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인즉,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함으로 인해 죽을때까지 죄를 짓고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가 알게도 짓지만 모르게도 짓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교다닐때 철학교수님의 말이 생각나내요. 물론 그분은 크리스찬은 아니였읍니다. 무법 서부시대 약탈과 살인이 자행되던 시대에 과연 많은 범죄자들이 그들이 한짓이 죄라는것을 알고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답은 그중 어떤 일부는 죄라고 생각지 못하고 했을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그가 행한것이 죄라는것을 배우지 못했으며 그가 자라면서 배운것은 살기위해 약탈과 살인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죄와 의로움은 하나님이 만드신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죄와 의로움이 세워질수 있겠지요.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의 기준이겠습니까?
우리는 삶가운데, 늘 선택을 해야되는 순간에 부딪이곤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도덕한 일같지만 의로운 일이될수 있으며 의로운일이지만 부도덕한 일이 될수도 있다고 봅니다.
마치 예를 들자면, 몸파는 여자를 볼때 우리는 멸시를 하거나 혹은 사회를 어지럽히는 부정한 여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그녀가 자신만의 쾌락을 위해서 사회질서 따위는 아랑곳안고 이기적인 정욕을 위해 즉, 자기만족만을 위해 행했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죄가 되리라 봅니다.
하지만, 그녀가 자녀를 양육하기위한 그리고 살아남기위한 수단으로 행한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녀를 놓고 눈물을 흘리실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러한, 여자를 정죄하거나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분노 하실수 있으리라 봅니다.
돈을 꾸고 안갚는 사람이 나쁜것이겠읍니까? 돈을 빌려준후 값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돈을 달라고 독촉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겠읍니까? 돈은 누구나 있을때도있고 없을때도 있읍니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에…위기에 처한 탈옥범을 숨겨준 사람이 의인이겠읍니까?
준법정신에 입각해 위기에 처한 탈옥범을 신고한 사람이 의인이겠습니까? 누구나 사람은 위기에 처할때가 있읍니다. 중요한점은 우리가 삶가운데 선택을 할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선택을 하셨을까 생각을 해보고 선택을 하여야 되리라 봅니다.
단순히 거짓말을 하고 않하고를 따지기 보다는 깊게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기도하는 입술보다 돕는 손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지요.
얼마전 우리 성경공부반에 젊은 부부가 간난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양부모가 찾아질때까지 잠시 데리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Story 인즉, 아기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 갔고 아기 엄마는 아기를 포기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모두다 아기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지만, 입양을 원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읍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희망하는것이 무엇일까요. 회개는 무척 필요한것입니다. 의인인 욥도 매일 회개를 위해 번제단을 쌓았던 것처럼 우리의 불완전과 무지로인해 죄를 짓고 청결을 위해 회개를 하는일이죽을때까지 되풀이 돼곘지만 또한, 이러하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이 필요한것이곘지만, 행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매사에 결정을 할때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할때 우리는 하나님께로 부터 의인으로서 칭찬받을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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