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교회와 국가의 연합에 대한 개념
콘스탄틴은 그리스도교를 포용한 첫번째 로마 황제가 되었다. 그는 예배일에 대한 결정을 포함한 칙령을 공포했는데, 이것으로 인해서 교회와 국가의 동맹은 한 단계씩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서기 533년, 로마 제국이 쇠퇴해가던 때, 저스틴 황제는 당시 로마의 주교였던 요한 2세에게 폰티펙스 맥시머스라는 제위를 부여함으로써 교회와 국가의 연합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 후, 버질리우스 교황이 모든 권력을 떠맡게 됨으로써 교회와 국가의 연합은 완성되게 되었다.
이때로부터 로마의 주교는 종교적 - 정치적 주교가 되었으며, 교황권의 지배 권력이 확보되었다.
6. 오류의 변천과정과 그 창시자, 어거스틴.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방 종교의 영향력이 증폭되는데 있어서 어거스틴(Augustine) 이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그가 젊었을 때 받아들였던 이교의 사상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도 완전히 저버리지 못했다.
어거스틴은 당대의 가장 영향력있는 신학자로서 그리스도 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로마 천주교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신학적 오류 중에서 상당 부분은 어거스틴에 의해서 시작되었거나, 그를 따르는 신학자들에 의해서 발전되었는데, 그들은 어거스틴의 이설을 보충하고 공식화하였다.
어거스틴의 마음 속에 자리잡았던 이교 사상은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자유 선택에 관한 개념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하나님을 절대적이고 완전한 지배자로만 보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은 그에게 이해될 수 없는 분이었다.
그는 성경을 읽는 가운데 어떤 이들은 구원을 받아 하늘 왕국을 기업으로 받고, 어떤 이들은 멸망을 받아 잃어버린바 되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러한 진리를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학적 개념에 끼워맞추기 위해서 예정론의 교리를 도입하게 되었다.
예정론의 교리는 그가 생존해 있을 당시에도 상당한 도전을 받았었는데,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서 어거스틴은 우리 중의 어떤 사람도 구원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허물이 많은 인간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파멸로서 우리들의 운명을 미리 결정짓는 당신의 공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아무런 자격도 없다고 말하였다. 예정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오류는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 라는 또 다른 오류를 논리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절대적이고 변할 수 없는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구원받게 될 자들을 당신 임의대로 결정하시는데, 이런 식으로 일단 구원받은 자들은 다시는 잃어버린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파멸로서 운명지워진 자들은 결코 구원의 반열에 들어 올 수 없다. 이러한 믿음은 자신들이 구원받은 것으로 미리 예정되었다고 믿는 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기만적인 안전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또한 이러한 개념은 복음 전파의 필요성과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에게 많은 의문점들을 던져준다.
각 개인의 운명이 하늘에서 이미 다 결정되어졌는데 기별을 전해야 할 필요성이 무엇인가?
세상의 복음화의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종교를 개종할 이유는 무엇인가?
어거스틴의 논리대로라면,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관계는 구원에 있어서 부수적인 것이 되고 만다.
"한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 (once-saved-always-saved)는 잘못된 교리는 또 다른 오류인 "죄짓고-살고의 신학" (sin-live theology)을 낳게 되는데, 이러한 논리의 흐름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이기만 한다. 그리하여 구원 문제에 있어서 죄에 대한 승리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중세 시대의 잘못된 개념을 근원으로 해서 출발한 논리가 계속적으로 이어져 내려와 결국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학적 바탕을 이루는 "죄는 이길 수 없어, 그저 죄짓고 사는거야" 라는 도덕적 패배주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어거스틴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라도 죄를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 선택의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믿는 이방 종교의 가르침을 근거로 했던 어거스틴의 잘못된 전제로부터 시작된 논리의 전개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비성서적인 결론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몰고가고 있다.
어거스틴은 또한 원죄설에 대한 개념을 대중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아담이 지었던 바로 그 죄 때문에 정죄받는다고 주장했다. 죄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모독과 범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상태 그 자체가 죄인데, 이 죄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타나는 행위에 의해서 명백하게 드러나게 된다고 논리를 전개했다.
초기에는 그는 성(sex)을 원죄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오랫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성적인 욕망과 투쟁하였는데, 그의 그러한 성적 욕망은 본처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서 서자를 갖도록 하는 결과에 이르도록 하였다. 어거스틴의 이러한 연약함은 자신의 죗된 경험에 대한 신학적인 변명을 만들어 내도록 이끌었다. 그리하여 그는 후에 원죄에 대한 이러한 개념을 다른 부류의 범죄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하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육체와 영혼 사이에는 해결할 수 없는 투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그는 자신의 육에 대한 영의 승리를 결코 체험하지 못했다. 원죄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어거스틴의 개념은 육체를 취하시고 이 땅에 태어나신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마다 그를 딜레마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죄인이 된다면, `그리스도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셨다고 추론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나실 바 거룩한 자." (누가복음 1:35).
그리스도를 매우 죗된 인간으로 결코 묘사할 수는 없었다. 어거스틴은 억지 논리로서 결론 짓기를 그리스도는 인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본성을 취하셨다라고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께서 타락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을 것이라고 가정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는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있는 가장 명백한 증거들을 무시하게 된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고 주장하였음으로 인해서, 천주교회를 참람된 교리인 '무염시태설'을 신봉하도록 인도하였던 것이다.
이 교리는 19세기가 되서야 천주교회의 교리로서 완전히 인정되게 되었다.
신학적인 논리의 계단에 의해서, 어거스틴이 주장했던 잘못된 신학들은 수많은 비성경적인 교리들을 만들어내게 되었고, 그러한 것들은 결국 천주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르침으로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전통의 가치를 중요시 하는 천주교회, 특별히 서쪽에 있던 그리스도 교회들은 더욱 그러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잘못된 교리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딜레마가 생기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보다 상위의 본성을 가지신 윗자리를 차지하심으로써,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보자로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어거스틴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우리가 시험받고 유혹받은 것과는 같지 않는 방법으로 시험받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라도 인간은 죄에 대한 정복을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어거스틴이 가정했던 것처럼 그리스도보다 열등한 인성을 가졌다면, 인간이 예수께서 지상에 계신 동안에 가지셨던 것과 같은 죄에 대한 계속적인 승리의 경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거스틴의 관점은 그리스도께서 죄없는 생애를 성취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께서는 타락하지 않은 인성을 소유하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보다 죄의 문제에 있어서 큰 잇점을 가지고 있으며, 반면에 우리는 타락한 본성으로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의 모본이 되시기를 그치시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시험받는 자들을 그 시험으로부터 구해주는 위치에 계시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이외의 다른 중보자들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그 중보자들은 다른 인간들처럼 유혹을 느끼며, 고통당하며, 그리고 그 유혹에 굴복하는 남녀들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후에 교회는 예수의 어머니를 중보자로서 주장하게 되었고, 그런 다음 수많은 성인(saint)들을 만들어 내게 되었으며, 그들 또한 중보자로서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교구에 있는 모든 신자들처럼 모든 사소한 점에까지도 죄에 대해서 동일한 생애를 살아가는 사제들에게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보하는 중보자의 역활을 부여했다.
잘못된 이방 종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교회는 논리적 이끌림에 의해서, 그리고 어거스틴의 잘못된 전제를 메꾸기 위해서 한번에 한계단씩 오류에 오류를 더해갈 수 밖에 없었다.
원죄는 인간을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분리시킨다라는 것은 곧 교회의 가르침이 되었다.
임신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인간은 영원한 고통의 정죄를 받게 되었다.
원죄라는 잘못된 개념은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질문을 자아내게 한다.
"어떻게 하면 원죄에 대한 죄책감을 제거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얻어낸 결론은 침례라는 행위를 통해서 죄책감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만들어낸 해결책에 대하여 또 다시 뒤따르는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그렇다면 침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답변은 끔직한 것이었는데, 침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은 영원히 불타는 지옥불이라는 것이었다.
침례를 받지 못한채 죽음에 들어간 유아를 가진 부모들에게 있어서 교회의 그러한 선언이 주었을 충격은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유아의 사망률은 매우 높던 때였다.
자신들의 어린아기가 영원한 불에서 고통당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고뇌는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교회는 즉각적으로 교인들의 그러한 고뇌를 해소시킬 수 있는 어떠한 해결책을 강구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연옥이라는 기상천외한 것이 발명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연옥은 하늘에도, 지옥에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중간적인 위치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러나 교회가 제시하는 이러한 견해도 부모들의 고민을 해소시키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천주교회의 신조 가운데 유아세례 라는 예식이 도입되었던 것이다. 이방 종교에 원조를 가지고 있는 로마 천주교회의 대다수의 교리는 분명 5세기 말엽에 완전히 발전되었다.
그 이후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신실했던 남녀들은 로마의 강압적 지배에 굴복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로마와 그들의 배도와 이방종교적인 행습에 굴복하기를 거절하였던 자들은 쫓기고 박해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결코 로마는 진리의 토대를 짓밟을 수 없었다. 마침내 영국의 위클립, 보헤미야의 제롬과 허쓰, 독일의 루터와 멜랑톤, 스위스의 쯔윙글리와 칼빈, 스코틀랜드의 낙스와 같은 개혁자들은 로마 천주교회의 멍에를 쳐부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일지라도 로마의 모든 오류를 깨달을 수는 없었는데, 그들이 개혁하지 못한 오류와 잘못된 행습들은 그들의 다음 세대들에게 남겨지게 되었다.
우리가 사도 시대부터 개신교의 개혁시대까지의 길고 긴 영적 암흑의 기간과 현시대를 되돌아 볼 때, 예수로 말미암아 거듭난 우리들은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교황권의 권위에 무릅을 꿇지않았던 가치있고 용감한 부조들의 후예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들의 모본은 지구 역사의 마지막 순간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소유해야 될 흔들리지 않는 증언이 되어야 한다.
과거에 외쳤던 그들의 증언처럼 우리도 하늘이 흔들려도 진리에 대해서는 굳건히 일어서야 하며, 원칙에 대해서는 나침판이 남과 북을 가리키듯 항상 진실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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