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8/2009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 1

신명기 전체는 모세가 죽음 직전에 전한 일련의 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헤매며 보냈던 40년의 회고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것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에게 전합니다. 그 때, 사람들은 그들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인 카데스바네아에 자리잡았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땅인 가나안의 경계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38년 전에 섰었던 동일한 지점이었습니다. 그곳은 또한 하나님께서 구세대가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셨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온 세대가 죽을 때까지 헤매도록 그들을 광야로 되돌려 보내셨습니다.

이제 모세는 이 새로운 세대에게 그들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모세는 왜 하나님 보시기에 포기하실 만한 반역으로 이전 세대가 죽었는지를 그들이 정확히 알기 원하였습니다. 모세는 분명하게 말하며, 그들이 그들 부모들의 비극적인 실수로부터 배울 것을 강권합니다.

“너희는 너희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알지. 그들은 하나님으로 부름 받아 선택 받고 기름부음 받았던 백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비젼을 잃었지. 주님은 그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몇 번이고 그의 팔로 그들을 안고 옮기셨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들은 투덜거렸고 그를 대적하여 불평하며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결국, 하나님의 인내는 한계에 왔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불신을 저지른 것을 보셨지.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하여 그분께서 하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분께서 행하셨던 어떠한 기적도 그들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완전히 믿게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단단한 돌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 하나도 나의 약속 한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대신 너희들은 이제 돌아가야 한다. 너희들은 다시 광야로 돌아가라”

이 얼마나 강경한 말입니까, 그러나 모세는 단지 이스라엘의 새 세대에게 말하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또한 오늘날의 우리를 포함한 뒤따를 모든 세대의 신자들에게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구약의 이야기들과 같이, 이것은 ‘본보기가 되고 또 세상의 끝날들을 당한 우리에게 훈계로 기록되었습니다’(고린도전서10:11)

모세는 우리에게 불신의 위험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도 우리 앞에 넘어진 사람들과 같은 무시무시한 귀결을 겪을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아무도 똑같은 믿음 없음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브리서4:11) 그는 본질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불가능과 마주치고 있는가 또는 문제가 얼마나 가망 없이 보이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같은 불신앙의 죄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아니면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은 끔찍한 광야에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당신의 남은 삶 동안 그 곳을 헤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인도하는 데에 신실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선조들을 그들이 그 이유를 울부짖으며 구할만한 그런 곳으로 이끄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그분을 신뢰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께서는 믿음에 있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금과 같이 순수하게 단련된 믿음과 함께 광야를 나와야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분의 선하심을 증인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세대가 너무나도 가볍게 불신의 죄를 지어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비극적인 결과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우울과 불안으로 차 있는 것을 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육체적인 이유로 이러한 것들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 상태 때문에 그런 고통을 겪습니다. 제 생각에, 그들의 우울은 그들의 계속적인 불신으로 하나님을 화나시게 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 백성 중의 불신을 언급하실 때면 항상 진노, 분노, 혐오, 그분을 시험한다라는 말과 같은 강경한 언어를 쓰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젊은 백성들에게 이것을 중점적으로 상기시켰습니다. “광야에서도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를 어떻게 감당하셨는지 네가 보았나니 마치 사람이 자기 아들을 감당한 것같이 너희가 갔던 모든 길에서 그렇게 하셔서…주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듣고 노하시어 맹세하여 말씀하시기를 "분명히 이 악한 세대의 이 사람들 가운데는 내가 너희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그 좋은 땅을 볼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니라”(신명기1:31,34-45)

그리고 모세는 그들의 아버지들이 카데스바네아에서 저질렀던 비극적인 실수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홍해를 건넌 지 잠시 후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담대하게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들에게 이러한 강력한 확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앞에 그 땅을 두셨으니 너의 조상의 주 하나님께서 너에게 말씀하신 대로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라. 두려워하지도 말고 낙담하지도 말라 … 그들을 두려워 말고 무서워 말라. 너희 앞에 가시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행하신 모든 일대로 그 분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1:21,29-30)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그들의 대적 중 누구도 그들을 대항하여 설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7:24을 보십시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에 주저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분을 신뢰하지는 않고 오히려 가나안에 첩자들을 보내자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첩자들은 불신으로 가득한 악한 보고를 갖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거인족과 높은 벽으로 쌓인 도시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보고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치 아니하고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으니(1:26) 이제 모세는 젊은 세대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움직여야만 했었다. 주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반역하였다.”

옛 세대에게 무엇이 일어났던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가나안에 그 첩자들을 보낸 것은 불신의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첩자들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들은 사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대적의 거짓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그분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악마의 도구가 되어 진영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사악한 보고를 듣고 나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비난하면서 그들의 주먹을 쥐고 흔들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우리를 버리셨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우리를 여기에 죽게 하려고 데려오셨습니다.” 한달 전만 해도, 동일한 이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구별되어, 그분의 눈에 특별하게 들어서 기적적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온 진영이 혼란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소리치며 의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곧 그들은 그들의 자녀에 대해 흐느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 광야에서 굶어 죽을 거야, 하나님은 우리를 미워하셔” 모세는 젊은 이스라엘에게 그들 부모들의 비난을 떠올렸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아모리인들의 손에 넘겨 죽이시려고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셨도다.”(1:27)

카데스바네아는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자녀들의 믿음을 궁극적으로 시험하시기 위해 데려오시는 곳입니다. 카데스바네아는 여러분이 직면한 불가능의 장소입니다. 그 이름은 도망자, 유랑자, 방랑자라는 뜻의 히브리 어원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여기서 당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인생 내내 광야를 헤매는 것으로 끝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지금 이 장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분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의 기적에 기적을 주시며 함께하셨던 굉장한 역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악마는 그들이 그것을 이룰 수 없을 거라며 거짓말을 갖고 왔습니다. 그는 그들이 충분히 훌륭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의 과거의 죄들에 대해 화내고 계시며, 절대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그들을 꼬드겼습니다.

말해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런 거짓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셨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기의 때에 져버리시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의 행보의 어떤 언젠가부터 여러분은 그분의 말씀에 신뢰하는 것을 멈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명령에 따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사실이었던 것은 여러분에게도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카데스바네아에서 마주친 시험이 여러분의 남은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여러분은 혹독한 광야를 하나님으로 인해 지나왔습니다. 되돌아 보면, 여러분은 마주쳤던 끔찍한 시험과 견뎌냈던 고통스러운 실패들을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벗어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고난들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때에 여러분에게 신실하셨습니다. 때마다 그분께서는 자비롭게 내려오셔서 여러분을 들어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은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나를 져버리지 않으셨어, 나는 그분의 은혜로 오늘 여기에 서있어, 정말이야, 하나님은 그 팔로 나를 품으셨어, 아버지가 그 아이를 안듯이 말이야.”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들이기 위해서 데리고 나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 앞에도 약속된 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한 안식이 남아 있도다’(히브리서4:9). 주님은 여러분을 안식의 장소로 데려가시기 위하여 구원하셨습니다. 이 안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 안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확신입니다. 그것은 가장 어려운 때를 통하여 여러분을 보기 위한,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이 안식의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카데스바네아를 통과해야 합니다. 거기에 있을 때 여러분은 격렬한 전투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경험했던 그 어떤 것의 범위도 넘어서는 것입니다. 대적, 거인, 높은 성벽, 완전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하실 것에 절대적 신뢰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카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을 주저하였는지를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사탄은 그들을 악마에게 속은 10명의 거짓말쟁이의 영향을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그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파하실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신속히 행하기를 거절할 때, 우리는 자신을 악마의 흉포한 거짓에 여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거짓들은 우리의 믿음을 파괴할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스스로 싸우도록 내버려 두셨다고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앞에 벽이 너무 높아서 그것을 넘어서 승리할 길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해왔던 모든 걸음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그는 소용없다며 우리는 끝내는 게 나을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제가 말씀 드립니다. 이것이 왜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에 따라 빨리 행하시기를 원하시는가 이유입니다. 그분께서는 악마가 우리를 거짓말로 공격할 기회를 갖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미워하신다고는 절대 믿을 수 없어, 어떻게 내가 하나님께서 나를 파하려 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겠어?” 그러나, 우리가 사탄의 거짓말을 듣는다면, 이것은 우리가 끝내 바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끄셨어, 그가 나를 위해 길을 만드실 것이라는 아무런 증거도 없어. 그런데도 그분은 내가 질 수 있는 것 이상은 견디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어. 그리고 지금 이건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수준보다 더 심해.” 그러한 생각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비난인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시험 한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신다고 하며 그분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불신을 이스라엘에서 다시 봅니다. 그들이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이곳은 광야에서도 가장 마른 곳이자 또 다른 위기의 장소였습니다. 곧 사람들은 갈증으로 괴로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 한번 하나님 안의 확신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울부짖었습니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계신가”(출애굽기17:7) 즉 이런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우리는 이런 위기는 겪지 않을 텐데, 이번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야”

이스라엘 불신의 근본 이유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의 불신과 동일한 이유입니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는 이스라엘에게 충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 위기의 한 가운데서, 이스라엘은 그분의 말씀을 절대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도우시겠다는 모든 약속과 그 모든 굳은 맹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헛되게 하였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들은 그것을 절대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파된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 것은 그것을 들은 자들이 믿음을 결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히브리4:2)

대신, 그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께 새로운 말씀을 요구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를 그들의 질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계신가” 다른 말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위기에 우리와 함께 계신지 아닌지 알아야겠어, 이전의 마지막 계시말고,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새로운 계시를 받아야 해, 이런 낯선 상황에 말이야.”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누가 어떻게 그렇게도 빨리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하셨던 것들을 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스라엘은 과거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던 모든 순간들을 그들의 기억으로부터 지워버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과거에 그분의 초자연적인 사역들이 그들 안에서 믿음을 세우도록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을 대적한 비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들을 두려워 말고 무서워 말라. 너희 앞에 가시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행하신 모든 일대로 그 분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신명기1:29-30)

지금, 이것은 새로운 약속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분께서 이미 그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을 다시 말씀하고 계신 것뿐이었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잠자코 있을지니라”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상기시킨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집트에서 너희에게 내가 너희 앞에 가겠다고 말하였노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하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을 대항하여 싸우겠다고 말하였노라” 그리고 그분께서는 틀림없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변화와 모든 시험 내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몇 번이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리라. 이제 이 약속을 붙들고 잊지 말아라.” 그러나 그들은 여기 가데사바네아에서 그들의 대적 앞에서 떨며 그들의 약한 점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따졌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대적하여 올라갈 능력이 안됩니다.” 심각한 의심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의심, 그분이 그들을 보내셨다는 것에 대한 의심, 그들 가운데에 그분의 임재에 대한 의심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이런 식으로는 반응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합니다. “주님, 정말 저와 함께 하시나요? 나는 당신께서 제게 약속하신 것을 알아요, 그런데, 정말 그게 사실인가요? 제가 당신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을 수 있나요? 저는 당신에게 새로이 들어야겠어요. 저는 새로운 말씀이 필요해요. 제발, 좀 더 확신을 주세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