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맏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2~14)
영혼이 죽은 사람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영혼이 죽은 사람은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세상에 태어나야만 비로소 육신의 생활이 시작되듯이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비로소 영적 생명이 시작 된다.
천국에서 살아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한마디로 거듭나야 한다.
거듭난다는 것을 겉모습만 약간 바꾸거나 욕망을 다스릴 줄 안다거나 고삐 풀린 정욕을 억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훨씬 더 깊고 철저한 변화가 필요하다. 마음에 새로운 본성이 거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의 상태는 어떠한가?
거듭나서 천국에 들어가 천국의 삶을 누릴 채비가 되었는가?
성령으로 난 사람으로서 삶 가운데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가?
이 나라, 각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당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해보라.
그들과 당신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고, 어디에서 즐거움을 찾는가?
그들과 당신은 무엇을 가장 좋아하고, 어느 때에 적극성을 드러내는가?
그들과 당신은 어떤 일을 가장 즐거워하고, 의욕적인가?
그들과 당신이 어떻게 주일을 보내는지 그 방식을 유심히 살펴보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 기쁨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녀노소, 가난한자와 부자를 막론하고 거의 모두 세속적인 쾌락과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문제는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이 사람들이 진정으로 죄를 뉘우치고 돌이켜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와 오늘날의 이름뿐인 신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비교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나의 말을 쉽게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중생없이 구원도 없다.
신생없이 영적 생명도 없다.
새 마음이 없이는 천국도 없다.
기독교의 위대한 원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거듭남은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사안이다. 거듭남은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이람 누구든지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알고, 스스로 경험해야 할 문제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천국에 들어가기 원하는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고 장사하고 수고하며 살아가는 이때야말로 우리에게는 천국의 삶을 준비해야 할 유일한 시간이다.
칭의(稱義)와 성화(聖化)와 중생(重生)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현세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칭의와 성화와 중생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즉 부, 학식, 명예, 세상의 위로, 건강, 집, 토지, 친구는 없어도 얼마든지 구원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지만, 거듭남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구원 받을 수 없다.
가난애도 거듭나면 구원받고, 멸시를 당해도 거듭나면 구원받고,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거듭나면 구원 받는다. 단,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거듭나지 못한 채 사악하고 경건하지 못한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신다.
당신은 거듭났는가?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도 영생도 없다.
<거듭났는가/J.C. 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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