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4/2009

방언의 은사 (1)

방언의 은사(게네 글로손)

1. 정의
관련 성구: 고전 12:10, 28; 14:13-19; 2:1-13; 19:1-7; 10:44-4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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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사는 성령이 말하게 함을 따라 즉흥적으로 말하는 것인데, 비록 통상적인 목소리를 사용하지만 의식적인 생각이나 마음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말해진 언어나 노래는 전혀 배우지 않은 것들이다(David Pyt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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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몽인 교회의 특정한 사람에게 주은 은사로서, 배우지 않은 생소한 언어로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것이며, 배우지 않은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말한다(C. Peter Wa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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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의 은사는 성령이 어떤 사람이 전혀 모르는 언어로 즉흥적으로 말하게 능력이다(Bobby Clinton).

2. 말썽 많은 방언
방언처럼 많은 말썽을 부린 은사도 드물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회 내에서의 무질서한 방언 사용으로 말썽을 빚었다. 오죽 했으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 사용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자세히 기록했을까? 사도 바울은 공중예배에서 통역 없이는 방언을 하지 말 것이며 통역이 있을 때라도 적당히 질서를 유지하라고 말했다.

방언은 또한 중세기에는 최대의 수난을 당했다. 이때에는 "방언을 하는 자체가 귀신이 들린 증거"가 되어서 방언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녀 사냥의 희생물이 되었다.

종교개혁, 웨슬레의 부흥운동, 미국의 제 1, 2차 대각성 운동 및 무디의 경건 운동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외적인 능력을 받는 성령 체험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언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모르몬교와 같은 사교집단에서만 방언 현상이 나타났을 뿐이다.

따라서 20세기의 초기에 미국의 찰스 파함 목사로부터 시작하여 흑인 목사 윌리암 세이무어가 불을 붙인 로스 엔젤레스의 방언 운동이 경계와 배척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했다.

더군다나 이들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 세례의 유력한 외적인 표적은 방언"이라고 주장했고, 정도가 심한 경우는 성령 세례를 받고 방언을 받아야 구원을 받은 것처럼 주장하고, 방언을 하는 사람은 일등 신자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등신자라는 인상을 가지게 하여 세속의 매스컴과 기존 교회들은 그들에게 사정 없이 공격의 화살을 쏘아대었다.

당시 주류 교단과 매스컴은 이들을 혹독하게 매도했다. 이들은 오순절파를 소돔의 영적지도자들, 방언을 사탄의 마지막 토해낸 배설물, 오순절식 예배를 사탄숭배라고 공격했다.

이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직도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학력이나 생활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방언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 같다.

A
자매는 전통적인 장로교에서 배운 대로 방언은 수준 낮은 사람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A 자매가 어느 은사적인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교인들의 대부분이 방언은 물론 여러 다른 신령한 은사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A 자매 보다 교육 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유복했고 신앙도 성숙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실을 목격한 A 자매는 마음문이 열려서 "그렇다면 나도 . . ."하면서 방언을 사모하여 쉽게 받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여태까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여러 가지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물론 방언은 구원의 신분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아마 초기에 성령 체험을 한 사람들은 그 체험이 너무나 새롭고 강렬하기 때문에 이전에는 마치 구원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성령의 역동성을 실제로 체험하고 나니 "이전의 신앙생활은 인간적이고 무의미한 것이었다"는 고백이 나올 정도로 새로운 실상을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방언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등 신자는 더욱 아니다. 방언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는 오늘날에도 이런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부정적으로 보는듯하다.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방언 운동으로 대표되는 20세기의 성령 운동은 유럽, 인도, 러시아로 확장되어 갔고 남미에서 가장 많은 결실을 거두어서 오늘날 남미 개신교 신자의 거의 80%가 오순절 계통이다.

비난과 경멸과 박해의 대상이 되어 왔던 성령 운동방언 운동은 거부, 핍박 및 관용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수용 및 적용의 상태에까지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세월이 지나, 성령 세례의 초기의 실질적이고 유력한 증거는 방언이라고 주장하던 고전적인 오순절주의자들도 이 주장을 어느 정도 수정하기에 이르렀고, 1960년대에 주류 교단에 퍼지기 시작한 은사운동은 방언을 성령 세례의 "여러 가지 표적 중의 한 가지 표적"으로만 인정하였고 이후 지속된 여러 성령 운동도 그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이것도 보면 따지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생소한 영적인 현상이나 가르침이 일어나면 초기에는 이런 저런 신학으로 부정하다가 주변에서 워낙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주장하거나 체험하고, 또 실제로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인정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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