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9:42-46절입니다.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43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44 내가 그 회막과 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45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46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우리가 예배회복에 대해서 쭉 살펴보고 있습니다. 먼저 예배회복의 중요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타락한 예배에 대해서 살펴볼 예정입니다
오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 길을 인도하시고 지도하시기 위해서 예배가 어떻게 회복되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볼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서 참으로 중요한 구절임을 볼 수있습니다.
과거에도 여러번 보았지만 출19장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광야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엄청난 일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독수리 날개로 업어 내게로 인도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로 인도한다는 말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출29:46절입니다.“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아까 읽은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임하시고 거하시며 두루 행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지도하사 그들을 인도하시는 그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건져내서 하나님께로 인도하신다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회복과 예배회복의 절실한 필요를 볼 수 있습니다.
1.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 : 그것은 성전된 삶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우리는 교회회복과 예배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전에 관한 것이라고 어떤 사람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 나오는 성전은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오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고 더 나아가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1)구약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로 의도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것은 신구약 여러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역대하 6장 18-19절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완성하고 봉헌하면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18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19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이 성전은 근본적으로는 기도하는 집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곳 예배하는 곳임을 볼 수 있습니다. 사66:1-2절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마가복음 11:17절입니다.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행7장을 보면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핍박합니다. 너희 두목 예수가 모세의 율법을 멸시했다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유대인들이 대대적으로 기독교인들을 핍박할 때 스데반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면서 성전에 관해서 말하는 말씀이 46절부터 나옵니다.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의 의도되지 않은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이스라엘을 다녀왔는데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지을 것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솔로몬과 이사야의 관점과 예수님과 스데반의 관점은 똑같은데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2)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전삼고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구약부터 그럽니다. 출15:17-19절입니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 무궁하시도다 하였더라 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
여기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배하셨다 사람의 손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다. 보기에 아름답습니다. 주의 성소는 하나님이 친히 자기 손으로 세우신 성소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는 주의 기업의 산 앞으로 시온산에 세워질 성전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성소는 완료형으로 이미 세웠음을 말하며, 따라서 여기 성소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시114편 1-2절에서 말합니다. “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이 방언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즉 하나님이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성소는 하나님의 백성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만 해도 성전을 지으라고 할 때 회막을 지으라고 할 때 회막이 어디에 있었는가?
오늘 본문을 보면 회막에 대한 약속입니다. 너희는 대대로 회막의 문앞에 서서 거기 서라고 말합니다.
모세의 경우 회막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막의 회막이 있었고 따로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인 회막은 진 밖에 세웠고 출애굽기 33장을 보면. 그런데 성막으로 불려진 회막은 어디에 있었는가? 이스라엘 진 한 가운데 있었어요. 그리고 동서남북으로 세지파씩 있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전삼고 그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 가운데 두루 행하시고 지도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영원히 통치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전삼고 거하기를 열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약에 와서 더욱 명맥해집니다. 여러분 신약을 토대로 구약을 해석해야 합니다. 이것이 명확한 법칙입니다. 구약은 약속이고 신약은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성전만 해도 신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의도하신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명백하게 볼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시는 성전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개개인의 성도이고 또 하나는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입니다. 고전 3장과 고후 6장입니다.
고후6:16-18절입니다.“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구약에서 성전에 대해서 예언하신대로 성취되어서 우리가 교회가 개개인의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의 성전에 대한 비전은 오늘날 완성인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더 나아가 성전의 최종적인 완성은 하늘나라입니다. 계시22장을 보면 하나님의 성전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매 라고 말함으로 최종적인 완성은 하늘나라에서 완성됨을 말합니다. 신약성경도 우리가 성전이 되었다고 말하는 동시에 에베소서 2장을 보면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간다고 말합니다. 구약의 성전은 신약의 교회를 향한 그림자이며 최종적인 완성은 하늘나라에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가장 궁극적인 실제적인 완성이고 실제입니다.
그런데 아까 제가 읽은 고린도후서 6장을 보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관주를 보면, 구약의 레위기 26:12, 렘32:38절, 겔37:27 등을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두 구절만 살펴봅시다.
레위기 26:12절입니다.“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얼핏보면 이 성막이 앞으로 세워질 성막 회막 성전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에 대한 성취로 교회가 세워졌다고 고후6장은 말합니다. 이 약속들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겔37:26-27절입니다. “26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27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일부에서는 이 에스겔서를 토대로 해서 제3성전이 세워질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통해서 성전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다시 짐승의 제사가 드려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이것에 대한 성취가 교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렇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회막에 대한 혹은 회막 성막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은 오늘날 교회에 대한 비전입니다. 즉 하나님이 영광중에 거하시는 그들 가운데 영광중에 거하시고 그들 가운데 운행하시고 지도하시고 통치하신다는 비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비전과 오늘날 교회인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우리 개인과 교회를 성전 삼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죽고 부활하셨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셨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셔서 성전 삼으셨는데, 그렇게까지 하시면서 하나님의 의중과 계획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시고 계시는데 지금 그것이 우리 가운데 실제로 이루어지고 잇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리적으로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라는 교리적으로만 고백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의도가 교회회복인데,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의도가 실현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까지 내어주셨는데,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고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비추어보고 절박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2.오늘 본문은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도 담고 있습니다.
성막은 교회의 그림자이며 동시에 예배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당시 성막은 예배드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출29:42절입니다. “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44절입니다.“내가 그 회막과 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라고요? 회막이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우리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 노력으로 하면 바리새인들이 됩니다. 다른 사람보다 잘하면 교만에 빠집니다.
우월한 마음이 생깁니다. 누구보다 타락하게 됩니다. 거룩함은 주님의 십자가로만 가능합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셔서 우리 가운데서 통치하실 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시기를 열망하십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 가운데 운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를 통해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셔서 그들을 지도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예배를 향한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부분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살펴보는 이유는 하나님의 비전과 우리의 현실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고 목표인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나의 예배는 어떠합니까? 우리 교회의 예배는 어떠합니까? 과연 여러분의 예배는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드려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교회예배의 회복은 일단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예배가 회복되면 모임 공동체인 교회의 예배는 당연히 회복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예배회복 추구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여러분의 예배가 회복되지 않으면 꽝입니다.
이 기준에 비추어진 여러분의 현실이 어떠한가를 보기 위해서 우리가 살펴보는 것입니다.
1)하나님은 예배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 백성의 예배에 대해서 말하면서 내가 너희를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되고 회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할 것이고 아론과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레위기 9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속죄제와 화목제를 가져오게 한 다음에 하신 말씀입니다.
6절입니다.“모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23-24절입니다.“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보십시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봉헌할 때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셨습니다.
대하5장 13-14절입니다.“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14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이것 하나만 해도 그럽니다. 우리의 예배는 과연 하나님이 영광중에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예배입니까? 그것이 우리 개인의 예배입니까? 우리는 그저 주일이 되어서 시간 맞추어 왔다가 졸다가 왜 이렇게 예배가 끝나지 않는가? 하면서 습관적으로 예하지는 않습니까? 종교적인 의무를 하려고 오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예배는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예배회복 교회회복을 운운하는지 아세요? 구약성경만 해도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는데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떠났을 때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건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보내서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하나님의 백성을 떠나 심판이 코 앞에 까지 닥쳐왔는데도 그들은 교리적인 것만 붙잡고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오늘도 우리가 예배드리니까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그런 안일함 가운데 있어요. 자신들의 삶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나 있는데도 하나님이 영광을 거두셨는데도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자리에서 우리가 얼마나 떠나있는가를 인식하면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어떤 예배가 되기 위해서 목마르며 배고프며 갈망해야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시는 것은 부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흥이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흥을 위해서도 우리는 교회회복과 예배회복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교회가 회복되어야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예배 가운데 거하십니다.
이 부분은 지난 주에도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을 보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을 성전의 회복으로 이해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에서 돌아온 지가 20년이 되었는데도 하나님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것으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걷힌 것으로 이해합니다. 성전이 회복되어야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어야 하나님의 생명이 그들 가운데 넘쳐서 그들이 진정으로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9장을 보아도 다니엘이 간절히 기도하는데 내용의 핵심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17-19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폐허 가운데 있었는데 구하는 내용은 자기 의를 의지하여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여 구합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 해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폐허 가운데 있으니까 세상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멸시를 받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데 그들로 인해서 온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있어요. 하나님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자신의 이름을 위해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의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영광의 임재로 오시옵소서 합니다. 왜냐하면 오셔야 그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시편 80편입니다. 1-7절입니다.“요셉을 양 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빛을 비취소서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용력을 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주께서 저희를 눈물 양식으로 먹이시며 다량의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우리로 우리 이웃에게 다툼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웃나이다 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19절입니다.“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7절과 19절을 보면, 하나님의 얼굴의 광채가 비추어야 우리가 회복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아론에게 하시는 축복의 기도입니다.민6:22-27절입니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3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축복하도록 기도하라고 하면서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얼굴 빛을 저들에게 비추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의 회복을 말합니다. 그래야 거기에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토록 하나님의 얼굴 빛을 비추어달라고 갈망하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가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걷히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회복된 예배 가운데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도가 예배 가운데 친히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22편 3절에서 말합니다.“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복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3)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 가운데 두루 행하십니다.
성전된 삶의 핵심은 그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며 운행하시며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고 치유하시고 자유케 하시고 억압을 파하시고 위로하시고 죄를 깨닫고 돌이키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사 두루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비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을 만나러 나와야 합니다. 예배의 핵심은 종교적인 의무하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예배입니다. 마당만 밟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사모함으로 나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운행하시면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을 행해주시도록 기대하고 사모하고 열망하며 나와야 합니다.
4)하나님은 하나님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도하십니다.
본문을 보세요. 내가 거기서 너희를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들을 지도하십니다. 사실 예배회복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찬양과 경배입니다. 찬양과 경배를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그리고 중보기도 또한 회복된 예배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렇게 나갈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중요한 일중에 하나가 거기에서 우리를 만나고 말씀해주시고 우리의 길을 지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새물결선교회가 태동하게 된 것도 그렇습니다. 하루는 중보기도 시간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감동하셨어요. 그전 까지는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말세지말에 이 나랄 비켜가지 마세요. 말세지말에 온 세계의 부흥이 예언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부흥으로 임하실 때 우리나라를 비켜가지 마세요.
하나님 우리나라 산간벽지에 있는 교회까지 모든 교회 가운데 부흥을 보내주세요 였어요.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중보기도 시간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그렇게 감동하시는 것 같았어요. 내가 이 나라에 하나님의 부흥을 담을 수 있는 전초적인 역사를 이미 시작하였다.너는 기도만 하지 말고 찾아가보아라. 그래서 몇주 동안 알아보고 찾아보던 중에 국민일보를 보다가 집회광고를 보는 순간 여기니까 가라고 했어요.
그전에는 한국에 있는 집회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흥에 대한 놀라운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 집회를 개최했던 단체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셨고 성도들도 몇 명 안되는데 그 단체로 수도권 정기집회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얼마 안되서 그 리더가 그 단체의 이름으로 우리 모임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새벽기도를 마쳤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제가 곧바로 전화를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모임만 시작되고 동떨어지게 된 것이지요. 그때는 찬양과 경배를 인도할 사람도 없어서 제가 인도하려고 하면 시작할 때는 반주자와 저 뿐이었습니다. 시작하고 있으면 나중에 사람들이 오기도 했지요. 그런 상황에서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그분이 주도권을 가지고 오늘날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 집회가 가서 계가 되어 이길수 목사님 김정길 목사님을 거기서 만났어요. 그러면서 일년쯤 후에 이길수목사님 저 몇 분이 연합해서 집회를 하는데 둘째날인가 셋째날 말씀을 전하고 기도사역시간인데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했어요.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나중에 알고 보니 이길수 목사님도 나가 떨어졌고 동일한 감동을 받았어요.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렇게 감동하시는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에 하나님께서 첫 번째 유업을 주셨다. 그러니까 짧은 100년 동안에 기독교가 이렇게 세워진 것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습니다. 한 세대가 지나가지 전에 이렇게 부자된 나라로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탕자가 유업을 탕진한 것처럼 탕진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때가 IMF 시대였어요. 교회는 마이너스 성장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는 걷히고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거의 걷힌 시대였어요. 하나님의 성령께서 감동하시는데 우리나라에 두 번째 유업을 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경제적인 회복도 말씀하셨어요. 그 증표로 새물결선교회를 세우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증표라는 말은 새로운 유업은 십자가 복음과 성령의 사역의 토대 위에서 주어질 것이라는 말씀이었어요. 그러면서 사업만 해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따라가라고 했어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선교관 건립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보기도 하는 중에 한 분에게 하나님께서 환상을 주셨어요. 큰 천사가 보이는데 그런데 날개가 부러져 있고 그 앞에 제가 날개를 고친다고 서 있는데 너무나 작아서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날개가 부러진 천사를 보시며 너무나 안타까워서 피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환상이 너무나 또렷해서 가슴이 뛰어서 어떻게 하지 못하는 그래서 제게 이야기할 때도 가슴이 뛰어서 잘 말하지 못하더라고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요한계시록 1장을 보면 천사는 교희 리더십을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 리더십이 날개가 부러진 상태에 있습니다. 필요는 너무나 큰데 우리가 그것을 치유하는 것은 너무나 작은 그래서 지금 현재만 해도 지난 주일에 광고를 드린 것처럼 일본에 교회 팀장이 와서 열흘 있다가 갔어요. 어떻게 짧은 기간 동안에 사람이 이렇게 바뀌는지 놀랐다고 전화하고 그랬어요.
똑같은 일이 지난번에 카나다에서 왔다 갔는데 모든 지체들이 이렇게 짧은 기간에 바뀔 수 있느냐고 야단이었어요. 영국에 있는 선교사님도 오셔서 여기에 있으면서 가족 중에 아홉명이 구원받고 동생이 놀랍게 치유되고 본인이 놀랍게 회복되어서 천국에 있다 온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이것은 큰 필요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그래서 하나님이 선교관을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하나가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역사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더 보여진 것이 새물견선교회 연합하는 교회 뿐만아니라 모든 교회에 예배가 회복되는 것 동시에 중보기도가 회복되어야 하겠더라고요. 그래야 뭐가 되냐? 하나님이 실질적으로 교회를 인도하시는 것이 되어집니다. 대만만 해도 그럽니다. 하나님이 2년 전에 전국컨퍼런스의 주제가 중보기도였어요. 대만에서 선교사님이 오셔서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시는데 부흥이 곧 올 것처럼 생각될 만큼 그래서 이길수 목사님이 가시게 된 것입니다. 지금 거기에서 전도가 이루어지고 있고요. 다윗의 장막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화요정기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습니다. 제가 아까 내 예배를 살펴보라고 했잖아요. 예수님 당시에도 보면 나사로 이야기를 하면 아 그 나사로 우리 옆집에 살았는데. 삭개로 그 사람 내 친구인데. 친구 가운데 행해졌을 만큼 그 당시에 하나님이 놀랍게 역사하실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에 전혀 동참하지 못했어요.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속했다고 저절로 예배가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 자신의 예배를 살펴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되는지 자신의 예배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회복 내려놓으세요. 포도나무 교회의 회복, 포도나무 교회의 예배회복도 내려놓으세요. 여러분 자신의 예배를 회복하세요.
오늘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예배에 대한 비전에 비추어서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예배에 영광으로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예배요 하나님이 그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배요 하나님이 그 가운데서 두루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배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지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예배가 그런 모습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예배에 비추어 여러분의 예배를 살펴볼 때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멀리 떠나있다면 여러분이 애통함으로 주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의도하신 자리에 설 때가지 하나님의 자비와 긍흉을 구하고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긍휼을 구하여 주 앞에 서게 될 때 우리 예배는 더 회복되고 우리 가운데 주님이 예배를 통해서 역사하는 일이 더 나타날 것입니다.
3.이 모든 것들을 위해 예배회복이 필수입니다.
성전만 해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식양대로 지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식양대로 되어야 합니다. 성전은 교회를 가르치는데 교회회복도 식양대로 되어야 합니다.
예배도 하나님의 기준대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될 것입니다. 출40장에 성막을 세우면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었다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19, 20, 23, 25, 29, 32절에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모든 예배가 모든 교회의 요소가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서 새워질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33-36절을 보면, “33 그가 또 성막과 단 사면 뜰에 포장을 치고 뜰문의 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 34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이처럼 회복되어지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 가운데서 두루 행하시며 그들 앞에서 지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삶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목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입니다. 이것이 우리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이런 교회, 이런 우리 개개인의 삶에서 이런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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