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인 분이시다. 그분은 생각하고 느끼며 의지를 갖고 행동하신다. 그분은 지성적 존재로서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며 지시하는 독립적 존재이시다.
성경은 우리가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어 슬퍼하시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은사들을 주신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인격적 존재의 모든 속성들, 즉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진 분임을 알 수 있다. 성령님은 성경에 영감을 불어넣으셨다. 그분은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그 말씀을 깨닫도록 빛을 비추어주신다. 또한 우리가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도록 도우신다.
그분은 삼위일체의 한 위(位)이시며, 성부 및 성자와 동등하시다. 삼위의 사역은 구별되는데, 성부는 계획하시고 성자는 성취하시며 성령은 적용하신다. 세 분이 각각 자기의 사역을 감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신다.
예수님은 “그가(성령님이) 와서 죄에 대하여, 의(義)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말씀하셨다. 성령님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다.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난다는 말이다. 거듭난 사람 안에는 성령님이 거하신다.우리가 그분께 순종할 때 그분은 가르치고 지시하며 충만케 하신다.
성령님과 그리스도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몸을 가지시지만, 성령님은 몸을 갖지 않으신다.
성령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신성만을 가지신다. 우리는 그분을 만지거나 볼 수 없으며, 느낄 수도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오감(五感)을 통해 그분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을 전혀 알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령님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성령님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성경은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 (롬 8:16)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적 흥분이나 몸의 떨림을 성령님의 임재라고 믿지만, 이런 것들은 그분의 임재의 결과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요한일서 4장 1절의 교훈에 따라 우리는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야” 한다. 때때로, 성령님 임재의 결과가 아닌 것들이 그분 임재의 결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분별력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들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고 가르친다. 술을 마시면 술에 취하게 된다. 사람들은 술의 유혹에 넘어가 의지적으로 술을 마신다. 알코올이든 아니면 어떤 종류의 약물이든 간에 그것을 마시거나 먹으면 그것들의 통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성령님께 넘겨드리면 우리는 그분으로 충만하여 그분의 통제를 받게 된다. 누군가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더 많이 갖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그분이 우리를 더 많이 갖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분의 한 부분을 소유할 수 없다.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에 작은 조각들로 나뉠 수 없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사용된 동사의 시제는 현재 시제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이다. 성령 충만은 한 번 충만해지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날마다 우리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그분께 넘겨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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