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2010

왕 정도는 되어야 “상”(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었다 - 이진희목사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나는 여기 나오는 상을 학교에서 잘 했다고 주는 상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물론 이 상은 그런 상이 아니라 밥상(테이블)이다. 양들의 밥상은 풀밭이다. 푸른 초장이 양들의 밥상이다. 새 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주시고.

광야에 사는 양들에게 있어서 푸른 초장에서 마음껏 꼴을 뜯어 먹는 날은 잔치날이다. 그런데 그런 잔칫날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이리나 늑대. 하이에나가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잔치자리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구경만 하고 있다.

목자가 양들 곁에서 지켜서 있기 때문에, 밖에서 침만 흘리는 것이다. 양들이 맹수들 앞에서 안심하고 꼴을 먹고 있는 장면을, 다윗은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테이블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테이블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것은 예사스런 일이 아니다.

고대 시대에는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신약 성경에 상에서 먹었다, 다시 말해 테이블에서 먹었다는 말이 20여회 나오는데, 원문에 보면 테이블이라는 말이 없이 그냥 먹었다 라고만 되어 있다.

그런데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하면서 테이블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 당시에는 보통 사람들은 상 없이 바닥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부자들이나 높은 신분의 사람들은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었다.

신약 시대에도 테이블에서 먹지 않았는데, 구약 시대는 말할 것도 없지 않는가? 구약에 보면 테이블에 음식을 차려놓고 의자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신분의 사람이다. 누군가 하면 바로 왕이다! 왕의 가족만이 테이블에 음식을 차려놓고 의자에 앉아서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다윗은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런 귀한 자리에 앉히신다고 고백하고 있다즉 하나님은 우리를 아주 특별한 귀빈처럼 대우해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VIP이다. 그래서 그분의 테이블에서 먹게 하신다. 하나님은 원수가 보는 앞에서 당신의 테이블에 앉아서 먹게 하신다. 이보다 더 통쾌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를 괴롭히고 모욕하고 우리에게 몹쓸 짓을 하던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높여주시고 우리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주시고 우리를 VIP로 대하신다.

양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목자
양들이 여름 내내 돌아다니며 꼴을 뜯다가 가을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목자는 “dipping”이라고 해서 해충 제거를 위해 소독약으로 양들을 목욕 시킨다. 양들을 완전히 소독 물에 들어갔다 나오게 한다. 이때는 더러운 양이나 깨끗한 양이나 건강한 양이나 병든 양이나 다 소독 물에 들어갔다 나오게 한다. 그렇게 전신을 소독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더러워진 몸을 깨끗하게 하고 해로운 해충들을 제거하고 상처를 닦아준다.

양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무사히 빠져나와 새로운 초장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양은 그 골짜기를 통과하느라 지쳤다. 여기 저기 상처도 많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양들은 털이 많아서 상처가 났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일일이 털을 헤집어보아야 한다. 사람들도 그렇다. 겉으로 보아서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다. 감추고 있다.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질러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는다. 양들은 결코 자기가 아프다고 목자에게 와서 말하지 않는다. 양은 아파도 목자를 찾아오지 않는다.

양들이 아픈 것을 발견하는 것은 목자의 몫이다. 그러기 때문에 목자는 양들을 부지런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상처 난 곳이 있으면 올리브기름을 발라준다. 우리가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받은 상처가 있다. 인생의 광야를 지나면서 받은 상처가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처도 있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약을 바르면 낫겠지만, 마음에 받은 상처는 세월이 흘러도 잘 아물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도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상처가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평생 동안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받은 상처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지만 그러나 아직도 마음으로는 그 골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두운 골짜기 그늘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성지 여행 중에 베두인의 장막에서 머문 적이 있다. 해가 저물어 양들이 다 우리에 들어갔는데 한 마리만 우두커니 혼자 밖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양은 한쪽 다리를 부러뜨렸는지 나무 조각을 대서 고정시켜 놓았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그 양이 주인의 방에 있는 것이 아닌가? 주인이 그 다친 양을 자기 방에서 재웠던 것이다. 양인데 아프니까 마치 자기 자식처럼 자기 방에 데리고 들어가서 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목자의 마음이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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