 이렇게 자신있게 말씀드리는지 성경을 통해서 증명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됩니까? 주님께서 절에게 이런 마음을 주셨어요. 마지막 때가 되면 주님이 정말로 꿈꾸셨던 교회, 주님이 그토록 소원하셨던 교회, 정말로 성경적인 교회를 회복하실 것이다. 

그런 소망을 주셨어요. 주님이 교회를 회복하실 것이다. 사실 이 제목만 말하면 저는 흥분해요. 저는 이 제목만 말하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이렇게 exciting한 주제가 없어요. 하나님이 이 주제에 대해서 exciting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주제에 대해서 exciting하지 않군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주제로 우리가 감동해야되요. 하나님이 감격하시는 주제로 감격해야되요.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기뻐해야되요. 

하나님이 슬퍼하실 때 우리는 슬퍼해야되요. 그런데 교회가 정 반대로 가고 있어요. 하나님은 슬퍼하시는데 교회가 혼자 기뻐해요. 신랑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교회는 기뻐해요. 신부는 기뻐해요. 그건 말이 안되죠. 그죠? 우리는 주님의 관점이 우리의 관점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가는데 우리의 마음이 가도록 해야됩니다. 주님의 관심이 있는곳에 우리의 관심이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가장 관심있는 것이 교회이고 영혼들이에요. 교회가 회복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적인 교회가 어떤것인지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아멘,

지난 신간에 제가 두 가지를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냐, 가장 성경적인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교회를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찾을 수 있고 그 외에 부분적으로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우리가 가장 집중적으로 보기 원하는 것은 사도행전입니다. 

성경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냐? 첫째로 지난 번에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성경적인 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에요. 바꿔 말하면 모이기를 힘쓰지 않는 교회는 절대 성경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배웠습니까? 일주일에 딱 한 번 가는것이 제대로 가는 거라고 배웠잖아요? 그리고 수요예배는 누가 나가는 거에요?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이 나가는 거에요. 그렇죠? 혹시 우리가 그렇게 아셨다면 그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하나님이 그토록 꿈꾸시는 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에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한 곳에 모였더니..임하셨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꿈꾸시는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됨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일 때 부터 시작되었어요. 모였을 때 교회가 시작되었어요. 모이지 않고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모여야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모인 다음에 그 다음에 우리가 흩어지는 것은 그 다음 문제에요. 

일단 모여야 교회가 되는 거에요. 모이는 것을 힘쓰는 것이 바로 성경적인 교회요 하나님이 꿈꾸는 교회요 사도행전 2장 46절에 ‘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Daily, every day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이 말은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모이기를 힘쓰지 않으면 모일 수 없다는 거에요. 모이기를 힘써야만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날마다 모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저는 예언을 잘 안하죠, 제가 예언자가 아니니까, 목회자이기 때문에, 제가 그런데 예언합니다. 반드시 그 때가 옵니다. 모든 성도들이 날마다 교회에 모여드는 그런 시대가 올것입니다. 반드시 올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이에요. 이번에도 저는 그 샘플을 봤어요. 날마다 작으면 천 명, 많으면 이 천명, 삼 천명, 매일 모여서 기도하고 매일 모여서 예배드리고 매일 모여서 찬송하고 매일 모여서 교제하고 매일 모여서 주의 말씀을 듣는 그런 교회를 보고 왔습니다. 그런 교회는 역시 날마다 구원얻는 수를 더하니라 그러니까 날마다 부흥하는 거에요. 하나님의 교회는 날마다 부흥해야되요. 

아쉬운것은 우리 사랑과 진리교회는 매 주일 부흥해, every Sunday, 그런데 우리는 every Sunday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매일 부흥해야 됩니다. 매일 부흥을 경험해야 됩니다. 매일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봐야 합니다. 매일 우리의 삶의 변화를 경험해야 됩니다. 매일 우리 삶에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날마다 모여야 됩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 25절에 ‘서로 돌아보아’ 나만 돌아보지 말고 우리 지체를 좀 돌아보아라, 집사님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장로님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시험에 빠졌는지, 요즈음에는 왜 교회에 안보이시는지 매일 돌아보아라, 매일 돌아보아서 서로 격려해라, 사랑을 베풀어주어라, 무엇이 주님이 기뻐하시는가를 전달해 주어라.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어라. 그리고 이렇게 권면해라, 우리가 모이기를 힘써야 됩니다. 우리가 모이기를 힘써야 됩니다. 

이번에 탄자니아에  Glory of Christ,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교회 과지마 목사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과지마 목사님이 저에게 아주 귀한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성도들이 시험에 든 싸인, 시험에 든 싸인 10가지를 그 리더들에게 다 가르친데요. 그래서 그 싸인이 보이기 시작하면 즉시 찾아가는 거에요. 그런데 첫번째 싸인이 뭐냐하면 교회에 뜸히 보이기 시작한다. 교회에 뜸하게 나오기 시작한다. 그게 첫번째 싸인이래요. 

여러분 우리가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시험에 들면 맨먼저 뭐하게 되요? 교회에 안나오게 되요. 안나오게 되요. 왜요? 보기싫으니까, 아무게도 보기싫고, 이것저것 다 보기싫고, 목사님도 꼴보기 싫고 다 보기 싫으니까 교회에 오고싶지 않죠. 교회를 왠지 내가 가고싶지 않다. 교회가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즉시 자기자신을 정검해봐야 되요. 

여러분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정말로 은혜가 충만했을 때는 교회가 기다려지고 교회가 나오고싶고 그러잖아요. 아멘, 아멘, 그런데 그 은혜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서서히 교회를 안가고 싶어지고 교회를 서서히 안가기 시작하면 뭐하기 시작해요? 딴 것을 찾아가기 시작해요. 그런데 딴 것을 찾아가는 것이 반드시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것을 하게되요. 그렇게 되게 되어있어요. 순리데로. 그래서 영영 교회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경적인 교회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에요.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입니다. 아멘, 옆 사람에게 ‘날마다 모입시다’ 속으로 ‘당신이나 모이세요’ 그러지 마시고 네, 날마다 모입시다. 

여러분이 고민하실 거에요. 그러면 언제 돈 벌고 언제들 뒤치닥거리 하고 언제 남편 공양하고 언제 합니까? 여러분, 주님이 도와주시면 다 하게 되어있어요. 다 하게 되어있어요. 다 그거는 핑계이고 excuse 에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진리교회가 정말 성경적인 교회인가 어떻게 알아요?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인가? 그것만 보면 금방 알아요. 제가 볼 때에 정직하게 보면 우리 사랑과 진리교회는 아직 성경적인 교회는 아닙니다. 첫 째, 날마다 모이지 않습니다. 둘 째, 모이는 사람들만 모입니다. 그리고 세 째, 아직도 모이기를 무척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아직 성경적인 교회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 기도하십시다. 우리 사랑과 진리교회가 성경적인 교회가 되도록, 아멘.

두번째, 그러면 모여서 뭐하는가? 모이기는 자주  모이는데 모여서 엉뚱한 짓 하는  교회가 너무 많아요. 보니까 모여서  게모임도 하고요. 모여서 고돌이도 좀  하고, 모여서 또 한잔씩 좀 꺾고, 또 모여서 취미생활, 그 취미생활이라는 아름다운 명목하에 세상과 점점 가까와지는 모습들을 저희가 보게 됩니다. 여러분, 원수와 하나님의 관계는 정확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그 쪽에 가까이 가 있는 거에요. 어느 순가, ‘ 어, 내가 마귀쪽에 가까이 왔네,’ 이미 늦은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쪽에 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죠? 네, 제가 지난번에 지옥에 갔다온 어느 분의 간증을 통해서 말씀드린 중에 한 자매 간증이 이런 간증이 있어요. 그가 지옥에서 고통중에 고통 당하고 있을 때 자기의 음성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는 거에요. 자기의 이름을 불러요. 부르는데 누가 부르나 보니까 예수님과 과지마목사님이 자기를 끌어당기는데 반대쪽에서 마귀도 끌어당기고 예수님도 끌어당기고 지옥에서는 마귀가 끌어당기고 예수님은 그 딸을 건져주기 위해서 끌어당기고 끌어 당기는 그 상황을 잘 설명했더군요. 

얼마나 기가 막혀요, 얼마나 기가 막혀, 여러분, 주님이 끄시는 쪽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마귀가 끄는 쪽으로 가지 마시고 그것이 바로 모여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되요. 모여서 자칫 잘못하면 시험에 들어요. 모여서 자칫 잘못하면 딴 길로 가게되요.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초대교회일들은 모여서 한 일이 딱 정해져 있어요. 그들은 모여서 기도에 힘썼어요. 

성경을 한 번 보세요.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12절, 13절을 이이서 말하기를 그 때 당시에 예수님의 재림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그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모여서, 같이 모여서 뭐했는가, 보니까 그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15절에 ‘모인 무리수가 한 일백이십명이나 되더라.’ 약 120명이 모였는데요. 모여서 뭐했느냐하면 열심히 기도했다는 거에요. 모여서 뭐했다고요? 기도했다고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임은 일단 모여서 기도하는 거에요. 모여서 기도가 없는 모임은 우리가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모임이 되었던 간에, 아니 목사님, 모여서 놀 수 도 있죠, 네, 놀 수도 있습니다. 모여서 친교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제가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모여서 기도를 통해서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서 놀면 더 재미있어요. 한 번 놀아보세요. 저도 놀기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또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교제하고,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취미생활하고, 은혜가 충만한데서 할 때와 은혜가 없이하는 것 하고는 많이 달라요. 

여러분 은혜가운데 무엇을 하시든지간에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러기 위해서는요 기도에 힘써야되요. 여러분이 잘아는 사도행전 2장도 마찬가지죠. 그들이 모여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 교제했다. 떡을 떼었다. 기도하기를 힘썼다. 교제하기를 힘썼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와 떡을 떼고 나눔과 그리고 기도하는 이 네가지 요소가 성경적인 교회, 초대교회에는 항상 있었어요. 그 중에 기도에 힘썼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야만 합니다. 여러분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4장31절에도 그런 말씀이 있죠. 저희가 빌기를 다하매, 여기에서 어떤 내용이냐하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바와 같이 사도행전 4장은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다음에 그 다음에 그것이 문제가 되어가지고 옥에 갇혔다가 풀려나와서 하는 내용입니다. 그 때에 그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전도하지 말하라 라고 엄히 경고하고 협박하고 위협해서 내 보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다시 돌아와서 그 동료들과 함께 교인들과 함께 그 있었던 일들을 다 나누어요. 나누고 난 다음에 또 모여서 기도하는 거에요. 간절히 기도합니다. 뭐라고 기도합니까? ‘하나님, 저들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을 한번 보십시요.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 담대하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손을 뻐치사 병든자를 고쳐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하잖아요. 기도하고 난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우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했다는 거죠. 기도했을 때에 그들이 성령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세번째로 성경적인 교회인가, 하나님이 꿈꾸시는 그런 교회인가, 그  세번 째 키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인가? 저는 사도행전을 보면서 깜짝 놀란게  뭐냐하면 사도행전 1장 2장에서 매 장마다  성령이라는 말이 빠지면 사도행전이  진행이 안되는 거에요. 사도행전은 다른 말로 하면 성령행전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무슨 일을 하셨냐하면 교회를 일으키시는 일을 하신거에요. 성령이 교회를 세우시는 일을 하는 거에요. 성령이 복음으로 세상을 점령해가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이에요. 사도행전은 성령을 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으로 충만한 책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만 성경을 보니까 어떤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인가?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왠줄 아세요? 교회의 시작도 성령으로 시작한 거에요. 교회가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을 부어주셨고 그리고 그들이 성령 충만한 다음에 각 나라의 말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교회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교회가 알려지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어쩐일이냐 몰려오시 시작했고 몰려오기 시작하니까 베드로가 성령충만해서 설교를 하니까 삼천명이 구원을 얻어서 초대교회는 하루에 120명이 구원을 얻어서 3120명이 된 거에요. 하루 아침에, 교회를 탄생시키신 거, 교회를 유지시키는 것, 교회를 발전시키는 것, 교회를 흥왕케하는 것,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성령이에요. 

성령만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거에요. 그러니까 성령이 충만하지 않은 교회는 교회가 아니에요. 교회행사를 하는 것 뿐이죠. 교회 모양을 갖춘 것 뿐이죠. 교회인체 하는 것 뿐이죠. 성령충만하지 않은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로 사랑과 진리교회가 성령충만한 교회인가? 아니면 다른 것으로 충만한가, 우리는 아주 객관적으로 그리고 아주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2장4절도 마찬가지에요. 

모였던 120명이 다 성령충만 했을 때 비로소 교회로서 발돋음을 시작하는거에요. 그 전에는 모여서 기도만 했어요. 그런데 모여서 기도만 했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자칫 잘못하면 기도만 하면 단가? 기도만 하면 밥이 나오나? 기도만 하면 뭐합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의미는 너희가 교회로서 교회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너희가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 너희가 교회다운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충만을 받아야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성령충만을 받을 때 까지는 교회행세도 하지말고 기다려라 그랬잖아요. 비로서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을 때 그들은 교회다운 모습을 드러낸 거에요. 드러낼려고 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거에요. 성령이 그렇게 하시는 거에요. 여러분, 성령이 우리 교회를 드러나게 하실 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가 앞서가서 행하면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이 알아서 하세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제 사도행전을 쭉 보면은요 이 성령충만한 얘기에요. 사도행전은 성령충만한 얘기에요. 사도행전은 성령충만한 교회 얘기에요. 사도행전은 성령충만한 사람들 얘기에요. 성령충만한 사람이 이렇게 했다더라. 성령충만한 사람이 저렇게 했다더라,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더라, 그러니까 교회가 삼천명 오천명 날마다 부흥하더라 그런 얘기에요. 이 사람이 성령충만하니까 귀신이 쫓겨 나가더라, 이 사람이 충만하니까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더라, 이 사람이 성령충만하니까 기적이 일어나더라, 성령충만한 얘기가 사도행전이라니까요. 성경적인 교회가 어떤 교회에요? 성령충만한 교회인가? 베드로가 성령충만해서 설교했습니다. 성령충만해서 설교했을 때에 사람들의 반응은 ‘아 목사님, 설교 기가막히게 잘하시네요’ 정말로 성령충만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설교를 듣게되면 그런 생각이 안나요. 

성령충만한 설교를 듣게되면은요 여기 성경에 보니까 ‘마음에 찔려..’ 그랬어요. 이건 제 얘기에요. 제가 문제에요. 제가 성령충만하게 설교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분 안에 마음이 찔림이 없는 거에요. 사실 교회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목회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설교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설교자가 성령충만하지 않고 엉뚱한 지식이나 갖다대고 엉뚱한 정보나 갖다대고 그러니까 교회가 변하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저를 위해서 기도해 줘야 되는 거에요. 제가 날마다 성령충만할 수 있도록 내가 성령충만해서 설교 할 수 있도록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충만한 사람들의 메세지를 들을 때에는 여러분의 생각속에서 지적인 판단이 잃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받습니다. 머리로 받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받습니다. 

저희 교인들이 그래요. 예목사님의 설교를 듣고나서 교인들의 말이 좀 강해졌데요. 제 설교를 들으면 말이 너무 부드러워가지고 감이 잘 안온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예목사님 말씀은 강하고 단어 선정이 확실해서 감이 팍팍 와닿는다고. 도착했습니까? 힘차게 아멘, 성령충만한 설교를 들으니까 이 사람들이 듣고 마음에 찔림이 왔다는 거에요. 그 마음에 찔림이 와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꼬 라고 물어보게 될 때에 베드로 가로되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똑같은 얘기 하는 거에요. 내가 성령충만하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너희도 성령충만하면 되는데 너희가 성령충만한 비결은 회개하고 죄사함 받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느 것이죠. 그래서 사도행전 2장 41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런가하면 사도행전 4장 8절도 마찬가지에요. 

이렇게 시작합니다. ‘베드로가 성령에 충만하여 가로되’ 베드로가 제정신으로 말한게 아니에요. 베드로가 성령충만해서 말했을 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4장 23절 2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모여서 열심으로 기도하니까 31절에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이제는 모든 교인들이 다 성령충만을 받았어요. 그리고는 성령충만하니까 뭐하게 되요?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되요. 여러분 성령충만한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성령이 덜 충만한 사람은 안나타나는데 성령이 충만한 사람의 특징은요 담대히 입을 열게 되요. 그게 참 신기하죠. 

여러분 성경을 보면 베드로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저 베드로 못배운 사람인데 어쩌면 저렇게 담대하게 조리있게 말을 잘하지? 그렇죠? 예수님의 제자들이 일반적으로 그렇게 담대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성령충만하니까 특징이 담대해지는 거에요. 여러분 담대해지면 사람이 못할게 없어지는 거에요. 담대해지면 두려움이 없어지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뵈는 것이 없어요. 

오직 주님만 보이더라.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성령충만하면은요 내 대상이 왕이건, 임금이건 상관하지 않고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게되요. 그러니까요 이게 둘 중에 하나에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사람이 미쳤거나 아니면 이사람이 진짜 뭔가를 나에게 얘기하는구나, 둘 중의 하나 반응이 나오는 거에요. 우리 사랑과 진리교회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외부사람들에게 그 교인들은 성령에 미쳤어 미쳤어, 이런 말을 들어야되는 거에요. 그게 정상이에요. 

그런 교회를 본적이 없으니까, 그런 성도들을 본적이 없으니까 우리는 정상이 뭔지 모르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는 제대로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됩니다. 성경을 보세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고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모두 다 미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미쳤다는 말을 안듣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어찌하여 지금도 제정신이라는 말을 듣고 계십니까? ‘그 형제 사랑과 진리교회 가더니 미쳤어 미쳤어’ 그 말을 들으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에요. 그런데 무엇에 미쳤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그 정도까지 우리가 성령에 사로잡혀야 된다는 거에요. 그러지 않고는 우리가 이 세상을 이길 제간이 없어요. 그러지 않고는 죄를 이길 길이 없어요. 그런 다음에 여러분이 잘아시는 사도행전 6장에 보시면 일곱 집사 얘기가 나옵니다. 제자들이 일곱 집사를 어떻게 뽑았어요? 사도들이 일곱 집사를 어떻게 뽑았어요? 이 교회 이 중요한 살림을 누구에게 맡길것이냐? 교회 중요한 살림을 누구에게 맡길 것이냐? 교회 오래 다닌 사람, 많이 배운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 학벌이 좋은 사람,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교회 살림은 누구에게 맡겨요? 성령이 충만한 사람요, 성령이 충만한 사람, 다른 것은 보지도 않았어요. 기준은 딱 한가지, 성령이 충만하냐? 여러분 보세요.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이 일곱 사람을 선택하는 장면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는요 성령충만한 사람, 믿음 충만한 사람, 지혜가 충만한 사람, 그래서 칭찬듣는 사람들이 교회를 이끌어가야되요. 그래야지 문제가 없어요. 

오늘날 교회에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직분자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세웠기 때문에. 성령 충만하지 않은데, 믿음 충만하지 않은데 지혜충만하지 않은데 세워 놓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에요. 어찌되었던 간에 우리는 사랑과진리교회 어떤 사람이 교회 살림을 맡아야되고 어떤 사람이 이 교회 지도자가 되어야 되는가, 어떤 사람이 이 교회에 영적이 리더가 되어야 되는가, 성령충만한 사람, 믿음 충만한 사람, 지혜가 충만한 사람, 성도들에게 칭찬듣는 사람, 이 사람들이 되어야지 교회가 문제가 없어요. 그렇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 예들은 성경에 가득차있어요.

여러분이 잘아시는 사울, 사울이 자기가 믿는 그 믿음 충만해가지고 자기가 아는 성경지식이 충만해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결박해서 예루살렘의 옥에 잡아서 가두는 일에 압장사고 있을 때 주님께서 사울을 만나주셨죠.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 사울을 쓰시기 전에 뭐하세요? 성령충만하게 하세요. 주님은요 사람을 쓰시기 전에 먼저 성령으로 채우셔야되요. 왜, 성령으로 채우지 않으면 쓸 수가 없어요. 

성령충만할 때만 주님은 주님의 뜻대로 쓰실 수 가 있기 때문에 사도행전 9장 17절에 아나니아를 통해서 바울에게 안수하고 성령충만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주의 일을 하지 않아야되요. 성령충만하지 않고서는 교회 봉사도 하지 말아야되요. 성령충만하지 않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 교회를 섬기는 일이 너무 귀한 일이에요.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여러분이 성령충만하지 않다면 여러분이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섬기세요. 아무리 작은 일이지만, 아무리 안내이고 아무리 중보기도 봉사고 어떤 봉사이던 간에 여러분이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한 다음에 성령이 주시는 은혜를 가지고 성령이 주시는 힘을 힘입어서 여러분이 봉사를 해야 문제가 없지 성령의 약기운이 떨어지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 거에요. 

우리는 여러분 날마다 성령충만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바나바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나바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주 경손한 사람이에요. 바나바 이름 자체가 위로하는 자, 권면하는 자, 세워주는 자, 그런 뜻이에요. 아무도 사도바울을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꺼려할 때 바나바가 사울을 데려가서 제자들에게 소개해주고 관계를 융합시킨, 그리고 실제적으로 사울이 바울이 되기까지 맨토 역할을 했던 바나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바나바가 없으면 바울이 없어요. 그런데 바나바는 사도행전 11장 에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착한 사람이요. 그런데 착해가지고서는 다 안되요. 제가 보니까요 우리 교인들은 다 착해, 예목사님이 보셨잖아요.

 다른 교인들처럼 물어뜯는 교인들은 없잖아요. 짖는 교인도 없고, 우리 교인들은 다 착한데 문제는 뭔가하면 착하기만해요. 착해가지고는 아무일도 못해요. 그런데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플러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아멘. 착하기만 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하세요.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하면 착한 사람이 빛이 나요. 악한 사람도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이 쓰시는데 착한 사람은 오죽하겠어요. 

저는 하나님께 감사해요. 감사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착해요. 착하다보니까 좋은 점이 있어요. 저를 안괴롭혀요. 그런데 착하다보니까 약점이 있어요. 진취력이 없어요. 진취력이…, 제가 그러니까 끌고 나가기가 벅찰 때가 있어요. 여러분 착한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옆사람에게 착한것 가지고 안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은요 재미있는 스토리들이 많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서 바울이 파워 인카운터하는 장면이 많이 나와요. 파워인카운터라는 말은 능력대결이에요. 

그러니까 성령충만한 사람과 마귀 충만한 사람이 대결하는 거에요. 멋있잖아요. 그런 멋있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그런 장면이 연출될 때마다 굉장히 중요한 키가 뭐냐하면 바울이 성령이 충만했다는 거에요. 여러분이 귀신과 한판 붙으시려거든 여려분이 마귀와 한판 붙으시려거든 성령충만해가지고 해야죠. 만약 여러분이 성령충만하지도 않는데 그냥 똥배짱으로 갔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에요? 망신 당하는 거에요. 네, 망신 당하지 말고 성령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여러 스토리가 많지만 재미있는 스토리가 뭐가있냐하면은 바울이 성령이 충만해가지고 박수 엘루마라는 사람을 쳐다봐요. 박수, 여러분 이 무당도 진짜 무당이 있고 가짜 무당이 있다고 들으셨죠? 이 박수는 진짜 무당이에요. 진짜 귀신과 내통해서 제대로 하는 무당이에요. 이 제대로 하는 박수와 바울이 만난거에요. 정면대결을 한 거에요. 

누가 이겨야되요? 그런데 오늘날은 누가 이겨요? 박수가 이기고 있어요. 여러분, 오늘날 교회가요 성령충만하지 않으니까 이 원수와의 영적대결에서 맨날 지는거에요. ‘바울이라는 사울이 성령충만하여 그 박수를 주목하고’ 그 말은 그 박수의 눈을 쳐다보고, 그 말이에요. 우리가 그렇잖아요. 싸울 때는 눈을 쳐다보잖아요. 눈을 쳐다보고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괘계와 악행이 가득한자,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요, 주의 바른길을 굽게하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어떻게 이렇게 담대해요? ‘보라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얼마나 신납니까 여러분, 얼마나 신나요? 이런 영적인 대결이 있어야죠. 우리 삶의 현장에도 이런 대결이 있어야죠. 박수와 한 번 붙어보는 거에요. 성령이 충만해서 박수를 주목하여 이 마귀의 자식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랬다가 된통 혼날까봐서 마귀의 새끼님, 이렇게 해가지고서야 되겠어요? 성령이 충만하면 담대해지기 때문에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담대하게 말하게 되는 거에요. 그럴 때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여러분도 깜짝 놀라는거에요. 

여러분도 속으로 놀래실거에요. ‘어, 진짜 되네’ 되요, 성령충만하면 되요. 그러나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안되요. 성령충만이 그토록 중요한거에요. 성경적이 교회인가? 안디옥에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제자들이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에 그 교회가 홍황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이번에 아프리카에 가서 카부크에 있는 교회에서 집회 할 때도 성령이라는 주제로 했고 그리고 몸바사에서 청소년 집회를 할 때도 성령이라는 주제로 했는데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제가 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 분이 이 땽에 오셔서 그 분이 행하셨던 모든 일들을 그 분이 행하실 수 있었어요. 그렇죠? 네, 병든자를 고치셨습니다. 죽은자를 살리셨습니다.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원수와 싸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신 모든 사역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이루신 것이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셨는데 이루었다는 거에요. 어떻게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을 제가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것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지만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을 가지고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았지만 우리와 똑같이 마귀와의 싸움을 겪어야 했지만 그러나 그 분이 그 일을 감당하실 수 있었던 유일한 한가지 이유는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기 때문에 그 분이 비로소 나가서 기적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자에게 행하시고 병든자를 낫게 하시고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교회에게도 마찬가지에요.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 되기 위해서 반드시 우리에게는 성령충만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거에요.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런 다음에 성령충만을 받으라. 그러니까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죠. 내 지혜로 하는 것이죠. 내 노력으로 하는 것이죠. 그것은 다 내것에요. 주님이 카운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해서 했을 때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이 하신 일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묻겠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령충만함을 받습니까? 어떻게 하면 성령충만함을 받습니까? 우리가 부분적으로 다 아는 부분이어도 우리가 다시 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아는 것과 또 우리가 그렇게 사는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사랑과 진리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가운데 성령충만한 삶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이 이야기를 계속 해야만 합니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성령충만한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성령충만함을 받습니까?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어요. 사도행전 2장 38절도 그렇고 사도행전 3장 19절도 그래요. 성령충만의 비결은 첫째도 회개요 둘째도 회개요 세째도 회개요 철저한 회개만이 성령충만을 가지고 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거룩하신 영이기 때문에 죄 가운데 머무실 수가 없어요. 우리가 정결하고 거룩함을 회복하는 만큼 성령은 우리에게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가 키요 회개가 열쇠요 그토록 회개를 강조하는 이유가 그거에요. 내가 회개한 만큼 성령충만하고 내가 회개한 만큼 변화되기 때문이에요. 회개가 열쇠요, 첫째도 회개요 둘째도 회개요 세째도 회개, 회개하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강팍해져서 우리의 마음이 무더져가지고 더이상 회개하지 못하는 심령이 될 때 그 심령은 정말로 위험한 심령이요 회개하지 못하는 심령이 가장 위험한 심령이에요. 

왜냐하면은요 주님도 어떻게 하실 수 가 없어요. 주님은 오직 회개하는 심령에만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성령충만함을 받는 첫번째 비결은 회개하는 거에요.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여러분 마음에 찔림이 오거나 여러분의 양심에 가책이 올때는 즉시 회개하셔야되요. 만에 하나라도 여러분이 그 회개를 미루어서 하루가 넘어가봐요 여러분의 마음이 단단해지죠. 금방 강팍해지고 금방 무뎌지고 그러면 회개가 안되요. 하루를 넘기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두번  째 우리가 어떻게 성령충만함을 받습니까? 기도에요. 기도. 여러분 참 신기하죠, 사도행전 2장에 성령의 강한 역사가 나타나서 초대교회가 그야말로 폭팔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도 그들이 기도하던 중에 성령이 임했어요. 기도하다가 성령이 임했습니다. 마찬가지에요, 4장도 마찬가지에요. 그들이 모여서 빌기를 다하매, 그들이 기도를 다 마친 다음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어요. 그러므로 원리는 간단합니다. 어떤 분들이 저한테 물어봐요. 목사님, 언제까지 기도합니까? 성령충만할 때까지 기도해요. 성령충만할 때까지 기도합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마세요. 성령충만할 때 까지 기도하는 거에요. 성령충만함 받을려고 기도하는데 뭐하러 일어나요?

또  그 다음에 사도행전에 보니까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임해요. 그건 어떤  경우냐하면은요 성령충만한 사람이 말씀을  전할 때, 성령충만한 사람이 말씀을  전할때, 우리 예목사님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수사랑으로 꽉 채워지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여러분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어쩌든지 저희 교회에 오셔서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충만하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충만한 베드로가 설교할 때, 성령충만한 바울이 설교할 때 성령충만한 주의 종들이 설교할 때 성령이 임해요. 그런데 그럴 때 임하는 것은 조건이 한가지 있는데 마음을 열고 듣는 사람에게만 임하더라고요. 똑같은 설교자가 설교하는데 여러분 예목사님이 성령충만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을 듣고 성령충만해지고 어떤 사람은 시험들어가지고 이 교회에 안나와야지 이렇게 되면 안되잖아요.

 마음이 열린 사람은 성령충만한 메세지를 들을 때 그 성령충만한 설교자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그러면서 성령충만하게 되는 거에요. 제가 은혜를 듬뿍 받을 때 특징을 제가 보니까 항상 제가 입이 벌어져있어요. 그리고 제가 은혜를 듬뿍 받을 때 보면 설교자에게 완전히 빠져있어요. 빠져있어요. 그 사람은 틀림없이 은혜 받아요. 이것은요 설교자와 설교를 듣는자가 한마음이 되야 되는 거에요. 그래야지 뭔가 역사가 나타나죠. 우리 교회도 그렇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성령충만하면 그게 가능한거에요. 그러니까 제가 성령충만한 메세지를 전할 때에도 여러분의 마음이 항상 열려있어야 되요. 여러분 마음에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되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요. 오늘 주님이 주의 종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날 것이다. 이런게 있어야지, 뭐 오늘도 그 말씀이 그 말씀이고…, 여러분 그런데요 한 얘기를 또 들어도요 우리가 마음을 열고 들으면 은혜가 되는걸 어떻게해요. 그러니까 여러분 마음을 여는 것이 열쇠입니다.

또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는가? 성경을 통해서  보니까 안수를 통해서, 안수, 여러분 안수가  참 귀한거에요. 사람들이 안수에 대해서 잘 몰라요. 네, 기회가 되면 제가 또 언제 안수에 대해서 나누겠지만 안수는 참 귀한겁니다. 그러나 귀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지만 또한 반대로 안수를 통해서 참 희귀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특별히 안수를 통해서 성령충만함을 받아요. 조건은 성령충만한 사람한테 안수를 받아야 성령충만이 전이가 되요. 마귀충만한 사람한테 안수를 받으면요 마귀가 전이가 되요. 그러나 성령충만한 사람, 특별히 여러분 설교자나 사역하는 사람은 알아요. 특별히 성령께서 강하게 감동을 주셔서 안수하게 하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안수를 통해서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를 하세요. 

그럴 때 안수를 받아야되요. 그런데 제일 모자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하면 화장실에서 볼일보다가 만나서 거기서 안수해달라고 하는 사람, 이거 제 얘기가 아니고요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저한테 그러시더라구요. ‘아, 목사님, 제가 아주 혼났습니다.’ ‘왜요?’ 화장실에서 만났는데 기회는 이 때다 하고 목사님, 안수해주세요 그러니까 이거 화장실에서 어떻게 해야되는 거에요. 물론 주님께서 화장실에서도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뭘 모르시냐하면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실 때 안수를 받아야되는 거에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주님께서 안수를 받아야겠다는 감동을 주실 때 안수를 하죠. 아무때나 시도 때도 없이 않하죠. 어찌되었던 간에 안수를 통해서 성령충만함을 받을 수 있고 안수를 통해서 은사들이 불일듯이 전이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얌채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꼭 그것만 바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만, 물론 않바라는 사람보다 낫지만 그것만 바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하면 위험한 사람이에요. 자기 멋대로 살다가 저거는 좀 받아야 되겠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좀 받을려고 머리를 디미는 사람. 여러분 사도행전에 시몬이라는 마술사도 마찬가지에요. 시몬은 분명히 베드로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었어요. 믿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런데 바울이 안수하는 것을 보니까 막 성령이 임하니까 나도 안수하면 성령이 임하는 것좀 다오 내가 돈 줄께. 이렇게 되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마치 하나님의 귀한 것을 돈 주고라고 살려고 하는 사람, 그건 위험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안수를 통해서 성령충만을 받을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들을 우리가 불일듯 전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수를 사모해야되지만 우리가 조심스럽게 지혜롭게 해야되는 것이죠.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알겠지만 아무에게나 안수받지 말고 여러분, 여러분이 증인이시죠. 저희 교회에 제가 아무나 안세우쟎아요. 보셨잖아요. 검증되지 않은 사람은 세우지 않습니다. 열매가 좋지 않은 사람은 세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순수한 사람을 세울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의 사역을 통해서 그분들의 순수한 기름부음이 흘러들어오도록, 때묻은 기름부음, 10년 20년 되가지고 냄세나는 그런 기름부음 말고 신선한 기름부음, 하나님이 제한없이 부어주는 그런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그 성령의 기름부음이 흘러가기를 원하는 거에요.

신선하고 순수하고 깨끗하고 거짓이 없는 그런 기름부음이 흘러가기를 원하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아요, 여러분? 오늘 배웠잖아요.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이 성령충만할 때까지 기도하세요. 성령충만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의 말씀을 통해서 충만을 받으세요. 그 분들의 안수를 통해서 충만을 받으세요. 우리가 시시때때로 성령충만함을 받아야하는 이유는 성경이 그렇게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성령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은 계속적인 시제의 말이에요. 성령충만을 받고, 받고 또 받고, 내가 오늘 성령충만을 받았으니까 내일은 안받아도 된다가 아니라 오늘 성령충만을 받았지만 내일 또 받아야되고  everyday의 성령충만을 받으라 그 말이에요. 

왜냐하면 어제의 성령충만이 나를 지탱해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오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의 필요한 성령충만을 받으셔야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성령충만을 받는 것도 잘하지만 우리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것은 또 성령을 소멸도 잘해요. 여러분 성령충만 받는것 쉽지 않아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 정말 뼈를 깍는 회개 하잖아요. 성령충만함을 받기 위해서 정말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세요. 

성령충만함을 받기 위해서 정말 우리 하나님께서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신선한 기름부음과 성령충만을 받게하세요. 받으면 뭐해요? 나가면서 쏟아버리는데. 멀리도 안가요. 왜 그러냐구요 왜, 그렇게 귀한것을 왜 그렇게 값진 것을 그냥 쉽게 쏟아버리냐구요. 주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기 위해서 얼마나 큰 댓가를 치루셨냐고요. 40일 기도해가지고 그렇게 받은 성령충만요 한 번에 없어지는 것 아세요? 단 한번, 두번도 아니고 단 한번, 한번만 화네세요. 한번이면 족해요. 

성령충만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령을 근심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거에요. 에베소서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구원받는 날까지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주실 그 성령님을 근심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에요? 여러분?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야 됩니다. 

또한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되요. 데살로니가 5장 19절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도 참 안타까운 일인데 아예 성령을 소멸하는 사람, 이 소멸한다는 뜻은 무슨 뜻인가 하면 불을 꺼버린다 그런 뜻이에요. 이런 뜻이죠 여러분, 우리 사랑과 진리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정말 간절히 100일을 작정기도를 했어요. 

이제 성령의 불을 받고 충만을 받았어요. 그리고 성령의 불이 이제 붙어서 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누가 거기다가 찬물을 짝 끼얹는다 그 뜻이에요. 우리 주위에는 그런 사람 있죠? 그런데 사명을 이 땅에 띄고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소멸하면 안돼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분이 어떤 분이신데,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내 안의 성령을 소멸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즉각적으로 멈출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되요.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믿음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아멘, 사랑과 진리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토록 꿈꾸시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성령충만해야되요. 성령충만 만이 그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출처:LTC/벤자민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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