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2009

영적 민감성에 관하여

예언 중보 은사나 예언 은사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흔히 꿈으로 계시를 얻는다는 데 있다. 일반인들이 꾸는 꿈과 다르다는 것은 이들의 꿈은 현실로 이루어진다던가, 위급한 상황을 알려 보호하시려는 하나님 뜻이 있기 때문인데, 아직 주님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들 중에도 장차 예언자로 부르셨다는 전조로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능력을 주시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지금은 꿈을 잘 꾸지 않는 편이지만 주의 길을 가기 훨씬 이전에도 꿈이 현실로 반영되는 경우가 있었다. 꿈은 환상과 같은 것으로 환상은 외적 경험이라는 것과 꿈은 내면세계의 스크린 같다는 것의 차이다. 환상을 뜻하는 단어로는 vision과 trance가 있다. vision은 다메섹 상에서 주님을 만난 사도바울의 경험 쪽에 속하고 trance는 요한의 천국체험과 같이 환상보다 한층 더 깊은 경험, 소위, 황홀경(ecstacy)쪽에 가깝다. 오늘날의 경우는 바울과 같은 "극적"인 환상을 보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만 주님의 형상이라든지,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천사의 형상을 본다던가 하는 일은 흔하다. 그런데 환상(vision)에는 외적인 형체를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flash insight이라고 해서 아주 즉흥적으로 영감이나 계시를 주심을 포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잊어버려서 한참 찾다가기도하자마자 어디에 두었다는 영감이 떠오르고 물건을 찾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므로 "왜 나는 꿈을 꾸지 못하는가, 또는 기도할 때 환상이 보이지 않는가"라며 낙담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 주시는 방법은 여러모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각 개인마다 어떤 방법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 최상인지 하나님이 아신다. 위에 설명한 바는 비단 영적 민감성과 관련 있는 꿈과 환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성도가 구해야 할 것은 이런 신령한 체험의 차원을 넘어 영적 민감성을 소유하는 것인데, 곧, 영적 분별력을 갖추라는 뜻이 된다. 영적체험은 은사적 성향이 짙어서 믿음이 아직 초보단계인 사람에게 많이 주시지만 영적 민감성은 늘 기도하며 깨어 있는 성도에게만 임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며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 생겨난다. 골로새서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비밀. 즉,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이라고 말했다(2:2)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경지가 깊어질수록 영적으로 민감해진다. 민감해지면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는 일이나 천사숭배나 세상의 초등학문에 죽는다고 말한다.(2:18-22) 말씀인 그리스도 외에 천국간증이나, 이교도 숭배, 사람의 명과 가르침에 속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골로새서의 주된 핵심이다. 주안에 있는 우리는 결코 인간의 어떤 지혜나 행함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민감해지면 영의 기운에 예민해져서 그날따라 영에 먹구름이 끼었다든지, 영에 불안을 느낀다던지 하는 신호를 얻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방언 기도를 읊조리게 된다던지 하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그날 그 시각, 내 방언기도로 말미암아 내가 아는 어떤 이가 용케 위험을 피해 간다던지,어떤 불길한 일이 터졌을 것을 피해간다던지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적 민감성은 꿈이나 환상처럼 예언적 성향을 띄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지혜와 지식과 명철함의 근원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골 2:3). 마땅히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아는 지혜가 생겨나며 그리스도의 사상이나 인격과 어긋나는 모든 것들을 바로바로 분별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이들이 십여 년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영적으로 자라나지 않는 이유는 지혜의 부족에서 온다.이는 성경의 무지함에서 오는 지혜의 부족이기도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지도자보다는 육에 속한 사역자들의 가르침을 더 숭배하는데서 온다. 천국간증 이라든지, 영적체험 간증이라든지, 골로새서 2장 18절에서 말한 바처럼 저가 본 것을 의지하여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는 간증들에 더 마음이 쏠리는 까닭이다.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자기 주관이 있어야 한다. 신령해 보인다고 다 신령한 것이 아니다. 진리처럼 들린다고 다 진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주관이란 말씀과 타협하지 않는 외고집을 뜻한다. 그러니까 '남이 이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내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철저히 인도되어 성령의 가르침에 민감한 삶을 사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곧, 성령께서 "아니다!" 라고 하시면 그 아무리 귀에 달콤한 것일지라도 타파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을 이끄는 사역자들에게 역시 당부하고 싶다. 이들이 추구해야 할 바는 자기 사역의 번성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온 정신을 집중하라고 가르쳐서 따르는 이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게자라가도록 돕는 일이다. 그들이 해야 할 바는 사실 그것밖엔 없다. 영적 성숙을 돕지 못하는 프로그램은 그 어떤 것일지라도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영적으로 민감해지려면 늘 말씀과 기도에 헌신하는 삶을 살고, 모든 행실과 언어와 생각에 그리스도의 목적이 배어나도록 힘써야 한다. <출처:우림과 둠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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