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8/2009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 2

우리는 우리 영혼의 적 앞에서 벌벌 떠는 것으로 끝마칩니다. 그리고 이는 모두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전혀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그분을 시험하는 때인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 자신을 우리에게 다시 또 다시 증명하셨을 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그분에게 그분의 신실하심을 새로이 증명하시기를 또 다른 믿음을 세워줄 말씀을 보내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지 한 말씀만 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이미 말한 것을 믿으라.”

여러분, 여러분 위에 성벽과 같이 솟은 끊임없는 죄 앞에서 떠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대적의 속박에 관해 뭐라 말씀하셨던가요? 그분께서는 말씀 내내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싸우리라. 너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네 안에 계시는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더 크시니라. 어떤 사람도, 어떤 대적도 너를 내 손에서 빼앗을 수는 없다. 내가 나의 영으로 너를 깨끗케 하고 성결케 할 것이다. 너에게 계시된 나의 말을 신뢰하라.”

신약에 있어서의 불신은 구약에서보다 더욱 큰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신의 성전인 이스라엘에 선지자와 기적을 행하시는 자로써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여집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거기서는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마태13:58) 이 얼마나 믿을 수 없을 놀라운 말입니까, 불신은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실 권능까지도 제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약을 통해 다른 불신의 비극적인 결과들을 봅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불신 때문에 작은 아이로부터 악마를 쫓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마태복음17:14~21을 보십시오) 부활 이후,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한번 그들의 불신에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 없음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마가16:14) 게다가 바울은 유대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꺾여졌고’(로마서11:20)

왜 신약에서 하나님의 불신에 대한 심판은 그렇게 가혹한 것일까요? 그것은 오늘날의 신자들이 구약의 성도들이 단지 꿈꾸기만 했던 무엇인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들의 성령의 선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옛 언약 아래에서 신자들은 단지 가끔씩 하나님의 영의 방문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 안에 그분의 처소를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성전이며 그의 임재는 모든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십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은 단지 가끔씩 천사들의 방문을 받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들은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가 청원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아니하였고’(로마서4:20)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느 때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전 생애 동안 그분께 청할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분이 응답하실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청원을 알릴 수 있도록 우리가 그 보좌의 방으로 담대히 나오도록 초청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평안과 인도하심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축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극심한 시험의 때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불신을 이렇게 말씀하시며 꾸짖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밤낮 부르짖는 자신이 선택하신 사람들의 원한을 갚아 주시지 않고 그들에게 오래 참고만 계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원한을 속히 갚아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 그가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누가복음18:7~8) 예수님께서 오늘 돌아오신다면, 그분께서 여러분 안에 믿음을 찾으시겠습니까?

여기에 불신의 결말이 있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을 치셨음이니 그들이 소멸될 때까지 군대로부터 그들을 멸하신 것이니라(신명기2:15) 여기 불신에 관하여 모든 성경에서도 가장 강경한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은혜의 말씀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오늘날 불신을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다루시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은혜 아래에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 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 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히브리서11:6) 여기에 몇몇 불신의 결과들이 있습니다. 불신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더럽힙니다. 이 죄는 우리 삶에 있어서 단 하나의 문제로 분리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곳으로 넘치며, 우리의 걸음의 모든 일들을 오염시킵니다.

이스라엘의 의심은 단지 그들의 적들을 쓸어버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만이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불신은 매일의 공급에 대한 신뢰로 흘러갔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를 보호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약속의 땅으로 이끄실지 아닐지 의심하였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가를 의심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너희는 돌이켜서 홍해의 길을 따라 광야로 너희 여정을 취하라… 내가 너희 가운데 있지 아니하니”(신1:40,42)

우리가 한 부분에서 불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암과 같이 우리의 온 마음을 오염시키며 모든 부분으로 퍼집니다. 우리는 그를 믿음이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한다던가, 그분이 전능하시다거나, 그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과 같은 특정한 문제들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믿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서는 정말 그분을 신뢰합니까?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건강과 재정을 공급해 주실 것과 죄를 이기는 승리를 주실 것을 믿습니까?

불신은 추측의 죄로 이끕니다. 추측하는 것은 감히 우리가 무엇이 옳은 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말하는 오만입니다. “내가 길을 알아.” 그리고 그 나름대로의 방법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그 불신에 있어서 범하였던 또 다른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광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복종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모세에게 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래요, 우리가 죄를 지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이제 방금 알아챘거든요, 우리는 적을 대항하여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할 준비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문제들을 그들 자신의 손으로 가져갔습니다.

여기에 의심하는 많은 신자들이 저지르는 비극적인 실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믿음의 문제에서 실패할 때에 그들은 육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그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만 그들 자신의 지혜와 기술로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두려움 가운데 행하는 것을 항상 거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기다립니다.

믿음은 절대 어떤 것이 하나님을 앞서서 일어나도록 하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 무리들은 작은 군대를 조직함으로써 하나님에 앞서 갔습니다. 그들은 전략을 계획하고 그들 혼자서 공격한 것입니다. 그러나 적들이 그들을 보았을 때, 벌떼같이 이스라엘을 쫓아가 파하였습니다(신명기1:44)

저는 하나님의 안식에 절대 들어간 적이 없는 신자들의 끔찍한 케이스들을 봐 왔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가족문제, 재정적인 어려움, 결혼문제와 같은 혹독한 시험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그분이 무시하셨다고 비난하며 그들 스스로 위기를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오늘날 그 신자들에게는 안식도 평안도, 하나님의 임재의 느낌도 없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계속 되는 의심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의 위기에서 또 다른 위기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말할 수 잇는 모든 것은 그들의 최근의 문제들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혼돈의 순간은 단지 한 가지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바로 불신 말입니다.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한갓 이야기처럼 지나가나이다”(시편90:9) 이 시편은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이야기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이 모두 헛되이 살고 죽었던 모든 사람들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믿지 않는 조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와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분들은 모든 세월을 그늘 속에 사셨어, 그들은 투덜대며 불평만 하셨지, 그리고 그들은 홀로 돌아가시고 잊혀지셨지.”

이것이 불신의 무서운 점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의 영적인 역사를 잘라버려서 여러분들에 관하여 기억된 모든 것은 고작 낭비된 삶이 되어 버리게 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요?” 이스라엘의 젊은 세대들이 이렇게 물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하여 졌습니다. “그들은 단지 투덜대고 불평만 했지, 그들은 무언가를 위해서 살 것이 없었단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죽기를 기다리며 하는 일 없이 보냈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간직하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거기에 들어가는 일이 남아 있으나(히브리서4:6)” 진실한 신자들은 설사 그들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결심합니다. 그들이 모든 물건들을 빼앗기거나 심지어 죽음에 직면한다 해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그들)자기 일에서 쉬었느니라.(4:10) ’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의 문제를 자신의 지혜와 기술로 해결하려 밤에 깬 채로 누워있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모든 것을 예수님께 돌립니다. 그들이 얻거나 잃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초점은 하나님께서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우리의 삶에서 그 계획을 행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최근에 겪었던 경험으로 끝 맺고자 합니다. 어느 토요일 저녁 저는 관광객과 휴일 쇼핑을 하는 다른 사람들로 붐비는 타임스퀘어 광장을 거닐었습니다. 거의 25만의 사람들이 이 곳을 지나가는 러시아워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제가 거기 서있을 때, 저는 사람들의 무리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순간, 성령님이 저에게 속삭이셨습니다. “데이빗, 이 군중을 보아라, 그들을 여러 번 곱하라, 그러면 그것이 광야에서 죽었던 나의 백성들의 수이다. 그 온 무리 속에서도 여호수아와 갈렙 단지 두 명이 나의 안식에 들어왔다. 다른 모든 자들은 그들의 때가 되기도 전에 절망과 불신 가운데 죽었다.

그 생각은 저를 압도하였습니다. 저는 브로드웨이 극장, 레스토랑,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군중들을 더욱 자세히 보았습니다. 저는 부유한 사람, 집 없는 사람, 중산층의 사람, 동성연애자, 여장남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십중팔구 그들 중 누구의 생각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강 건너 축구장, 농구장, 하키장 그리고 그곳을 채우고 있는 모든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그들 중 단지 적은 수만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나는 타임스퀘어 광장의 모든 영화관을 둘러보았고 모든 거룩함을 조롱하며 거기에 앉아있는 수천 명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사람들의 무리를 보았을 때, 저는 그들 모두 어느 때나 복음의 메시지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텔레비전, 라디오, 문학 심지어 호텔 방에 있는 무료 성경을 통해서까지 말입니다. 그들이 만일 알기를 원하기만 하였다면, 그들은 고대 이스라엘에게 기적을 행하셨던 동일한 하나님이 오늘날 그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동일하게 행하신 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분을 알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들이 복음책자를 건네는 누군가를 본다면, 그들은 지나가며 그를 물리칩니다. 그들에게는 신이란 없고 단지 즐거움, 돈 그리고 재산이 있을 뿐입니다.

갑자기, 저는 하나님 눈에서의 한 신자의 가치를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예수님께서 동일한 질문을 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내가 돌아갈 때, 내가 지상에서 믿음을 찾겠는가” 저는 그리스도를 봅니다. 사람의 마음을 찾으시는 분, 온 거리를 찾아 헤매시고도 진정 그분을 사랑하는 자를 거의 찾지 못하십니다. 저는 그분께서 대학의 캠퍼스를 찾으시는 것을 봅니다. “여기에 누가 나를 믿을 것인가?” 저는 그분께서 그분을 받아들이려는 자들을 구하며 워싱턴D.C.를 찾으시고도 거의 발견하지 못하시는 것을 봅니다. 저는 그분께서 온 나라들을 찾으시고 단지 자투리만 발견하시는 것을 봅니다. 저는 그분께서 현대의 변절한 교회를 찾으시고도 죽음 뿐 아무런 믿음도 발견하지 못하신 것을 봅니다.

결국, 그분께서는 그분의 교회에서 진실한 믿음의 종들을 찾으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보시는 것은 그분의 마음을 깨뜨리며 그분을 깊이 슬프게 합니다. 저는 그분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우셨듯이 우시는 것을 듣습니다.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며 너에게 보낸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자야, 마치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함께 모으듯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23:37)

그분의 진노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 받는 자녀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보이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인도하고 위로하기 위하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분의 성전에 대다수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투덜대고 불평하며 그분이 무시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두려워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기하시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의 사역자로써, 저는 내 양들의 짐을 집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그분의 슬픔을 느낍니다. 저는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나의 집 안이라도 믿음을 가진 사람을 거의 찾지 못하는 구나. 나의 목자들을 포함해서 나의 많은 자녀들은 그들의 고난의 때에 쓰러지는 구나. 그들은 그들의 가족, 직업, 미래에 대하여 나를 신뢰하지 않는구나. 참으로 많은 자들이 그들의 자신의 선택을 해버렸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물으시며 오십니다. “나를 믿겠느냐? 나를 신뢰하느냐? 내가 올 때, 내가 네 안에서 믿음을 찾겠느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데이빗 월커슨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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