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명하심을 따라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관유가 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입니다. 우리 속에 은밀하게 오셔서 사시면서 우리를 거룩한 성전 되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을 말합니다.
출애굽기 29장 21절을 보면 ‘단 위의 피와 관유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관유의 용도는 성전이나 성전 기명 기구나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그 구약은 육체의 법으로서 하나의 비유요 그림자에 속합니다.
신약 시대인 지금 우리의 몸을 성전 삼고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 시대에 성전을 거룩하게 하는 관유의 실제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마치고 가신 이후에 보냄을 받고 오신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관유가 되사 성령님과 함께 오셔서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관유의 재료는 감람유에 몰약과 육계와 창포와 계피를 섞어 만든 것으로서 제사장과 성전의 기명 기구에 뿌려 거룩케 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여기에서 감람유는 성령님을 상징하고 감람 기름에 첨가되는 몰약과 육계와 창포와 계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네 과정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관유란 하나님의 영에 인자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네 과정을 거친 후에 그 영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요14:21) 이것은 하나의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실제이신 하나님에 관한 영의 방면을 이해하는데 아주 요긴하고 중요한 설명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성령의 역사가 다른 점/성령의 두 방면 역사
구약 시대에도 성령의 역사가 계셨지만 우리 위에만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관유가 되신 후 부터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마음 성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성전삼고 거룩케 하시며 불 밝히시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이 두 방면으로 임하십니다. 우리 위에 임재하시는 성령님과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를 성전 삼고 사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우리 위에 임재하시는 성령님은 공개적인 성령의 역사로서 복음 전파가 그 목적이며 은사와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성전 삼고 사시는 성령님은 은밀한 성령의 역사로서 성전 된 우리를 거룩케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새 언약 시대에 성령께서 두 방면으로 임하신 증거
누가복음 2장 26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7장 38-39절을 보면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분명히 누가복음 2장 26절을 보면 시므온 위에 성령이 계시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7장 38-39절을 보면 성령이 저희에게 계시지 않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순 같으나 자세히 보면 모순이 아닙니다. 누가형제님은 시므온 위에 있는 성령을 말하고 있고 요한형제님은 우리 속에 임할 성령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위에 임재하시는 성령님은 예수께서 영광을 받기 전에도 역사하셨고 새 언약 시대에 우리 속에 오셔서 사시는 성령님은 예수께서 영광을 받은 후 즉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처음 익은 열매로 아버지께 바쳐지신 후에 다시 보내심을 받을 보혜사 성령님을 말합니다.
아들의 공생애 후에 보내실 또 다른 보혜사에 대한 약속
요한복음 14장 16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께서 인생을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다시 보혜사를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보혜사의 역할의 두 방면
보혜사께서 영을 받은 자에 대한 역할
요한복음 14장 26절을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속대로 보냄을 받은 보혜사께서 그를 사랑하는 자 속에사시면서 하실 보혜사의 역할을 말하되 영을 받은 자신에 대한 역할을 말합니다. 그 역할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보혜사께서 영을 받은 자를 통하여 타인에게 하는 역할
요한복음 15장 26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보혜사의 정체와 그 역할을 말하되 타인에 대한 역할을 말합니다. 그 보혜사의 정체는 아들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고 아버지께로서 나오는 진리의 영을 말합니다. 그 보냄을 받고 우리 속에 오신 진리의 영의 타인에 대한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보혜사 성령님의 하시는 일의 두 방면을 말합니다. 그 하나는 영을 받은 자에게 하시는 일이고 또 하나는 타인을 위해 하시는 역할입니다. 개인에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이며 타인을 위해서는 복음을 전파하게 하실 것입니다.
보혜사를 보내시는 조건/아들이 가야 보혜사가 오심
요한복음 16장 7절을 보면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보혜사를 보내시는 조건을 말합니다. 그 조건은 아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가신 후에 보혜사를 보내실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전 삼으시는 방법/한 영 안에서 아들과 함께 오심
요한복음 14장 20절을 보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간에 집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집 삼으시고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집 삼고 하나님 안에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23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전 삼으시는 방법을 말합니다. 성전 삼으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사신다는 말입니다. 그 성취 방법은 보혜사 성령께서 오실 때에 아버지와 아들이 성령 안에서 함께 오심을 말합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을 세 분으로 표현하실 때가 있고 두 분으로 표현하실 때가 있고 한 분으로 표현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세 분으로 표현 할 때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아버지의 영을 말하고 두 분으로 표현할 때에는 아버지와 아들만을 말합니다. 성령이라는 말은 교리적인 말입니다. 원어적으로는 그 영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거룩한 이라고 하는 수식어가 붙어 성령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잘못 된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표현은 못됩니다. 이것은 교리적인 표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두 방면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새 언약 안에서 우리 안에 오신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오십니다. 이것을 요한복음 14장 20절과 23절에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비유적으로 말하면 감람유에 몰약과 육계와 창포와 계피의 네 가지 재료를 섞어서 만들어 성전과 제사장에게 뿌려 거룩하게 했듯이 아들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네 가지 과정을 거치신 후에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오신 하나님의 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약 안에서 그의 사랑하는 자들 속에 오셔서 성전삼고 사시는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오십니다.
신약 안에서는 하나님과 아들과 그 영의 형상을 각각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근본 하나님 한 분에서 시작하여 신약 안에서 확장 되신 것을 말합니다. 아들은 원래 태초부터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품 안에 계셨던 말씀이셨으나 신약 안에서 보냄을 받고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인생을 사시고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신약 안에서 확장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형상과 모양이 있으나 신적 존재 즉 영체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셔서 그 말씀이 육신을 입음으로서 육의 몸을 갖게 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분의 이름을 예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의 형상과 모양을 사람들 가운데 나타내시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 보냄을 받으신 보혜사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 영은 아버지의 영으로서 그 위치는 보좌 앞이고 그 형상과 모양은 일곱 뿔과 일곱 눈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상징적인 말입니다. 일곱 뿔은 완전한 권세를 말하고 일곱 눈은 완전한 통찰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위치는 보좌이고 아들의 위치는 보좌 우편이며 아버지의 영의 위치는 보좌 앞입니다.
승천의 두 방면에 대한 증거
요한복음 20장 16-18절을 보면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 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중에 도마에게 손을 내밀어 못 자국을 만져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고 하신 것은 이미 아버지께 올라가셨다가 다시 오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부활 후에 사십일 정도 머물다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던 공개적인 승천 전에 한 번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올라가셨다가 오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 속에 영을 불어 넣으심
요한복음 20장 21-23절을 보면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숨이나 성령은 원어적으로 똑 같은 프뉴마로서 영, 숨, 바람, 호흡 등을 말합니다. 그 영을 받으면 뉘 죄든지 사할 수가 있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숨은 영으로 해석 되어야 맞습니다. 이것은 해석자가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고 한 해석이라고 봅니다. 또 죄를 사하실 권세는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라고 합니다. 곧 여기에서 말하는 숨을 내쉬며 란 말은 아들이 은밀한 승천 이후에 다시 오셔서 제자들 속에 불어 넣으신 아들 그 자신을 말합니다.
아들이 부활 안에서 된 것의 두 방면/ 첫 열매와 생명주는 영이 되심
고린도 전서 15장 45절을 보면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원어도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고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 즉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부활 안에서 아들 자신을 우리 속에 불어 넣으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란 두 방면의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보냄을 받았느냐면 말씀이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하면 태초부터 하나님의 품속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말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분의 이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두 방면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방면과 사람의 아들이신 방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란 성자 된 방면을 말하고 예수란 인자되신 방면을 말합니다. 인자되신 방면은 부활 안에서 첫 열매가 되셨고 성자 된 방면은 부활 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그 영을 불어 넣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네 과정과 두 번의 변화 즉 무엇에서 무엇으로의 완전한 변화가 두 번 있습니다. 네 번의 과정을 거쳤다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과 죽으심과 다시 사심과 승천하셔서 아버지께 바쳐진 것을 말하고 두 번의 변화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과 부활 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다시 비유로 말하자면 감람유에 네 가지 재료 즉 몰약 육계와 창포와 계피를 섞어 관유를 만들어 성전과 제사장의 몸에 발라 거룩하게 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하기를 이것들이 비유요 그림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구조는 비유요 그림자이며 그 실상은 신약 안에서 성전 된 우리 몸을 말하고 관유의 실상은 우리 속에 오셔서 사시면서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신약 안에서 보냄을 받으신 성령님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 안에 비밀스럽게 오셔서 성전 삼으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열매를 맺어 가게 하시므로 이 비밀의 방면을 알고 실행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계명은 모든 성경 속에 그 비밀이 있지만 마태복음 5-7장까지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는 분은 하나님께서 그 속에 살지 못하시고 떠나십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고 꼭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세상과 육신에 속한 믿는 자들은 알지 못하게 은밀하게 오셔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 속에 사시면서 거룩하게 하시고 열매를 맺어가게 하시는 주님 우리에게 비밀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깨달아 결단하게 하시고 열매를 맺어가게 하옵소서!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아멘!
<출처:좋은땅에뿌려진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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