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를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 23:37,38)
예수님은 이 땅에 거하실 때에 메시아를 배척하므로 하느님의 징계를 받아 멸망 받게 될 예루살렘 성과 유대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예루살렘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르면서 예루살렘에 대한 애탄을 폭발하셨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해 가까이 오셨을 때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시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19:41~44).
본문에 있는 ‘우시며’라는 말은 헬라여로 ‘에크라우센’(εκρυσεν)인바, 소리를 내어 통곡하는 것으로서, 요 11:35의 나사로의 무덤에서 예수님의 눈물을 흘리신 것, ‘에다크뤼센’(εδακρυσεν, 눈물을 흘림)보다 강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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