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사람은 아담이 범죄 한 후로는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며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먹기 위해서 사는 건지 살기위해서 먹는 것인지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람이 사는 것도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돈이 중요한건지 관계가 중요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만일 하나님이 안계시다면 먹고 즐기고 동물처럼 살면 되지 뭐 그렇게 어렵게 살겠는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눈먼 장님과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의 일은 불안하고 불투명하고 근심 걱정 두려움 가운데 살기 때문이다.
또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기 때문에 지금 잘나가고 행복하다고 해도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는 것처럼 헛된 일이다.
“우리의 년 수는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칠 수 밖에 없다. 교회를 다닌다고, 신앙 고백을 하였다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거듭난 것이 아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여기서 안다는 것은 부인이 남편을 아는 것처럼 하나 됨을 말한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자들도 삼년 이상을 공동으로 생활하였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지 못하였으며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거듭난 삶을 살지 아니하면 종교적으로 치우치든지 세상적으로 치우치든지 기준이 없고 중심이 없다. 그래서 우선 교회에 나가면 조금 안심이 된다. 또 목사님 말씀대로 십일조 하고 봉사 하고 주일 잘 지키면 거듭난 줄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직분을 받고 구제도 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그렇게 하면 자식들도 좋은 대학에 가게 되고 먹고 살만하고 누가 보아도 하나님께 축복 받은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거룩 거룩하지만 삶에서는 세상 사람과 별 다르지 않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우리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바리새인 보다 율법을 더 잘 지키나 또 일본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사는가? 그렇다고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실상이다. 곧 실상이 믿음이다. 증거가 믿음이다. 우리가 제자 교육을 받고 성경을 많이 보고 기도를 유창하게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적용 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고 거품이다.
믿음과 삶이 일치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실한 사람이 아니고 거짓말쟁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을 하는 것이다. 나도 하지 못하는 것을 세상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라고 말하면 그들이 믿겠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어 그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죄에서 떠나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을 하고 과거의 죄를 용서 받고 현재 뿐 아니라 미래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작정하였기 때문에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며 능히 온전히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성령께서 도우실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을 로봇처럼 만드신 것이 아닌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가 거듭난 체험을 하였더라도, 성령께서는 사람에게 강제로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늘 깨어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영적인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내가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느냐, 아니면 나를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음성에 혹해서 그 음성을 따라가느냐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의 결단이다.
우리가 거듭난다고 한다면,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고, 그 성령님이 주시는 음성을 우리는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인격적인 성품을 지니신 성령께서는 사람에게 강제로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늘 깨어서 말씀과 기도로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하심에 이끌려 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써,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를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8-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자료제공 : 우림과 둠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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