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다보면 믿음은 나도 모르는 새 어느덧 약해져버리기가 쉽다. 조금씩 우리는 ‘실제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며 하나님 나라의 현실대신 이 세상의 지혜에 기대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의 사고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암송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약속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며 이런 약속과 암송한 것들을 다음 세대의 신자들에게 넘겨줄
수 있게 된다. 진리를 기억하며 묵상하려는 실질적인 발걸음을 내딛지 않는 한 우리는 쉽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잊어버린다. 점차 우리는 이 땅의 사고를 하게 되며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를 반드시 피해야 한다.
올바른 묵상
동양의 신비 종교에서 명상이란 생각을 비우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성경적인 묵상은 정반대로 생각을 하나님의 진리로 가득 채우는 것을 말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묵상을
좋아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마귀적인 종교가 이것을 이상하게 사용하는 모습들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이런 일을 염려해보왔다면 당신은 이미 어떻게 묵상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성도건 죄인이건 누구나 매일 묵상한다. 문제는 무엇을 묵상하느냐이다.
만일 재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해보자. 새롭게 된 생각을 자긴
사람은 그런 환경에서조차 기쁨을 끌어낸다. 왜냐하면 기쁨이란 보이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시며 항상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
하지만 걱정이라고 하는 세미한 목소리가 살그머니 기어 들어와 이렇게 속삭인다.
“오래전 네가 주님께 돈 문제로 순종하지 않았지? 이제 네가 심은 것을 거두는 거야.” 상당히 그럴싸한 주장처럼 들리며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대신 걱정을 묵상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얼마 가지 않아 작은 목소리가 너무 커져서 마치 귀에다 확성기를 대고 말하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우리는 어느덧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26:3)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게 된다. 평강에 평강으로란 말은 영어로는 완전한 평강으로써 신적인 건강, 형통함, 웰빙, 건전한 생각을의미한다.
의뢰한다는 말은
‘움직이지 않는 자세로 고정되거나 안착하다’란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고정되지 않는다.’ 왜 걱정은 우리의 관심을 끌어내려고 그렇게 크게 외치는가? 걱정을
오래 지켜보게 되면 걱정은 우리의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방 우리는 두려움으로부터 기도하기 시작하며 결국에 가서는 기도하기를 멈추고 동정을 구하기 시작한다. 다른 목소리를 신뢰하게 되고 마음을 거기에 빼앗기게 된다.
생각을 영적인 것에 고정시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생각을 자연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로 채우는 한 우리는 그만큼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분연히 일어나 믿음의 은사로 승리를 획득하기도 하겠지만 우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이
흘러나와 세상을 변화시키게 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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