챨스 피니는 변호사 출신 부흥사였다. 그가 하나님과 가진 체험은 인생 전부를 바꾸었고, 그를 통해 한 국가에 위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피니의 말을 통해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녁이 도자 우리는 책과 가구를 정돈했다. 저녁 나절을 호젓이 지내기를 바라면서 벽난로에 멋지게 불을 지폈다. 막 어둠이 깔릴 때, 스콰이어씨가 다 잘 정돈된 것을 보고 작별 인사를 한 후 돌아갔다. 나는 문까지 그를 배웅했다.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내 안에서 심장이 액체가 되어 흘러내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온갖 감정이 북받쳤가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마음은 “내 온 영혼을 하나님께 쏟아 붓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내 영혼의 치솟음이 너무도 커서 기도하려고 앞 사무실의 뒤쪽에 있는 방으로 달려들어갔다.
그 방에는 벽난로 불도 없었고 불빛도 없었지만, 내게는 그 방이 완벽하게 환해 보였다. 들어가서 문을 닫자, 마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 같았다. 그 상황이 전적으로 심리적 상태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와 반대로 보통 사람을 보듯 주님을 본 것 같았다. 주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는데, 마치 그분의 발치 아래로 나를 무너져 내리게 할 것만 같은 눈으로 바라 보셨다. 그 일 이후로 나는 그 순간을 가장 경이로운 마음 상태로 여기고 있다. 그분이 내 앞에 서 계신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분의 발 아래 엎드려 내 영혼을 쏟아 부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었고, 목이 메이는 것처럼 그런 고백을 했다.
꽤 오랫동안 이런 상태로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내 마음이 주님과의 이 대면에 푹 빠져 있었기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은, 마음이 진정되자마자 내가 앞 사무실로 돌아갔다는 것과 큰 장작 토막에 피워놓은 불이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서서 불 옆의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강력한 성령 세계를 받았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고, 내 마음 속에 그러한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조차도 해보지 않았고, 세상에서 어느 누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때 성령께서, 그러니까 내 몸과 혼을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내 위에 임하셨다. 강한 감동이 전파처럼 나를 반복해서 통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액체로 된 사랑의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마치 하나님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엄청나게 큰 날개로 바람을 부쳐주는 것 같이 느꼈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떤 단어로도 내 마음 속에 부어진 그 놀라운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다. 나는 기쁨과 사랑에 겨워 목놓아 울었다. 모르긴 하지만, 문자 그대로 내 속 마음을 전부 토해냈다고 말해야겠다. 이 파도가 내 위고, 내 위로, 내 위로, 계속해서 타고 올라오더니 마침내 내가 이렇게 소리지른 기억이 난다. “이 파도가 계속해서 덮치면 나는 죽을 거예요. 주님,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얼마나 오래 동안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성가대원 중 한 명이 나를 만나서 왔을 때는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그 성가대원은 교회 성도였다. 그는 큰 소리로 우는 내 모습을 보고, “피니 선생님, 어디 아프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한 동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통증이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가능한 한 몸을 추스르며 “아닙니다. 사실은 너무 행복해서 살 수가 없을 지경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사무실을 나가더니 몇 분 후에 내 사무실의 거의 맞은 편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 교회 장로 중 한 분을 모시고 돌아왔다. 이 장로는 아주 진지한 사람이었고, 내 앞에서는 몹시 조심하는 사람이었으며, 나는 그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가 나에게 괜찮은지 묻자 나는 자초지종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말은 안하고 갑자기 거의 발작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추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이웃에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나는 그와 절친했다. 우리 목사님은 종교에 대해 그 청년과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그를 잘못 인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그에게 내가 종교에 대해 아주 경솔한 젊은이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그 청년이 나와 너무 가깝게 지내게 되면 마음이 분산될 거이고 그렇게 되면 그가 회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회심하고 이 청년도 회심한 이후에, 그 청년이 내게 말하기를, 게일 목사와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눌 때 나와 너무 자주 교제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지만, 그는 나와 나누는 대화가 그분의 설교보다 종교적으로 자신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나는 사실 이 청년에게 내 마음에 느꼈던 것을 상당히 많이 드러냈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즉 내가 교회 장로와 또 그분과 함께 있었던 교회의 다른 성도에게 내 마음에 느꼈던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마침 그 청년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기에, 그 청년이 들어온 것을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그 청년은 엄청난 충격 속에서 내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있었는데, 몸이 반쯤 바닥에 쓰러진 채 가장 비통한 마음으로 울부짖을 때에야 그 청년이 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라고 외쳤다. 교회 장로와 다른 성도가 함께 무릎을 끓고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기도했다. 직후에 이들은 모두 돌아갔고 나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 “그 장로가 왜 그렇게 웃었지? 내가 망상에 시달리거나 미쳤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다소 어두워졌다. 그리고 나는 이토록 큰 죄인인 내가 그 청년을 위해 기도한 것이 적절한 일이었는지 궁금해졌다. 구름이 내 위를 덮지는 것 같았다. 그때 내 마음이 번뇌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나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유혹은 내 견해를 너무도 흐려놓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곧 잠들었으나,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엄청나게 흐르고 있어서 곧바로 깨어났다. 사랑으로 너무 충만해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시 잠들었다가 같은 식으로 또 깨어났다. 깨어나면 그 시험이 다시 찾아왔고, 네 마음 속에 있다고 여겼던 그 사랑이 줄어든 것 같았지만, 잠이 들면 곧 내 안에 있는 그 사랑이 너무 따뜻해서 곧장 일어나곤 했다. 그래서 밤늦게 깊은 잠을 이룰 때까지 계속 이런 식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해가 떠올라 있어서 밝은 빛이 내 방에 쏟아져 들어왔다. 이 태양빛이 내게 미친 형언할 수 없다. 곧, 전날 밤 내가 받았던 세례가 동일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기쁨에 겨워 크게 울었다. 그리고 성령 세례에 너무 압도되어서 내 혼을 하나님께 쏟아 붓는 일 밖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한 동안 그대로 있었다. 오늘 아침의 세례는 부드러운 책망을 함께 주시는 것 같았다. 성령이 마치 내게 “의심하느냐?”라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외쳤다. “아니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내 마음 속에 그 문제를 너무도 명확히 해주셔서 이제 하나님의 영이 나의 혼을 소유하셨음을 의심하기란 불가능했다.
이런 상태에서 나는 믿음에 의한 칭의에 대한 교리를 현재적 경험으로 배우게 되었다. 그 교리는 내 마음에서 그러한 경험을 전혀 빼앗지 못했으며 나는 그 후 그 교리를 복음의 근본적인 교리로 확실하게 간주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그 교리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제 나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믿게 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모든 정죄감이 완전히 내 마음에서 떠났으며, 그 순간부터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죄의식이나 정죄감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죄의식이 사라졌고, 내 죄가 사라졌다. 마치 내가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는 듯이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피니는 설교 부흥사이자 개혁가로 알려져 있지만, 한 마디 말도 업이 그의 인생에 임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피니의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킨 경우들도 있었다. “지금 뉴욕 밀즈라고 불리는 장소인 화이크보로의 약간 위쪽에 위치한 오리스캐니 계곡에 면 제조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의 소유주는 W. 씨였는데, 그는 회심하지는 않았지만, 지위가 높고 도덕적으로 고결한 신사였다. 내 매형인 G. A 가 그 공장의 감독관이었다. 어느날 그곳에 초청을 받고 올라가서 그 마을의 학교 숙소에서 설교했는데 그 큰 공간이 청중으로 꽉 메워졌다. 내가 그날 전한 말씀이 그 공장의 직공들 사이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 후에 공장 안을 들러보려고 들러갔다. 각자 맡은 베틀과 소형 트랙터와 작업 기구 앞에서 일하는 분주한 사람들 사리에 상당한 동요가 있는 것을 목격했다. 많은 젊은 여성들이 직물을 짜고 있는 한 건물을 지나치다가 한두 명이 나를 눈짓하며 서로 아주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웃고 있긴 했지만, 나는 그들이 내가 오는 것을 보았으며, 아주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끊어진 실을 고치고 있었는데, 손이 떨려서 수선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서 기계들을 보면서 지나갔다. 한편 나는 이 소녀가 점점 더 흥분되어서 더 이상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된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2.5미터에서 3미터쯤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아주 맥을 못 추며 주저앉아 눈물을 터뜨렸다. 그 영향은 거의 먼지처럼 퍼져서 그 방 안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이 감정은 공장 전체로 펴져나갔다. 그 공장의 소유주인 W 씨가 현장에 있었는데 사태를 보더니 감독관에게 말하기를, “공장을 멈추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종교 집회에 참석하라고 하게. 이 공장 기동 보다 우리의 영혼 구원이 더 중요하니 말일세.” 공장 문은 닫혔고, 기둥이 중지되었다. 그런데 어디서 모여야 할까? 감독관은 소형 트랙터 창고가 넓다고 제안하며, 그 소형 트랙터들을 위쪽으로 옮기면 집회를 열 수 있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했고 그때까지 가본 집회 중에서도 아주 보기 드문 가장 강력한 집회를 열었다. 그 부흥은 엄청난 능력과 함께 그 공장 전체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며칠 사이에 공장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희망에 찬 회심을 했다.”
피니는 역사에 놀라운 흔적을 남겼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 이후의 인생이 결코 똑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 이후에 그저 피니와 함께 앉아있기만 했던 그의 상사 역시 그리스도께 순복하게 되었다. 피니는 이후 부흥과 복음전도로 열방에 불을 지피게 되었다. 바로 그 다음날, 피니가 기도 모임에 참석하려고 교회로 들어가는데, 걸어 들어가는 내내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한 피니 역시 저항에 직면했다. 한 집회에서는 어떤 남자가 권총을 들이대고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이내 찔림을 받고 회개하기도 했다. 어떤 목하는 대포로 피니를 막겠다고 위협하면서 마을에서 쫓아내려고 했다. 자신의 교회에서 피니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어떤 목사는 그 이후 즉사했다. 피니가 여행했던 한 도시에서 처음에는 저항에 부딪쳤지만, 그가 설교하기 시작하자 모두가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고 바닥에 엎드려 회개했다. “내가 만약 양 손에 칼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쓰러지는 속도에 맞춰 그들을 벨 수 없을 정도였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밤새도록 이어진 그 집회장 밖으로 실려나가야 했다. 어떤 보시에서는 전체 인구의 10%가 모두 회심하기도 했다.
순회 전도자로서 한 평생을 살았던 피니는 오벌린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피니는 약 50만 명 이상의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했다고 인정받는다. 이 밖에도 그는 노예 제도를 폐지했고 여성이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가 그렇게 했던 때는 그런 견해가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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