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2009

몸(소마 - σŵμα )과 육신(사르크스 - σάρξ )

몸(소마 - σŵμα )과 육신(사르크스 - σάρξ )
바울은 그의 영이 기운을 낸다든지 안심 한다고 말했을 때, 자신의 내적인 평안을 발견하였음을 의미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영(프뉴마 - πνεύμα)을 소유하는지 아니면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을 받음으로 소유하게 된 독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볼트만(Bultmann)은 인간이 구분되거나 분리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며, 몸 (소마–σώμα), 영(프뉴마), 그리고 혼(프쉬케 - ψυχὴ)은 인간 전체를 여러 방식으로 보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은 몸(소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바로 몸(소마)이다”라고 주장한다.

인간, 그의 인격 전체는 소마로 지칭될 수 있다.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히 되게 하는 것은 나의 인격, 나 자신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 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관련 구절들을 출발점으로 삼는 불트만은 몸이란 “자신을 자신의 행위의 대상으로 삼거나 또는 자신을 어떤 상태의 주체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부장했다. 소마적인 존재는 표준적이며 고유한 존재양식으로 생각된다.

소마는 인간존재의 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 본질적인 요소이다 혼 또는 영의 생명은 참되고 본질적인 생명이지만, 외적이며 우연적인 몸의 생명은 마치 인간의 참된 생명을 실현하는데 방해거리나 되는 것처럼 서로 대조되는 것이 아니다. 구속사역은 단순히 혼 또는 영의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몸의 구속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고안한 궁극적이며 완전한 삶의 양식은 소마적인 존재이다. 몸에 대해서 취하여야 할 태도를 가르친 바울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1. 몸은 비록 인간존재의 완전한 부분이지만 육의 몸은 부패하고 죽는 사망의 몸(롬7:24).

 2. 죄는 죽을 몸에 왕노릇 할 수 있기 때문에(롬6:31), 죄의 도구인 몸은 죄의 몸으로 불리울 수 있으며, 따라서 영이 거주하는 인간은 몸의 죄된 행실을 죽여야 한다(롬8:14)[본문 롬8:13의 사르크스를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육신(flesh)으로 번역하였다. 영어성경에서도 육신으로 번역한 경우가 많다. NIV에서는 죄의 본성(sinful nature)으로, GNB(TEV)에서는 인간본성(human nature)으로 번역하였다.]

  3. 몸은 굴복되어야 한다. 사람의 영적인 생활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훈련받아야 한다. 인간 존재의 최고 목적은 영의 영역에서 발견되어야 하며 따라서 몸은 영, 참된 자아의 종이 되어야 한다. 몸 그 자체는 참된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 행세를 할 수 없다. 몸이 훈련받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영적인 목적들을 좌절시키기 때문이다.

  4. 몸에 대한 자기 통제는 그것이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져야 한다(롬12:1). 그리스도인은 그의 몸 안에 성령이 내주(內住)하고 있음을 인정하여야 한다(고전6:19). 그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다(고전6:15).

  5. 몸 자체는 구원이 완성되는 날에 구속될 것이다(롬8:23). 육신(사르크스-σὰρξ)은 몸의 조직들이다. 육신은 흔히 몸을 구성하며 따라서 뼈와 피에 대조되는 조직들을 묘사 할 때 사용된다. 사르크스는 몸 자체이다. 자연적인 변화를 거치는 동안 부분은 전체를 지칭하게 되었고, 여러 구절에서 사르크스는 몸의 육적인 부분을 가리키기보다는 몸 전체의 동의어처럼 사용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몸으로 떠나 있다”고 말하든지(고전5:3), 아니면 “육신은 떠나 있다”(골2:5)라고 말할 수 있었다. 사르크스는 혈통과 관계를 맺은 인간이다. 구약의 용법에 따르면, 사르크스는 몸의 요소 또는 몸 자체를 지칭할 뿐만 아니라, 육으로 구성된 인간을 구체적으로 지칭할 때 사용된다. 이러한 용법에서 보면 사르크스는 특별히 인간적인 관계들, 그들을 다른 사람들과 묶어 두는 육신적인 가문과 자연적인 인연들을 지칭할 수 있다. 사르크스는 외적인 모습과 조건에서 본 인간이다.

사르크스의 뜻은 인간의 육신적인 생명 너머로 확대되어 인간 존재에 있어서 불가분리적인 다른 요소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육체를 신뢰하는 것”(빌3:3)은 몸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외부 영역에 속하는 복합적인 모든 것들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울의 유대적인 혈통, 그의 엄격한 종교교육, 유대 종교단체들 가운데서 뛰어난 그의 열심과 그의 탁월성 등을 포함한다. 사르크스의 윤리적 용법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육이 영과 대조되는 것처럼 인간은 악하며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육에 속한’ 자들과 ‘영에 속한’ 자들을 날카롭게 대조시킨다. 육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 하고 영에 있나니…”(롬8:9) 로마서 8:8절에 ‘육신에’ 라는 말은 9절에 의하면 성령이 내주하지 않는 자, 즉 중생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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