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세상의 관습이나 미신 또는 맹신에 따라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형성하고, 인생을 옳게 사는 길을 찾는데 있어서,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신 (하나님)의 존재 여부, 그리고 신 이 존재한다면, 그는 어떤 신이냐 ? 즉 그의 성격이 무엇이며, 또 그는 <인격신> (God as a person) 인지의 여부를 아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근본 문제다.
그러나 신 이 존재 한다해도, 신은 ‘신비’ 에 둘러 싸인, 크고 높으신 존재일 것이니, 미미한 피조물인 인간이 어떻게 그런 신 을 알수 있을 것이냐 ? 그러므로 신 편에서 먼저 인간에게 자기를 알려 주기를 원하시고, 또 알려 주심으로만, 즉, 신 의 자기 계시 (self- revelation) 에 의해서만, 인간은 신 에 대해서 알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도 형성 할수 있는 것이다. 만일 신 이 숨어 있기를 원 하신다면, 인간은 영원히 신 에 대해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신 이 실제로 자기 계시를 통하여 자기의 존재와 성격과 목적 등을 알려 주셨다고 말하고, 성경은 신 의 자기 계시에 대한 증언이며, 성경 안에는 계시된 여러 진리들이 들어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증언이며, 성경의 내용은 단지 인긴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 것을 증명할수 있느냐 ? “누군가가 그것을 증명할 때까지는 나는 그것을 믿지못하겠다. 그것을 증명하라” 고 불신자는 요구한다.
이 문제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답변은 아래와 같다.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은 성경 밖에 있는 것, 즉, 성경 이외의 다른 것에 의한 증명이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 임을 증명 (authenticate itself)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자기증명> (self- authentication)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피조물인 인간의 논리나 지혜 또는 학문, 그리고 다른 어느 것에 의한 증명이 불가능 하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지니고 있는 권위와 위엄에 의해서,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 임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런 권위와 위엄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 만일 이런 권위와 위엄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주제(subject)의 종류와 성격 여하에 따라서, 주제를 증명하는 방법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자기 증명 외에 다른 증명의 방법은 없다. 이 것이 기독교 신학의 답변이다.
이에 대하여 어떤 불신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의 이성에 의해서 판단한다. 나에게 있어서, 나의 이성은 모든 진리 판단의 기준이다.” 이 말은 경솔하다. 인간 이성이 진리판단의 기준이라면, 여러 개인들의 이성적 판단이 흔히 서로 다르고, 더러는 정 반대인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왜 그러냐 ? 개인의 이성은 오류를 범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적인 경험과 관찰을 통하여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개인의 소위 ‘이성적 판단’ 은 흔히 순수한 것이 못된다. 인간이 순수한 이성적 판단을 가지고 하는 학문이나 사업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수학 뿐일 것이다.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는 종종 또는 자주 감정적 요소와 이해관계의 고려, 그리고 여러가지 편견이 개입하여 영향을 끼친다.
또한 인간의 이성은 유한하고, 죄가 있는 피조물의 이성으로서 심히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어느 개인이 자기의 이성을 모든 진리 판단의 척도로 삼고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커피잔 안에 바다의 물을 다 부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만큼이나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인간이다.
우주와 우리 인생에는 인간의 이성 만으로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신비>가 있다. 우리는 많은 신비에 둘러 싸여서 살고 있으나, 바쁜 삶을 살다 보니, 신비를 전혀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존재의 신비> (mystery of being) 다. “왜 아무 것도 없지 않고 무엇이 있느냐?” ( Why is there something, rather than nothing ?) 좀 구체적으로 말하면, “왜 우주와 태양과 인간과 동물과 이런 세상이 있느냐? 아무 것도 없으면 안되느냐?”
여기서 성경의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우리는 성경 이외의 다른 것에 의한 증명 없이, 오직 성경의 <자기 증명> 에 의거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임을 믿는다. 이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의 믿음을 도우신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함께 일하신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은 <믿음>의 중요성과 필수성을 강조 한다. 이것은 신 구약 성경이 같다.
구약성경에서 예를 들면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이사야 7:9).
신약성경에서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나니라.” (마태 9:22).
“예수께서 저희 (소경)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 진지라” (마태 9:29-30).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 하였느냐” (마태 14:31). 사도 바울의 말: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한다” (고린도 후서 5:7).
여기서 ‘보는 것’은 증명이나 확실한 증거에 의거하여 믿는 것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이 믿기 시작한 후의 신앙생활에서는, 본인의 믿음의 정도에 따라 성경과 기독교의 <경험적 증명>을 얻을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한 11:40). 이런 믿음으로 <기사(奇事) 와 이적>, 또는 다른 희한한 것을 경험한 사람은 많다. 이 필자 자신도 그것을 친히 경험했다. 12년된 눈병이 어느 날 순간적으로 완치된 경험이다.
나는 나의 저서 「하나님은 계신다 -그 증거」 (2002년 출판) 의 제15장에서 이 경험을 자세히 기술했다. 믿지않는 사람에게는 이런 기적은 생기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좁은 소견에 따라 종교를 비웃고, 지성인이라고 자부심을 갖는다. 이 것도 일종의 교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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