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2010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드리는 예배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기도일까요? 물론 기도는 정말 중요합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헌금일까요? 물론 헌금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봉사일까요? 사랑일까요?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예배입니다.

왜 예배가 가장 중요할 가요? 예배의 뜻은 <하나님을 섬긴다> 그런 뜻입니다. 대통령이 장관으로 자기 옆에 사람을 부르는 것은 자기를 도우라고 부른 것입니다. 대통령을 도우라고 부름 받은 장관이 대통령을 돕지 못 하면 파면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지 못 하면 버림받아야 합니다. 사람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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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프랑스 성직자인 장 피에르 드 코사드(Jean-Pierre de Caussade)는 ‘매 순간을 예배로’ 사는 태도가 거룩함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일분일초마다 하나님 나라가 들어 있고 하늘의 양식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하찮은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누차 강조합니다. 코사드는 ‘거룩’과 ‘세속’을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통해 역사하시고 사소한 일에도 마찬가지라고 하십니다. “거룩한 일인지 묻지 말고,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손길만을 찾으라.” 심지어 그는 시간 그 자체를 역사라고 평가하십니다. 시간은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기록하는 역사(歷史)’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찾으라는 가르침이 언제나 반갑지만 않습니다. 미래의 순간은 도전적이고 자극적이며 상급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금이라는 시간에 드려야 할 예배를 그냥 지나치고 싶은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는 지금 서 있는 바로 그곳이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내가 존재하는 유일한 곳은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크린턴 대통령 시절이 미국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부흥하였던 시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상 가장 추잡한 소문을 낸 대통령이 크린턴 대통령이었다는 것입니다. 음란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크린턴 대통령을 축복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크린턴 대통령은 예배를 귀중히 여기는 이였기에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토요일 밤에 워싱턴에 눈이 3 m가 내렸습니다. 웬만한 집은 눈 속에 파묻혔습니다. TV에서 방송이 되었습니다. 모두 움직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눈 속에 묻히면 찾을 수가 없기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TV로 예배를 드리라는 보도였습니다. 모두가 예배를 안방에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 때 크린턴 대통령은 이 교회 저 교회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찾은 것입니다. 그 때 워싱턴에 조그만 감리교회는 목사 주택과 교회와 붙어 있기에 목사님이 전화를 받고 “우리 교회는 나 혼자라도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예배를 드리러 나가 보니 그 많은 눈을 헤치고 크린턴 대통령이 예배 드리러 나와 앉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중요시 여기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하나님이 크린턴 대통령을 축복하셨다는 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내가 왜 존재합니까?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안 죽고 살아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 안에 자리하고 있는 기쁨, 하나님 안에 자리하고 있는 감사, 하나님 안에 자리하고 있는 복을 내 속에 담고 누리며, 그것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환경에 있든지 절대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성경에 "품어준다"고 나옵니다. 내가 너를 품어준다, 내가 너를 안아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날개 아래, 그 터 아래 품으셔서 그 크고 따스한 숨결이 함께 통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주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는 지금 서 있는 바로 그곳이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내가 존재하는 유일한 곳은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송명희 시인의 “나”라는 복음성가의 가사는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있다. 나는 예수가 내게 오셔서 나를 구원해 주셨다. 나는 비록 여러 가지로 장애가 있지만, 온전하신 내 하나님이 온전한 꿈을 내 속에 품고 계시고, 온전한 하나님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로 내 몸은 약하나 내 머리에는 지혜를 주셔서 내 머리 하나는 그래도 정상적이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감사하는 순간 순간이 예배입니다.

항상 즐거워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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