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에게
말하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말하되, 회개하여
각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들의 사면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행 2:37 ,38)
우리는 사도행전 2:37 ,38을 열심히 기도하며
주의 깊게 숙고해 봄으로써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조(思潮)
가운데에 나타나 있는 오류들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청중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로 인하여 크게 놀랐고, 자신들에게 임할 영원한 진노로 인하여 두려워했으며, 마치 칼이 심장을 꿰뚫은 것처럼 마음에 찔림을 받고, 번민 속에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사도는 초칼빈주의자들처럼 "믿기만 하시오. 당신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초칼빈주의의
치명적인 타성을 두둔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쓸모없는
많은 영혼의 의사들'처럼 '당신들의 죄가 다 말소되어짐을
믿으시오'라고 충고하지 않았습니다. 이와는 크게 달리 사도의
대답은 실제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받을 책망은 다 받으시오. 하나님께 속한 모든 진리를 인정하시오. 당신을 속이려 하지 말고
당신의 사악함을 고백하시오. 당신의 할례 받지 못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낮추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하여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시오, 당신이 그리스도의 중보와 공로를 믿는다는 그 증거로서, 주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시오. 그러면 당신의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외적인 표시가 될 것이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람의 경우에 그 성격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눈을 열어 하나님의 품성과 하나님의 법의 아름다움, 죄의
무한한 사악함, 무한한 속죄의 필요성, 그리고 자신이 그리스도를
필요로 함을 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최고의 충만한 선(善)이시며 그분께 돌아오는 모든 죄인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아들이는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모두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이자 하나님께서 비추어주신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최고의 주이시며 최상의 선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더
분명한 빛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율법의 영광을 보며, 마찬가지로 죄의 무한한 사악함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무한한 속죄와 완전한 의가 필요함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자연적으로
그리고 불가분(不可分)하게 연관됩니다. 실로 회개와 믿음은 필연적으로 서로 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율법의 영광 그리고 속죄의 영광에 비추어 회개하는
자는 회개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긍휼의 자유로운 은혜를 바랄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율법과
속죄의 영광에 비추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긍휼의 자유로운 은혜를 바라는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불평했던 자신의 모든 허물을
받아들이며, 율법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나타난 자신에 대한 모든 심판과 정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회개하며 돌아서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는 말씀은
"그런즉 너희가 회개하고 회심하라. 그리하면 새롭게 되는 때가 주님 계신 곳으로부터
올 때에, 너희 죄들이 말소될 것이요"(행 3:19 )라는
말씀과 똑같은 (회개와 믿음의 두 가지 뜻을 다 포함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선포한 믿음은 그 자체가 본질상 회개를 함축하며, 회개는 그 본질상 믿음을 함축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때로 믿음만을
언급하거나, 때로 회개만을 언급하거나, 때로 둘 다를 함께
언급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언제나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견지에서 볼 때 회개와 믿음은 각각 속에 상호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죠셉 벨라미,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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