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8/2009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까? - 1

예레미야의 목자들에 대한 경책은 아주 신랄했습니다! 저는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수많은 경건한 목사들을 거느리고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는 삯꾼 목자들을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 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예레미야 23: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특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11절)

예레미야는 이들을 “소돔의 선지자”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보았던 사특함들을 열거했습니다.

1. 그 목록의 맨 위에는 간음이 있었습니다. 즉 정욕으로 가득한 눈을 가지고 있는 목사들 말입니다! 그들은 음란하고, 육적이며 안목의 정욕을 좇습니다.

2. 그들은 거짓을 행합니다. 진리가 그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3. 그들은 악한 자들의 행위를 더욱 굳게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름이 나있는 자들의 죄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십일조가 줄어들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4.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비전을 이야기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자아와 명성을 세우기에 합한 육적인 비전을 이야기합니다.

5. 그들은 타협하는 자들을 부추깁니다. 지지와 사랑을 잃을 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6. 그들은 개인적인 꿈을 부추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7. 그들은 다른 사람의 말씀을 빌려옵니다. 그들이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없습니다.

8. 최악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이야기를 말씀인양 늘어놓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러한 자들에 대해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예레미야 23:16-17)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날 이런 메시지를 미국 전역에 있는 강단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미국은 다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부유해질 것이며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현재도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언제나 하나님께 특별한 나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슬프게도 이런 부드러운 메시지를 선포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이 죄 가운데 거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목사들, 전도사들 교사들이 성결하지 못함으로 강단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은 비디오 가게에 몰래 다녀와서는 자신의 서재에서 지옥의 끝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외설스러운 것들을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고통 받는 불쌍한 많은 아내들로부터 수많은 편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과 마음은 각종 나체와 음란한 것들로 언제나 불타고 있습니다. 성결치 못한 이러한 삯꾼 목자들 대부분은 사역이 금지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믿음의 양들에게 저주를 부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젊은이들을 지옥으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동시에 다른 부류의 목사들 “그분의 종, 선지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진리와 성령으로 충만한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목자들로서 거룩하고 흠이 없으며 양들을 위해 세워진 두려움 없는 종들입니다. (예레미야 23:4)

성경은 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여호와의 회의에 참예하였다(stand)”(18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참예하였다(stand)는 단어의 의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주고 받는 교제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거듭 거듭 우리는 이러한 특징을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악한 왕 아합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왕이여, 내가 당신에게 온 것은 주님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예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예레미야 23:18)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권고를 듣습니다. 그리고는 그 말씀을 이해하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종들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23:22) 그들은 누구의 죄가 드러나든지 간에 하나님의 집에서 죄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영적 죽음과 타협은 전적으로 타락한 목자들의 탓만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갈급한 회중들이 가장 바라는 목자의 모든 것을 갖춘 자 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으로도 그의 마음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짓는 죄로 인해 울부짖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해 투옥되었으며 끔찍한 물웅덩이에 내던져졌습니다!

성경은 거듭 거듭 예레미야가 “주님의 말씀이 임할 때까지” 주님의 임재를 기다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예레미야서에 무려 50번이나 나옵니다.) 당시에는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진실로 주님은 타협과 타락의 시대에도 진정한 선지자와 목사들을 거느리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반복해서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예레미야에게… 에스겔에게… 임하니라”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요나, 미가,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분명하게 경고해 주셨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으로 가득하였지만 동시에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소망으로 가득 찬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경건치 못한 것들로부터 구별될 것에 대한 부르심이었습니다. 동시에 끊임없는 거룩한 삶으로의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보편적으로 진리의 말씀에는 세 종류의 반응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바로 이 세 종류의 반응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1.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을 그냥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이사야 30:9-10)

제가 이 말씀을 처음 접했을 때는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저는 “자기 목사님에게 거짓된 메시지를 요구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 그런 자들이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님들이 강력한 예언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 그러한 자들의 반응을 볼 수는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떠납니다. 그들은 “나는 이런 설교를 받아들일 수 없어. 저런 설교는 참 황당해! 나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에 대한 단순한 성경의 가르침이나 들으면 좋을 것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은 바로 이스라엘이 원하던 바로 그 말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이사야 30:11)

그들은 죄를 드러내는 말씀을 너무나 경멸한 나머지 그런 말씀을 더 이상 전하지 말도록 요구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 좇았음이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예레미야 9:13-15)

하나님은 “너희가 그런 부드럽고 우유부단하며 쉬운 위로로만 가득찬 설교에 안주하기를 선택할 수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희에게 독이 될 것이다! 너희들은 그것을 마시고 죽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2.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만함으로 인해 들을 수 없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큰 능력과 영향력, 권위를 가진 자 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요시야 왕도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드기야가 경건과 하나님께 속한 것들에 대해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좌를 이어받자 그에게는 주님을 위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결국 위기가 닥쳐오고야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이 갑자기 포위되었습니다. 무자비한 갈대아 족속, 강하고 힘있는 군대에 둘러싸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먹을 것이 부족하게 되었고 물도 차츰 떨어져 갔습니다. 시드기야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불러서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예레미야 37:3) 어려운 때를 만나는 많은 자들이 그러하듯이 시드기야도 진리를 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온 나라에 기도를 촉구하는 그의 간청은 참으로 진지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왕에게 파멸을 예언했습니다. 이럴 즈음,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갈대아인들에게 애굽의 바로 왕이 거대한 군대를 거느리고 다가오고 있다는 첩보가 전해졌습니다. 공포가 갈대아인의 진지에 엄습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5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 위에서 대적이 도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 날뛰었을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우리의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우리 성읍이 불타지 않았다. 이제 예레미야가 말하는 멸망과 어두움도 이와 함께 끝나버렸다!”

저는 그날 밤 이스라엘이 성문을 열어 젖히고 일주일간의 공식적인 잔치를 선포하면서 포도주 잔이 넘치고 양식이 풍성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위기는 끝났다. 축배를 듭시다!” 인간 본성이 그러하듯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서 위기는 떠나가고 일상 생활로의 복귀가 일어났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자신이 국가적인 기도를 요청했었던 것 때문에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그 선지자 때문에 그렇게 놀라서 두려워했지?”

그날 밤 누가 가장 조롱과 멸시를 받았겠습니까? 멸망을 예언했던 자가 아니겠습니까! 예레미야기 지붕꼭대기에서 홀로 성읍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는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제게 심판을 예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갈대아인들이 물러갔습니다. 경제적, 물질적 환란도 끝났습니다. 당신은 제게 여자와 아이들까지도 죽음을 당하고 온 도시가 불탈 것이라고 경고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피흘림도, 양식의 부족함도 없습니다. 제가 받은 말씀이 그게 다 였습니까?” 그러나 갑자기 성경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주님의 말씀이 다시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가서 다시 갈대아인이 돌아올 것과 그들이 자기들의 임무를 끝낼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분명히 이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안돼요, 주님, 또 하라니요! 누가 저를 믿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왕의 궁전에 들어가 외쳤습니다. “시드기야 왕이여! 갈대아인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불태울 것입니다!” 시드기야가 이 말을 믿지 않고 고개를 저었을 것이 자명합니다. 전에도 들었던 이야기니까요! 그는 예레미야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즐기는 자리로 다시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척후병이 달려들어왔습니다. “갈대아인들이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있는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갈대아인들은 이번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다시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도 모르게 몰래 그를 불러들였습니다.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이 있느뇨?” (예레미야 37:17)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이제 진심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싶다네!”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는 대답했습니다. “예, 말씀이 있었습니다. 왕께서 바벨론 왕에게 사로잡히실 것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여전히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강퍅케 할 따름이었습니다. 자신이 듣고 싶던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포위된 성읍의 상황이 악화되어 갔습니다. 굶주림에 지친 여자들은 자신의 아기를 삶아 먹었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종말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베옷을 입고 성벽 위를 거닐며 그 파멸의 상황을 다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예레미야를 불렀습니다. 그는 그 선지자를 비밀 입구를 통해 자신의 집무실로 데려갔습니다. “내가 네게 한 일을 물으리니 일호도 내게 숨기지 말라” (예레미야 38:14)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시게. 부드러운 말은 필요 없네. 하나님께서 이번에 무어라 말씀하시는지를 진심으로 듣고싶네!”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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