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2010

친밀한 기도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라[빌 존슨]

하나님의 음성에 주의를 지중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라.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멋진 말이지만 친밀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야말로 우리 힘과 생명의 참 근원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 하나님은 소박하고 작은 오두막을 하나님이 들어와 거하실 궁전으로 변화시키신다.

집을 부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의 백성을 일컫는,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은유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신자들을 하나님의 집이라 칭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신자들 안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진리는 실로 가슴을 벅차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부서실 필요, 개조될 필요가 있는 집으로 이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셔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본성과 영광을 진실로 나타내는 집으로 만드시는 과정을 감내하겠다고 서명을 하는 것과 같다.

베드로는 이러한 과정을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자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5)하고 표현했고, 바울은 로마서 121,2절에서 이러한 지속적인 변화가 기본적으로 우리 마음(새로워져야 하는)의 차원과 몸(산 제사로 드려져야 하는)의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드로와 바울이 이렇게 말한 까닭은 우리가 마음을 내놓지 않거나 마음을 새롭게 하지 않거나 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우리 삶에서 활동하시는 건축자인 성령과 온전히 연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세기 최고의 기독교 지성인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이러한 건축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당신이 살아 있는 집이라고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 그 집을 재건축하기 위해 돌아오신다. 아마도 처음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배수 시설을 바로잡고 지붕의 새는 곳을 수리하신다. 당신은 이러한 일이 꼭 필요한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혀 놀라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 상식에 어긋나 보이는 방식으로, 집에 손상을 주면서 마구 부수기 시작하신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것일까? 사실인즉슨, 하나님께서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집을 건축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새 문짝을 달고, 저기에 추가로 마루를 깔고, 탑을 높이고, 마당을 만드신다. 당신은, 당신이 작고 소박한 오두막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궁전을 짓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곳에 들어와 거주하기를 원하신다.-

이 예화의 요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해야 하며 하나님이 신자들을 변화시키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연합하지 않으면 여전히 육신의 악취 나는 생각을 할 것인데,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8:7)라고 분명히 말했다.

어쩌면 당신은 육신의 생각이 그렇게 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님의 협력자가 되든지 아니면 우리 마음이 주님과 원수가 되게 하든지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간지대는 없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거부하면 성령의 불을 소멸하게 되며, 주님이 우리 삶에서 건축하고 계신 건물을 파괴하게 된다. 주님은 소박하고 작은 오두막을 주님이 들어와 거하실 궁전으로 바꾸신다.

건축과 방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강하게 하는 것은 심령과 마음과 몸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운명과 인생의 목적에 일직선으로 정렬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게 하면 어려움과 반대에 직면했을 때에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힘을 얻는다. ‘강하게 하다(strengthen ing)라는 영어 단어는 건축과 관련된 용어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신약성경 대부분의 책에서 신자들은 건축을 담당하신다. 일례로 바울은 스스로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집의 영적인 기초를 놓은, 구속(救贖)받은 자들이 거하는 공동체의 터를 닦은 지혜로운 건축자라 칭했다(고전3:10).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신자들이 자신을 건축하기 위해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기술한 두 개의 구절이 있다.

첫째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20)이다. 나는 이 구절의 성령으로 기도하며가 구체적으로 방언기도를 언급하는 것이며, 유다가 믿음 안에서 우리 자신을 건축하는 것과 방언이라는 특별한 행위를 긴밀하게 관련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성경의 다른 구절에 이와 동일한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고전14:4). 여기에 언급한 덕을 세우가(edify)라는 단어는 건축하다(build up)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edify’의 명사형 ‘edifice’건물의 의미를 지닌다. ‘Lance Wallnau Ministries’의 설립자 랜스 월나우(Lance Wallnau)가 가르친 것처럼,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 믿음의 내적인 건물을 건축하며 그 건물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명백히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믿음 안에서 건축하는 것과 방언기도는 무슨관련이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방언기도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전14:2)라고 설명했다.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우리의 영이 성령과 교통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의 음성으로 말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강력한 능력을 발한다. 왜냐하면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완벽하게 순응한 상태에서(거듭났을 때 받은 새로운 본성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이 우리 영혼이 말하는 것에 온통 몰두함으로써 성령께 더욱 완벽하게 순응한다.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지속할 때, 신체적인 순종 행위를 보이면서 찬양할 때에 체험하는 것과 동일한 영적인 돌파를 체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명백한 임재를 의식하는 것이다.  <’능력의 영을 받는 법중에서 - 빌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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