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어 : 명사 – 아포칼립시스 άποκάλυψις, 동사 –
아포칼립토άποκαλύπτω
히브리어 : 니글라, 갈라
라틴어 : revelatio
구약에서는
신약에서 사용된 계시(아포칼립시스)와 같이명사로 사용된 곳이
없으며 동사(니글라,Niph)가 ‘나타났는데(was revealed)’로 표현되어있고 갈라가 ‘계시하다, 알게하다, 벌거벗다, 열다, 밝히다’ 등의
뜻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구약성경 전체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라는 하나님의 계시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죄를
짓고 타락한 후에 스스로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을 알려주시기 전에는 알 길이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초월자로서 자신을 계시하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열심히 알리시고 계신다. 구약과 관련된 하나님의 지식은 경험적인
지식, 곧 단순한 사실만을 알리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천사, 사람, 선지자, 말씀, 생물, 자연, 꿈, 환상 등에 의해 관계적으로 교훈된 경험과 지식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역사 가운데 직접 참여하심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말안에 많은
의미와 계시가 들어있다. 출애굽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될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시와 교훈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현재와 미래에서 기대되고 또 우리의 영적 훈련을 위한 생명의
말씀(성경)이 된다.
신약에서
특별히 요한계시록은 계시문학의 형태로 기록되었다. 성경 전체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계시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계시란 하나님께서 창조, 역사, 말씀, 인간의 양심 등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계시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의 모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되어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최고의 행위이다. 이런 맥락에서 구약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하나님의 계시이며,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와 다시오실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계시라 할 수 있다.
계시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하여 원어의 어근을 중심으로 연구해 보자. 칼립토(καλύπτω) 는
‘파묻다, 숨기다, 덮다’는 뜻으로 아포칼립토(ὰποκακα λὺττω) ‘벗기다, 드러내다’의 어근이다 (출14:28, 27:2, 24:15 -16,
마8:24, 눅23:30 등). 칼륌마(κὰλυμμα)는 ‘베일, 두건, 덮개’ 등을 의미한다. 모세는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웠다(출34:33). 고린도후서 3:7 이하에서 바울은 모세의 이야기를
가지고 구약의 계시와 복음을 비교한다. 만일 일시적인 광채가 영광스럽다면, 복음의 영원한 광채는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는가?
여기에서 ‘베일’은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약을 읽을 때, 그들의 마음에 드리워져 있는 ‘베일’을 상징한다. 아나칼립토(ὰνακαλὺπτω)는 ‘열다,
벗기다, 제거하다’ 를 의미하고, 카타칼립토(κατακαλὺπτω)는 ‘자신을 덮다, 가리다’, 예배시간에
‘너울을 쓰다’를 의미한다.
1. 구약에서의 계시
구약에서
계시로 사용되고 있는 계시의 도구들도 신약과 동일하다. 표적(창24:12). 선견자들 (삼상9:6),
꿈(창28:12), 신탁(삼상14:37), 제사장의 지시(신17:9, 12), 황홀경, 예언 등과 같은 계시의 수단들이 사용되었다. 금식은 그러한 계시를 받기 위한 예비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단9:3). 구약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는 계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수3:10, 사37:4, 신5:23). 하나님은 숨어 계시며 자신이 원할 때에만 자신을 계시하신다 (사45:15).
2.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1)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으로서
그 자신을 계시하신다. 출애굽 사건에서 하나님은 그 자신을
위해 이스라엘을 분리시키셨다(출19:4). 출애굽 사건이
역사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잘 계시하고 있다. 역사는 하나님의 작품이다(사7:1). 하나님은 앗수르와 바로 그리고 고레스같은 나라와 사람을
사용하여 구속사를 이끌어 가신다.
2) 하나님은 그 자신을 은혜롭고
거룩한 분으로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윤리적인 의미에서 거룩하시다(십계명). 하나님은 순종을 요구하신다. 순종없는 제사는 가증스러운 것이다(삼하12:7; 왕상17:1; 암2:6; 사1:…). 하나님은
그의 거룩하심 속에서 그의 영광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출20:5).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를 보여주시고 용서를 베푸신다(출34:6-7).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축복을 가져다주신다(사40:1; 53장, 61:1-). 여기에서 창조자와 주님(주인)으로서의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이 나타난다.
3)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동일한 말씀으로 유지하고 지배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직접 말씀해 주시거나 천사나 선지자를 통하여 또는 기록된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신실함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께 대하여 간음죄가 된다.
3. 계시에 대한 유대교의
태도
1) 일반적인 관점 – 유대교는 더 이상 직접적인 계시를 기대하지 않는다. 유대교에서의 초점은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들에서 나타난 과거의 계시에 근거한다. 구전은 단지 설명을
의미할 뿐이다.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앞으로도 알려지고 또 알려질 것이다.
2) 묵시 – 묵시는 계시를 대치한다(묵시라는
용어는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나온다). 이 용어는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현저히
팔레스타인적인 것이다. 묵시의 장르는 위경에 있으며 하나님의 추월성이 강조된다. 새 시대는 이미 존재한다. 악이 절정에 달할 때 새 시대는 능력
있게 나타날 것이다. 선견자(선지자)들은 싸우고 있는 하나님의 종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이러한 환상을 계시해 준다.
이러한 주제들의 진지성, 세계사에 대한 개념, 그리고
계시에 대한 역동적인 이해로 인해 묵시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3) 자연계시 – 헬리니즘 유대교는
한편으로는 변증적인 이유로 인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논쟁적인 이유로 인해 보다 더 내재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필로와 지혜서는 세사의 아름다움과 목적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 따라서 우상 숭배는 비록 용서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동정받을만한 것이다.
헬라 철학에서처럼 필로에게서도 아래로부터 위로의 운동이 나타나고 있으며, 따라서 피로는
범신론의 위협을 방지하기가 어렵다. 바로 여기에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계시된 율법과 자연법을 동일시하는 견해가 나타난다.
4. 신약에서의 계시
신약은 구약의
계시를 이어받고 있으며 이를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신약은 묵시에 대한 종말론적 영향을 제외하고는
유대교를 무시한다. 계시에 대한 신약의 견해의 특징적인 역동성은 역사와 종말론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1) 공관복음서에서의
계시 – 세례(침례) 요한의 증거(마3:2)와 예수님의 최초의 메시지 (막1:15) 는
하나님이 도래하고 있으며, 그의 왕국을 나타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계시적인 하나님의 행위에 대비해야만 한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안에서 종말론적 실재로서 현존한다. 예수님께서는
계시를 부여해주고(마11:27), 그것을 구현시키며 결국
그 자신을 나타낸 것처럼(눅17:30)
계시를 드러낼
것이다(막8:38). 신자들은 성부 하나님에 의해 이미 있는
그대로의 그를 볼 수 있다(마16:17). 베드로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하늘에 계신 그의(예수님의) 아버지의 계시에
의한 것이다[Then Jesus said: ‘Simon son of Jonah, you are favoured
indeed! You did not learn that from motal man; ot was revealed to you by my
heavenly Father. Mt16:17, NEB ].
예수 안에
현존하는 계시를 알리는 것, 그 자체가 계시의 행위이다. 여기서의
장애물은 인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지식이다(마11:25). 예수님의
계시의 목적은 언약의 하나님께서 계시를 영화롭게하고 성취하도록 하는 것이다(막7:8; 마태5:17). 이러한 계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마8:11). 그러나 계시는 모든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기 희생이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죄인들로 하여금 순종하는 믿음과 신앙고백을 통해 그러한 계시에 응답하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다.
2) 초대 그리스도교에서의
계시 이해 – 여기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보다 강력한 경향을 발견한다. 이미 오신 메시야는 다시 오실 것이다. 메시야는 하늘에 계시다가
어느 날 다시 나타나실 것이다(행3:21). 메시야의 지상에서의
말씀들과 행위들은 구약의 약속들을 성취시켰다. 그러나 메시야의 목적은 그가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에야
비로서 이루어질 것이다(행10:36). 성령을 주신 것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짓는 현재의 고리이다.
3) 신약의 서신들에서의
계시 – 서신들에서
계시는 일차적으로 예수 안에서 성취되고 취후의 날에 완성될 하나님의 역사적 도래를 가리킨다. 구약은
계시의 거룩한 말씀이다. 그러나 구약은 계시 그 자체로 불리우지는 않으며, 신약에서의 성취를 돕는 것으로 나온다(롬4:23-24). 진정한 주제는 종말론이다. 즉 그리스도(고전1:7), 하나님의 심판(롬2;5) 또는
진노(롬1:18), 적그리스도(살후2:3), 하나님의 의(롬1:16), 그의 자녀들(롬8:19),
그들의 영광(롬8:18)과 구원(벧전1:5) 등의 나타남이다.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 구원의 수단으로서 믿음이 계시된다(갈3:23). 선포와
받아들임은 메시지일 뿐만 아니라 계시이다(살전2:13).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인류의 모든 죄를 아들에게 전가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받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와
부활을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다.
5. 요한문헌에서의 계시
1) 요한복음서와 서신들 -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보혜사 성령을 통해 감동과 감화의 계시로 깨달아 알게 하신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 안에 와서 내주하시는 임마누엘 성령님(요14장)은 그리스도인들안에 영원히 내주하실 것이다(요14:16…will be with
you forever).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주(현재)와
내재(미래) -(요14:15-26)를
체험하는 믿음은 성화 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게 돕는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에 의한 것이다.
요한은 로고스(λογος)란 용어를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켜 모든 피조물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계시와 연결시킨다. 이 로고스는 우주적이면서도 또한 개인적이다. 우주는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그리스도는 그의 신자 안에 내주하신다. 성육신이
된 로고스 안에서는 메시야적인 것이든, 신비적인 것이든 관련된 모든 것들(빛, 생명, 기쁨, 하나님과의 영적인 결합)이 만난다.
하지만 이것은 혼합주의나 자연 계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절대적이며 역사적인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계시의 최고의 징표는 사랑이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구원사는 선재하신 그리스도에게 연결된다(요8:58). 예수의
지상 사역은 일차적으로 현현의 시각에서 본다(요1:14; 요일1:1). 예수를 통해 되와 사망의 세계에 하나님의 실재가 빛을 발한다(요3:14). 불신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지만 믿는 자들은 모든 은헤와 진리가 충만한 그(예수 그리스도)를 본다(요1:14).
2) 요한계시록 – 이 책은 계시(아포칼립시스àποκὰλὺψς)라고 불리운다. 이 책에서는 복음서에서와 마찬가지로
로고스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 책의 관심의 초점은 하늘의 세계가 드러날 미래에 주어지고 있다. 이 책은 절대화된 국가 권력과 충돌하고 있던 교회에게 힘을 복돋우어 주기 위해 씌어진 것이다. 이 잔인한 국가와 고난받고 있는 교회 위에는 영원한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궁극적인 정복의 세계이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왕국이다.
6. 계시의 한계와 확증
구약의 언약을
성취한 신약은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곳에서 자신을 계시로 증거하셨지만 (행14:16-17). 이스라엘이 구원을 가져다주는 계시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인정한다(요4:22). 하지만 이러한 계시는 이제 모든 인류에게 보다 완전히
전달된다(막13:10; 행1:8
등). 동시에 신약은 거짓 계시에 대항하여 참된 계시를 확증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표적들은 계시를 보여준다(마11:5-6;
요5:36; 고전2:4). 그러나 마귀의 기적들도
존재한다(막13:22-23; 살후2:9- 10). 천사 조차도 진정한 계시의 보증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갈1:8; 고후11:14).
참된 계시를
판단하는 보다 나은 시금석은 열매이다(마7:15). 성령은
분별의 은사를 주신다 (고전12:10).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참된 계시의 가장 분명한 기준이다(고전12:3) 그러나
신앙고백에는 사랑이 수반되어야 한다(고전13:1).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요일4:1)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는 그리스도에게 충성함으로써
그 진실성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역시 사랑의 뒷받침을 받아야만 한다(요일4:8; 요13:35). 사랑은
신앙고백이 형식적으로 되지 않도록 하며, 신앙고백은 사랑이 도덕주의로 빠지지 않게 한다.
7. 신학적인 요약
신약에서
계시는 감추어졌던 사실들을 드러내주는 것과 초월적인 하나님의 현현을 가리킨다. 계시는 죄가운데 빠져있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돌이킴이다. 계시는 구약에서 준비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서 실현되었고
재림시에 이루어질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계시는
이러한 내용을 전달해 주는 메시지, 즉 계시의 효과적인 전달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러한 전달에 의해 계시는 개인들을 위한 계시가 된다. 요약해서
말하면 계시란 그리스도안에서의 교제를 위해 성부 하나님이 그 자신을 희생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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