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2009

하나님의 '의'란 무엇인가?

1. 개역판 신약성서에는 '정의'(正義)라는 낱말이 놀랍게도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아니했다. '공의' (公義)는 명사적, 형용사적 및 부사적 용법을 합하여 8( ; ; ; 28:4; 살후 ,7; 벧전 ; ) 사용되었다. 이에 반하여 구약성서에서는 '공의' 88, '정의' 16번 사용되었다. 히브리어 성서의 '채댁' '체다카' 라는 두 낱말은 개역성경에서 거의 대 부분 ''()로 번역되었는데 '채댁' 130여회, '체다카' 150여회 사용되었다. 헬라어 신약성서 의 '디카이오쉬네'는 두 곳( ; )에서 '공의'로 번역되고 나머지는 모두 ''()로 번역되었다. 신약성서 전체에서 '디카이오쉬네' 또는 ''가 사용된 회수는 90여회에 지나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에는 '미쉬파트'(주로 '심판'을 뜻함) 380 여회 사용되었는 데 반하여 신약성서에는 '크리시스'('심판'을 뜻함) 48회 정도 사용되었을 따름이다.  

위의 통계에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하면:  
1) 신약성서에서는 구약성서에 비하여 ''라는 낱말이 현격하게 적게 사용되었다.  
2) 신약성서에서는 '심판' '공의'라는 낱말은 아주 드물게 사용되다.  
3) 개역판 신약성서에서는 '정의'라는 낱말이 전혀 사용되지 아니했다.  

이 낱말들이 신구약성서에서 각각 사용된 빈도(頻度)의 차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용법 (用法)의 차이이다. 구약성서에서는 '채댁' 또는 '체다카'는 수 없이 많은 곳에서 하나님을 의미상의 주체로 하여 사용되었는 데 반하여 신약성서에서는 겨우 일곱 번만( ; , 21, 22,25,26; ) 그렇게 사용되었을 따름이다. 또 구약성서에서는 '미쉬파트'라는 낱말이 하나님이 수시(隋時)로 역사에 개입하여 잘못을 바로잡으시는 행위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지마는 신약성서에서는 '심판'이라는 낱말은 역사의 끝에 있는 최후의 심판을 가리키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하여 이미 내려진 현재적 심판을 가리킨다.

신약성서에서는 인간의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의 행위를 기술(記述)하는 데 '사랑' 또는 '은혜'라는 개념이 주로 사용된다.   일찍이 마르시온(Marcion)은 구약성서에 계시된 하나님과 신약성서에 계시된 하나님은 별개의 존재라고 주장하다가 이단자로 규정되었다. 현명하게도 우리는 모두 노골적으로 마르시온과 같은 이단에는 빠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다수 암암리에 상정(想定)하기를 하나님이 구약시대에는 심판과 보복의 신()으로 행동하시고 신약시대에는 사랑과 용서의 신으로 행동하셨다고 한다. 구원사를 전개 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행동하시는 방식이 동일한가 변하였는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2. 종교개혁을 통하여 이른바 바울의 '의인론'(義認論) 또는 '칭의론'(稱義論)이 신학적 논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오늘날 개신교 신학자들의 거의 대다수는 의인론은 바울 신학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복음의 정수(精髓)라고 주장한다. 개신교회는 거의 예외 없이 의인론을 '교회의 존망(存亡)이 달려 있는 신앙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으로 받아들인다. 바울의 의인론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행위와 믿음을 핵심적인 대립 개념으로 논의의 중심부에 놓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의인론의 근거와 목적이 되는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는 아직까지 철저하게 규명되지 못하였다.  

바울은 로마서 3-4장에서 그의 의인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그 출발점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를 의인론의 근거로 선언하였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2). 신약성서에서 92회 사용된 '디카이오쉬네'() 가운데서 바울이 그의 5대 서신(, 고전, 고후, , )에서 52회 사용한 것을 볼 때에 바울이 ''를 중요한 신학적 개념으로 취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기 위하여는 '' 일반의 개념을 규정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의'라는 정형구(定型句) 속에 사용된 ''()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밝혀야 한다

3. '하나님의 의'가 무슨 뜻인지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는 ''()라는 1격명사가 내용적으로 어떤 종류의 명사인지를 규정해야 하며 둘째는 '하나님의'라는 2격명사의 문법적 기능이 무엇인지를 규정해야 한다. '하나님의'라는 2격명사의 문법적 기능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주로 '주어적 2'(gen. subj.)이냐 '목적어적 2'(gen. obj.)이냐를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다. 이에 반하여 ''()가 내용상으로 어떤 종류의 명사에 속하느냐에 대해서는 물음을 전혀 제기하지 아니했다.  
                                  
어그스틴(St. Augustine) 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두 ''()를 추상명사(抽象名詞)로 이해했다. 그러나 ''를 추상명사로 자명하게 전제하고 출발하는 경우에는 '하나님의'라는 이격명사가 주어적 2격이냐 목적어적 2격이냐는 논의 가 '하나님의 의'라는 어구의 의미를 밝히는 데 실질적으로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거의 모든 주석가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의'라는 어구의 문법적.언어적 의미 그 자체를 규명하려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의'가 인간에 대하여 맺는 관계를 끼어 넣어서 설명하려 하였다. '하나님의 의'라는 어구를 해석함에 있어서 문법적으로 가장 큰 혼란을 일으킨 사람은 루터(M. Luther)이다. 그는 아무런 문법적인 근거 없이 '하나님의'라는 2격 명사를 목적어적 2격이라 규정하고서 '하나님의의'의 뜻은 '하나님 앞에서 통용되는 의'(righteousness which holds before God; Gerechtighkeit, die vor Gott gilt)라고 하였다. 대다수의 개신교 신학자들은 루터의 권위 때문에 그의 이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19세기말과 20세게 초에 몇몇 주석가들이 루터에 반대하여 '하나님의'라는 2격 명사를 주어적 2격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가운데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크레머(H. Cremer)의 해석이다. 크레머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 특유(特有)한 의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의 속성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관으로서의 하나님의 행위, 즉 하나님의 구원작용을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 해링(Th. H ring) '하나님의 의'라는 어구에 대한 11개의 해석 유형을 소개하였다. 그 가운데서 주목할 만 것은 주어적 2격과 목적어적 2격 사이의 중간 노선으로서 '작자적(作者的) 2'(gen.suctoris)이다. '하나님의'를 작자적 2격으로 규정하는 경우의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인간에게 부여되는 의로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관계를 근거 지어 주는 의를 뜻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와 같은 다양한 해석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의 뜻을 올바로 포착하지 못한 까닭은 ''()를 추상명사로만 이해했기 때문이다. ''가 추상명사이면 '의로움'을 뜻한다.   '의로움' '의로운' 또는 '의롭다'라는 형용사가 명사화 된 것이다. 2격 명사와 추상명사가 결합하는 경우에는 그 2격 명사로 지칭되는 인물의 존재가 어떠한 성질인지를 서술한다. "그 사람의 근면은 그의 최대의 장점이다"라는 문장에서 '그 사람의 근면'은 그 사람이 근면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근면'이라는 추상명사는 그 사람의 존재의 성질을 서술한다('그의 교만', '그의 성실', '그의 교활', '그의 건강' 등등 참고할 것). '하나님의 의'를 이러한 유형에 대입시키면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며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바울의 표현 가운데서 로마서 3 25절과 26절에 각각 사용된 '그의[=하나님의] '라는 어구는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러나 로마서 1 17, 3 21절과 22, 10 3절에 사용된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은 위의 유형에 귀속시킬 수 없다. 바울이 그의 의인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의인론의 기본 명제를 제시하는 이들 구절에 사용된 '하나님의 의'가 무슨 뜻인지를 밝히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 길을 개척한 사람은 캐제만(E. K semann)이다. 그는 바울의 이 표현에 있어서 '' ()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행동명사(行動名詞, nomen actionis)이며 '하나님의'는 주어적 2격도, 목적어적 2격도 아니고 작자적 2격이라고 주장하였다. 캐제만의 이 획기적인 연구를 계기로하여 바울의 '하나님의 의'를 올바로 해석하는 가능성이 열렸다.
  
행동명사는 문자 그대로 행위나 행동을 나타내는 명사이다. '부활', '승천', '강림'(降臨), '구속'(救贖), '박해', '해방'은 행동 명사이다. 행동명사를 다시 두 종류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부활, 승천, 강림은 자동사(自動詞)가 명사화한 것이고 구속, 박해, 해방은 타동사(他動詞)가 명사화한 것이다. 자동사에서 유래한 행동명사와 결합된 2격 명사는 주어적 2격이다. '예수의 승천'이라는 어구에서 예수는 승천이라는 행위의 주체이다. 이 경우에 승천이라는 행위는 그 행위의 주체인 예수와 밀착되어 있다. 예수에게서 벗어나서 승천이라는 행위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달리 '하나님의 구속', '사울의 박해', '모세의 해방'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구속 행위[사건], 사울이 일으킨 박해 행위[사건], 모세가 이룩한 해방 행위[사건]를 뜻한다.
                                                                                                                                 이 경우에 구속, 박해, 해방이라는 행위는 그것을 일으킨 장본인(張本人)의 몸에서 벗어나서 별개의 사건으로 존재한다. 타동사에서 유래한 행동명사와 결합된 2격 명사는 주어적 2격이 아니라 작자적 2(gen. auctoris)이다. 주어적 2격과 작자적 2격의 차이를 엄격하게 분별해야 한다. '그의 달음질'(주어적 2 + 자동사에서 유래한 행동명사)이라는 행위에서는 그 사람과 달음질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구타(毆打)'(타동사에서 유래한 행동명사 + 작자적 2)라는 행위가 일어난 곳에서는 구타 행위의 결과가 그 행위자의 몸에서 벗어나서 존재한다. 즉 어떤 사람이 구타를 당한 사건을 반드시 수반한다.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에서 ''가 행동 명사이고 '하나님의'라는 2격 명사가 작자적 2격이면 ''는 원래 타동사를 명사화 시킨 명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시려고 행하시는 행위 또는 하나님께서 옳다고 판결해 주시는 행위이다.   바울이 사용한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의 어법에서 유래했다. 구약성서에서는 '여호와의 의'라고 표현하였다. 구약성서에서 '여호와의 의'는 무엇을 뜻하는가? 구약성서에서 '여호와의 의'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전승은 드보라의 노래이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여자 사사(士師)로서 침략자 야빈의 군대를 물리친 여장부인데 그가 부른 승리의 노래 가운데 '여호와의 의(복수명사)'라는 표현이 나온다.
                                                                                                                                "활쏘는 자의 지꺼림에서 멀리 떨어진 물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 ).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은 히브리어 표현으로는 '치드카요트 야웨' 인데, 직역하면 '여호와의 의()'이다. 드보라가 칭송한 '여호와의 의'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베풀어주신 구원 또는 승리를 뜻한다. 공동번역성경은 이 표현을 '야훼의 승리', AV 'the righteous acts of the Lord', RSV 'the triumphs of the Lord', NAB 'the just deeds of the Lord', ZB 'die Heilstaten des Herrn'으로, E 'die rettende Taten des Herrn'이라고 각각 적절하게 번역하였다. '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하여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삼상 ) 하였는데 '여호와의 의'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의 원수들의 위협 또는 억압으로부터 구출해 내신 구원의 행위이다. '여호와의 의'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개입하셔서 잘못된 현상을 바로 세우시는(to put things right) 행위이다. '여호와의 의'라는 표현에 사용된 ''()가 행동명사이며 '구원과 거의 동의어임은 다음과 같은 병행어법에서 잘 드러난다.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 라" ( 46:12,13).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 51:5,6).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임이라"( 56:1).   '여호와의 의'는 이스라엘 민족사의 각 시기에 따라 약간씩 다른 뉴앙스를 풍기게 되었다. 왕조 이전 시기에는 주변의 강대국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두원, 구출, 도우심, 승리 등을 뜻했으며( ; 삼상 ), 바빌론 유배 기간 중에 선포된 예언의 메시지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 생활로부터의 해방을 뜻했으며( 46:12,13; 45:13; 62;2; 51:10), 포로기 이후의 암담한 시기에는 종말론적 구원을 뜻했다( 51:5,6,8; 55:1; ). 왕조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의 사회 내부의 강자(强者)와 약자(弱者) 사이의 계급 갈등에 있어서는 약자와 가난한 자를 편드시는 하나님의 원조(援助)를 뜻했다( ; ,8; ; 31:1; 35:24,27; 36:10; 40:10; 50:6; 69:27; 71:2, 15,16, 19,24; 72:72:1,2; 88:12; 94:15).


이러한 경우에는 여호와를 의로우신 재판관으로 비유하여 묘사하기도 하였다. "1.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 9. 내 영혼이 여호화를 즐거워 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10.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요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 23.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24.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저희로 나를 인하여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 27.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로 기꺼이 부르고 즐겁게 하시며 .... 28.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 하리이다" (35).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영히 수치를 당케 마소서. 2.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 15.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16.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의 곧 주의 의만 진술하겠나이다. .... 19.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대사를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 24. 내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씀하오리니 나를 모해하려던 자가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다" ( 71).  


시편 기자들이 노래하는 여호와의 의는 하나님과 인간 단독자 사이에 일어나는 구원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강자와 약자 사이의 갈등에 개입하셔서 억울하게 빼앗긴 약자의 권리를 회복해주시는 구원 행위이다. 유배 생활에서 귀환한 후에 건설된 이스라엘 사회는 점점 더 제사장 중심의 종교 체제로 굳어져 갔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의 의에 매달리기보다는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조건으로서의 개인적 의()를 이루는 데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하여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의에 도달하겠다는 이른바 공로주의 사상이 신약시대에 바리새파 사라들 가운데 팽배하게 되었다.


4. 히브리어에서 '' '의롭다 하다'라는 낱말은 원래 법정적(法廷的, forensic) 용어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 25:1). "옳은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해야 하고 그른 사람에게 유죄를...."()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해하시되 주의 종들을 국문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 의로운 대로 갚으시옵소서" (왕상 ). "(6.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겠노라"( ).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 그 의를 빼앗는 도다" ( ). "뇌물에 눈이 어두워 죄인을 옳다 하고 옳은 사람을 죄 있다 하는 자들아!"()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 ).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4.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며 악인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 82:3). maintain the right of the lowly and the destitute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 지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 50:8). "내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 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 ). "I must bear the indignation fo the Lord, because I have sinned against him, until he takes my side and executes judgment for me. He will bringme out to the light; I shall see his vindication."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삼하 ). "소송할 일이 있어 재판을 받으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내앞에 와서 공정한 판결을 받을 것이오."() I would give them justice.(NRSV)


5.바울의 의인론에 사용되는 '의롭다 하다' 또는 '의롭게 하다'라는 능동형 동사와 '의롭다 함을 받다' 또는 '의롭게 되다'라는 수동형 동사이다. 능동형의 주어는 당연히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능동형의 목적어 또는 수동형의 주어로 등장하는 인간이 어떠한 부류인지를 올바로 파악해야만 의인론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다.   누가? ( ,3); ; ,33; )   누구를?   '불 경건한 자' ( )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 시나니"   '이방 사람들' ( )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이방 사람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을 성경은 미리 내다보았습니다."()   '할례자와 무할례자' ( )   '예수를 믿는 자' ( )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자' ( )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이 택하신 자' ( )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 하리요?"   '죄인'(?) (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6.의인론이 전개된 최초의 자리는 어디인가? 안디옥 사건( 2:11-14)과 의인론( 2:15-21) 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 2:14>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 3:6-14> 8: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 3:21-30>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 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한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 4:1-12> 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 할례지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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