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라엘의 결혼풍습 - 주님과 우리 관계는 약혼관계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정혼한다는 것은 결혼이 거의 확정적이니 사람들 앞에 공포합니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와 같이 살 집을 짓습니다. 신부와 함께 살 집을 짓기 위해서 잠시 신부와 떨어 떨어져 있지만 실지 부부이듯이 주님과 우리가 그런 관계입니다. 정혼하게 되면 둘이 연합이 맺어졌고 법적으로 선포가 되었기에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정혼되었다고 선포되면 언약의 증표로 포도주를 한잔 나눠 마시는데 신랑은 일년 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신부와 남은 인생의 온전한 연합을 위해서 거할 집을 준비하고, 신부도 이제부터는 오직 한가지 일에 몰두하는데
평생 남편과 살 준비를 하며 신랑이 자기를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밖에 모든 일들은 이 한가지 일의 부산물입니다. 신랑도 정말 신부를 만나고 싶지만 일년만 참으면 데리러 오겠다고 하는데 신랑을 기다리는 동안에 신부의 관심은 신랑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에 관심을 가집니다.
남편이 아닐 때는 관심이 없었겠지만 남편이 되고 나면 관심이 달라집니다. 일년의 기간이 끝나면 신랑은 자기 신부를 데리러 밤에 친구들과 함께 횃불을 앞세우고 오는데 언제 간다고 미리 알리는 것이 아니고 갑자기 오기에 신부는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신랑이 도착하면 친구들이 먼저 가서 곧 신랑이 도착한다고 준비하라고 알립니다.
2.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약혼(정혼)관계인데 신부의 관심은 오직 신랑께 있습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바로 약혼한 관계입니다. 우리의 신랑이신 주님께서도 신부와 함께 영원히 거하실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는데 처소가 다 예비되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부된 우리는 오직 복스런 소망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혼하고 일년 정도 서로 떨어져 있으니 연애를 못하지만 주님과 우리는 영적교제를 할 수 있고 연애를 할 수 있기에 주님과 교제하면서 기다립니다.
신부가 신랑이 무엇을 하고 있을까에 온통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듯이 우리도 신랑되신 주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오직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관심도 없고 오신다는 것도 모르고 다른 살림을 차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안타깝습니다.
세상의 실지로 많은 연애사건이나 문학작품을 보면 기약 없이 떠난 님이 행여나 오실까 하며 기다리는데 처량합니다. 우리 주님은 정확하게 약속대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데 주님께서는 궁전을 예비하시고 데리러 오십니다.
왕은 왕후를 위해서 궁전을 지어주지 셋집을 안지어 주듯이 우리는 주님의 신부이니 궁전을 지어주십니다. 주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진실하신 분이시고 우리라는 신부를 얻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분이십니다. 완전히 망가진 마귀 색시노릇하고 있는 우리를 십자가로 피로 구속하시고 양육하시면서 우리를 신부 삼으시고 동역자를 삼으신 분이십니다.
오시리라! 고 하신대로 반드시 오십니다. 오직 신부는 이 소망으로 삽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오시면 신부를 자기의 예비한 집으로 데려 가십니다. 이 땅에서는 신랑이 도착하면 잔치가 열리는데 대개 일주일 잔치하는데 우리는 영원히 영원히 잔치합니다. 잔치는 먹는 것만 아니라 별별 행사들이 많이 있는데 천국의 잔치 축제 행사들은 영원하기에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합니다.
신랑의 관심은 목숨까지 내어준 사랑이니 오직 우리밖에 없고 우리 만날 것만 고대하듯이 신부도 오직 이 소망의 확신 속에 삽니다.
3. 기도는 도피성인데 기도로 주님께 피하면 주님은 반드시 지켜주십니다. 저는 한 사냥꾼의 내용을 듣고 감명을 받았는데 한 사냥꾼이 사냥을 하기 위해서 긴 총을 들고 산길을 걸어갑니다. 걸어가다가 해가 지니 집으로 가야겠다 마음먹고 가는데 갑자기 옆 숲속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순간적으로 총을 겨눕니다. 보니까 얼룩얼룩한 조그만 것이 사냥군 앞으로 뛰어왔습니다. 예상외의 너무 빨리 일어난 일이기에 무슨 일인지 몰랐는데 밤색의 조그만 산토끼가 자기 두 발 사이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을 보면 오히려 도망가야 할 토끼인데 야생토기들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기 힘들고 구경하기 힘든데 한 마리의 야생토끼가 자기 발 앞에 있는 것이 신기한 경우였습니다. 어찌된 이유인가 했는데 이십미터 떨어진 곳에서 쪽제비가 숲에서 나오는데 자기가 쫓던 토기가 사냥꾼 발 앞에 있으니 더 이상 올수가 없어 쪽제비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숨만 헐떡였습니다. 토끼가 죽기 전의 상황까지 왔는데 사냥군을 보고 사냥꾼에게 뛰어 들었는데 사냥꾼이 피난처가 된 것입니다. 사냥꾼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이빨을 드리대는 쪽제비를 피해 보호를 받기위해서 사냥꾼에게 온 것입니다.
미물 짐승이지만 자기를 의탁하고 자기에게 뛰어든 이 불쌍한 토끼를 실망시키지 않아야겠기에 총을 들어 쪽제비 앞에 총을 쏘니 쪽제비가 놀래 다리야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갔습니다. 잠시 동안 토기는 꼼짝도 않고 사냥꾼의 다리에 달라 붙어 가만히 있었는데 모처럼 얻은 안식이었습니다.
‘토끼야 그놈이 어디 갔느냐,, 당분간은 너를 쫓지 못할거야, 당분간 편히 살 수 있을꺼야’ 하니 토기가 그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반대편 숲으로 껑충껑충 뛰어갔습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마귀가 오고 극한 환난이 몰아닥치고 있는 이 환난 때 나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어둠이, 환난이, 재앙이, 심판이, 우리에게 지금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때 주님 발 앞에 엎드리라는 것이고 주님 품에 뛰어 오라는 것입니다.
병아리 같으면 암탉의 품에 오라는 것인데 거기가 안전지대입니다. 사냥꾼이 약속한 것도 아닌데 자기를 믿고 다리사이에 숨은 토끼를 내칠 수가 없었는데 하물며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고 희생하신 좋으신 아버지이시겠습니까!
그토록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깨어나라고 하셔도 깨어나지도 않는 그들도 여전히 주님의 자녀이기에 마지막이라도 구원해 주시고 천국에 들여보내 주시려고 환난에서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생명의 구주가 되어주시려고 주님 앞에 나오라고 하십니다. 마귀보다 주님이 더 강하시니 주님이 보호하시면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마지막이라도 긍휼을 베풀어 주시려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시91:14-15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신앙생활을 처음에는 열심을 내다가 끝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도 사랑도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날 영광에 이를 때까지 이 소망을 사랑을 육체를 환경을 지켜주시옵소서!
열심히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기도를 권하는데 기도는 도피성입니다. 진정한 우리의 피난처는 주님이신데 온 세상에 악인이 많고 어둠의 영이 난무하고 특히 전쟁과 난리인 이 마지막 때는 더욱 주님께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못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기도하고 회개하면 주님은 버리지 않으시기에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시고 두드리고 계시니 지금 회개하고 지금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와버리면 늦으니 이 모든 환난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눅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아멘
그래서 구원을 받아야 하고 천국은 가야 하니 기도를 해야 하는데 자기 영혼을 내버려두는 것은 영적자살입니다. 주님의 피값으로 만들어주신 영혼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피값으로 사셨으니 함부로 방치하며 안됩니다. 주님의 신부이니 말씀 읽고 기도하고 그래서 주님의 은총을 입도록 돌보셔야 합니다.
4. 주님 발 앞에 엎드리는 그 장소가 생명의 장소이고 피난처이고 긍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주님의 품입니다. 약속도 받고 주님과 친밀한 교제도 나누는 나의 안전지대는 주님이십니다. 주님 외에는 다른 피난처가 없습니다.
영적인 문제이고 내영혼의 문제이고 영원히 사느냐 죽느냐이니 피곤한줄 알고 바쁜줄 알지만 주님 앞에 엎드리라는 것입니다. 살아야 하니 살 길은 이길 밖에 없으니 마지막 주시는 기회이니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을 의지한 자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실망이 아니라 환난 때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두드리시는데 두드리시는 것도 다 때가 있으니 지금 두드리시고 권고하실 때 주님 앞에 엎드리세요. 그러면 할 말이 생각이 나고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 장소가 생명의 장소이고 피난처이고 긍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주님의 품이고 어떤 분에게는 오늘이라도 데려가시면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시62;1-2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아멘
피의 사랑을 받고도 천국에도 못 오는 비극을 맞이하지 마시고 꼭 주님 앞에 엎드려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고 이 땅의 모든 기회가 그런 기회로 주어졌음을 알고 하루하루가 이런 하루가 되고 능력위에 더 능력을 받고 영광스런 주의 자녀다운 능력과 성품과 사랑과 충성을 쌓아가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예수님의 신부답게 살아가는 승리자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주님을기다리는신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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