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1:22-25 …요셉 족속이 벧엘을 정탐케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에 임하기 전에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하여
수시로 정탐꾼을 보내었습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에도, 요셉
족속이 벧엘을 점령할 때에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적을
알기에 주력함으로써 큰 이득을 보았습니다.
1. 영적 전쟁에서도 정보는 중요합니다
1) 요셉 족속이 벧엘에 정탐꾼을 보냄
원시적 형태의 전쟁에서든 현대전에서든 간에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적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야 합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 족속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기 전에 벧엘을 정탐케 함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전쟁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에서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소위 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할 정도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하여 사람들은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정작 우리의 대적자인 사단의 정체에 관하여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한 얼마나 알려고 애쓰는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우리도 사단의 정체를 잘 알 필요가 있음
일각에서는 소위 사단론이니 마귀론이니, 귀신론이니 하는 것들에 대하여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에 너무 치우치면 신앙이 편협하기 쉽고 신비주의에 빠지기도 쉽습니다. 김 기동
목사가 그러한 예에 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속담처럼, 그러한 폐단들 때문에 우리의
원수인 사단과 귀신들의 정체와 그 활동 속성에 대하여 알기를 두려워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건전한 방향으로 마귀론을 집대성해서
성도들에게 보급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단의
정체를 보다 더 잘 알기 위한 방도로써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읽으면서 악한 영들에 대한 연구를 한다면, 결코
치우치거나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2. 한 사람의 영향은 지대합니다
1) 벧엘의 한 사람 때문에 가족 전체가 구원받음
본문에 등장하는 벧엘 사람은, 여리고 정탐시 기생 라합과는 달리 정탐꾼들의 은근한 위협으로 말미암아 마지못해 이스라엘에게 협조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비록 타의에 의해서일망정 그가 하나님의
신성한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은 그 이면에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신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행동 여하에 따라 전 가족의 구원과 멸망이 좌우되었다는 데서 우리는 '구원의 대표 원리'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 것입니다. 물론
구원은 최종적으로 개개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기 마련이며, 어떤 사람이 타인의 구원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그 주변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쳐 구원에로 인도하는 경우
또한 허다한 것입니다.
2) 우리도 영향을 주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함
벧엘 사람의 역할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한 가지 물음을 제기하게 됩니다. 과연, 우리 자신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그 영향은 좋은 영향이어야 하겠지요. 이러한
질문은 매우 단순하기도 하지만, 매우 심각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받고, 구원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 땅 인구의 1/4 정도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데, 왜 더 많은 탈선과 비리가
횡행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제 구실을 다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성도가 주위의 3명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분명 죽은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과 행위가 일치함으로, 더욱 분명한 복음의 전달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1) 요셉 족속이 신실하게 약속을 지킴
라합의 경우에서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켰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도움을 준 벧엘 사람과 그 가족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신실성은 하나님의 성품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신실하신 분이므로, 그 백성도 신실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함부로 맹세하거나 또는 함부로 약속을 어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백성의 신실성 여부는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미지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한 약속이나 말들에는 반드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말은 신중해야 함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말씀만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능력으로 이 세상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지의 보편적 진리와 법칙의 주체는 바로, 하나님의
살아 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매우 신실하신 분이시며, 약속하신 바를 철저히 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속성은 너무나 거룩하고 흠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말씀 가운데 사는 우리들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신실함의 본을 보임으로써
주님의 보증 수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믿는
자들 가운데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신뢰를 쉽게 저버리고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도 혹 그런 경우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원수 마귀의 속성과 궤계를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매사에 신실함을 보임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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