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2009

성부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말씀하나님과 성령하나님

하나님 아버지(성부)께서 우리에게 말씀하나님(성자) 예수그리스도를 주시고 예수님의 청하심을 통해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 두분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성부하나님을 밝히 드러냅니다. 말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에 관해 공부합니다. *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에베소서 5:18b-19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말씀충만(골로새서)할 때와 성령충만(에베소서)할 때, 똑같은 외적 현상이 나타남을 볼 수있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또 성령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성령이 아니시고 또 성령도 말씀이 아니십니다. 성령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말씀충만은 곧 성령충만으로 성령의 나타나심이 드러납니다. 이 일이 우리 삶에 나타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계 12장:11절과 연결해서 묵상하십시오. 이기는 성도들의 두 가지 무기는 어린양의 피(성령)와 예수를 증거하는 우리의 말(말씀)입니다. 곧 성령과 우리안에 절절히 체험한 말씀의 역사하심으로 도는 사단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먼저 요6: 51- 60까지 묵상하시고 다음을 읽습니다.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어떻게 됩니까? 빵만으로도 안되고 성령만으로도 안됩니다. 말씀과 성령, 혹은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생명이 있습니다.성령은 포도주로 말씀은 빵으로 비유가 됩니다. 스피드와 활동하는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되는 영의 말씀의 빵과 성령의 포도주가 우리 몸에 섭취될 때 어떤 역할을 할까요? 육적으로 빵이나 포도주나 사람에게 에너지들 주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빵은 위와 장의 소화를 거쳐서 몸에 흡수되어 에너지가 되고 포도주는 소화를 거치지 않고 바로 혈관에 흡수가 되어 에너지가 됩니다. 비슷하게도 포도주로 말해지는 성령의 사역은 이 포도주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처럼 단기간에 강력한 에너지(능력)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터치를 받으면 나의 혼의 이해와 뜻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나의 영에서 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미치게 알고 싶어지고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렇게 성령께서 포도주 마신것처럼 임하신 다음에는 우리는 말씀인 빵을 먹어야합니다. 우리 각자는 말씀을 먹어 포도주로 발효시키는 포도주공장입니다. 말씀/빵을 지속적으로 먹으면 포도주/성령이 계속해서 내 안에서 계시로 폭발합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빵/말씀을 먹어 내 심령에 에너지를 공급을 해야하고 다른 이들에게 우리안에 생산된 포도주를 공급해야합니다. 간혹 성령을 소멸시켜서 다시 성령의 안수받고 휘저어야(stir up) 되는 분들도 있지만 평상시 말씀충만한 분은 당연히 성령충만할 것입니다.그런데 말씀/빵은 먹지않고 성령집회만 다니면서 성령/포도주에만 취하려는 분들도 걔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 먹지않고 마시는 것만 좋아하는 성령중독자들이죠. 씹어먹기도 귀찮고, 소화시키기도 힘들고, 그저 마시자. 이런 분들은 십중팔구 하나님의 선지자(예언)을 죽이는 미혹과 왜곡의 영을 동반한 조종의 영인 이사벨의 초청을 받을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분들이나 이런 분들이나 영적성장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우리가 성령집회를 찾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찬양과 경배를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영적 만족을 위해서라는 개인적인 것이라면 조심하십시오. 성령이 아니라 조만간에 ‘자기 중심’이라는 사단과 친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성령은 결코 개인적인 영적 독립심과 개인적인 영적 만족, 개인적인 영적권위를 추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흘러가지 않고 고여있는 어떤 것도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육적인 빵과 비슷해서 그렇게 포도주같이 순간적이고 표면적인 폭발적인 능력이 나타나지 않지만 지속적입니다.말씀의 빵은 영적 소화기관인 혼을 거쳐 소화되고 흡수되어 (지정의의 이해를 거쳐) 우리의 심령에 변화를 일으키며 행동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말씀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씹어야하고 위에 머물게 하고 장을 지나가게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그 말씀을 깨우쳐주심을 사모하며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성령의 불꽃을 전해 받았으면 바로 땔감이 되는 빵(말씀)을 상고하셔서 그 불꽃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빵(말씀)을 먹어 영적 소화기관인 혼이 소화를 시키면 그것은 피가 되어 혈관에 전해지고 그 피가 된 에너지는 강력한 성령의 포도주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간단하게 육적인 포도주와 빵을 성령과 말씀에 관해 비교했습니다만 말씀으로 그 불꽃을 더욱 키우면 결국 그 성령불꽃(포도주)을 또 우리가 사랑하는 또 다른 잃어버린 영혼에게 전달하는 통로로 우리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성령집회에서 주님의 임재안에 있는 것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예배를 통해 나타나신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역사를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 들이시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성령께서 우리를 고치시는 등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나타내는 것은 나만을 사랑해서만은 아닙니다. 나를 통해 또 다른 사람을 고치시고 그 역사하심을 나타내시겠다는 의지이십니다. 생수의 강이 나를 통해 또 다른 이에게 흘러넘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 생수의 강이 내게서 혹은 우리 안에서 고여있거나 고갈되지 않길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은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중생은 우리가 교회안에 한 지체로 태어났음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지금 흘러넘치고 있습니까? 성도와 성도의 관계에서, 교회와 교회의 관계에서 우리는 지금 서로에게 흘러넘치고 있습니까? “너나 잘해,” 혹은 “나나 잘하자”는 말은 원수가 우리 마음에 준 영적 독립심 즉 교만입니다. 그 말속에는 그리스도의 연합이 없습니다.주의 성령이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마4:16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갖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 사 61:1,2-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과 성령이 흘러넘쳐야만 합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사실 제가 보는 성도들의 문제는 성령집회만 쫓아다니는 분들보다도 성령으로 전하는 말씀에 배고픈데도 배고픈 줄 모르고 점점 율법적으로 변해가는 분들과 성령으로 목마름에도 목마른줄 모르고 오히려 성령의 역사를 성경적인 기준이 아닌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는 분들입니다.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망각하고 사역자들에게 의존해 주일예배에 설교 말씀듣는 것으로 혹은 신령하다는 성령사역자를 통한 한 두번의 성령의 터치로 배도 부르고 목마르지도 않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합니다. 아버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저희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한결같이 주님의 말씀으로 배고파하고 주님의 성령으로 목마르게 하소서! 먹고 마신 것으로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로 거룩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의점 : 우리가 말씀중심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말씀은 우선은 지정의(혼)의 차원에서 이해되어 영적인 깨달음을 가져오고, 성령사역은 우리의 혼이 아닌 영의 차원으로 경험하고 그 나중에 혼에 맺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성령사역과 달리 말씀사역은 혼의 깨달음으로 전해도 그닥 심각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만 말씀중심이라고 하면서 성령으로 말씀을 전하지 않고 나의 이해의 수준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면 말씀을 전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가 생명력이 없게 됩니다. 나의 혼적인 이해(나의 은사 중심)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in Christ’ 에 있는 것이 아니라 ‘in me’ 가 되어 인본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분은 성령이 그 입술을 주장하도록 내어드리고 성령사역을 하시는 분은 말씀의 영역밖으로 나가선 안될 것입니다. ( 벧전4:11. 시80:8-19 ) 딤전4:4-5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성령으로 교통)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매일 하나님이신 말씀과 성령을 먹고 마시며 흘러 넘치는 우리 되길 기도합니다. < 구약에 하나님이 직접 성삼위일체를 언급하신 구절> 잠언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이사야59:21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학개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찌어다.” 에스겔 37장 전체를 묵상하십시오. 말씀과 신의 역사하심이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둘 다 주님의 주권과 영광을 드러내고 사람을 자유케 하고 그 분의 성품으로 살게 합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아버지께 청해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신약> 에베소서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요한1서 5:5-7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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