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헤롯과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계하셨는데, 이는
이런 것들이 우리 생각을 새롭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던 문맥을
보면 제자들의 가장 큰 실패는 점심을 싸오지 않은 까닭에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점과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들을 위해 두 번씩이나 음식을 많아지게 하셨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사고는 자신에게 없는 것에서부터 출발했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공급을 해주셨다는 계시를 거스르고
있다.
그들은 잘못된 기초에 사고를 세우고 있다. 마가복음 바로 앞장에서
예수님은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15:6). 바로 제자들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 말씀을 계속 신선하게 듣는 대신 전통에 의지할
때 하나님의 능력에서부터 떨어져 나간다.
전통은 보통 어제의 말씀이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는데, 다시 말해 믿음은 과거에 들었던 말씀이 아닌 현재 듣는 말씀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신선한 말씀을 가졌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둔하냐”(막8:17). 그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기적적으로 먹이기 전에는 예수님께서 이런 식으로 말씀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참고해서 생각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체험적으로 알이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체험하도록 하셨고 그럼으로써 그 기적이 그들 삶의 새로운
기준이 되기를 기대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적을 베푸시며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며 그 사건의 일부가 될 때 주님은 보이지 않는세계를 볼 수 있는 법을 가르치고 계신다. 기적은
가정교사이고 우리에게 다른 편에 존재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기적을 체험하고 나서 과거와
똑같이 의심하고 불평하고 투덜거린다면 그건 주께서 주신 정거가 내 생각을 충분히 바꾸도록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청년의 부러진 팔을 보았을 때 생각
속에 내가 보았던 기적의 간증들로 가득 차는대신 두려움이 업습했다. 내가 의사를 불렀을 대 다른 모든
이들의 눈에는 지혜로운 처사로 비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셨고 나도 알았다. 이것이 두려움 때문이란 사실을…. 때때로 두려움이 지혜의 모습으로
가장한다.
모든 일이 잘 풀릴 때에는 여러분과 내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정신에 가장 투철한 사람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고침 받고 구원 받는 일을
목격하며, 훌륭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하지만 집에 가다가
차자 망가져서 갑자기 300만 원이 들어가고 컴퓨터가 망가지고, 전화기가
고장 나고, 이웃 사람이 화를 내는 일이 벌어지면, 관연
어떤 누룩이 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런 환경의 불이 확연히 드러낸다.
말라지
3장 2절은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다”고 말씀하며 말라지 4장 1절은 또 이렇게 말씀한다. “보라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주님은 어떤 영향력을 받고 있는지 드러낼
일련의 사건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그때 우리는 좋든 싫든 분명히 그 영향력이 무엇인지 보게 될 것이다.
어려움에 대처하는 나의 반응이 항상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면 좋겠다. 내 마음과 생각이 바른 방향을 잡는 데 하루나 이틀이 걸릴 대가 있는가 하면, 때론 단 몇 분만에 되기도 한다. 하지만 종종 너무 괴롭고 신경질이
나며 걱정이 밀려오는 때가 있다. 성경적으로는 그럴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난 항상 그 점이 이상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값 주고 사셨다고 내게
독생자를 주셨고 모든 것을 마음껏 주셨는데 내가 왜 그렇게 걱정하고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을까? 헤롯과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내 영혼 속에 작동하며 주변의 압박이 그 누룩으로 부풀어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사고로는 항상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은 여러분과 내가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고방식에 순응할 때, 우리가 주님의 상상력을 받아들이며 “네”라고 말할 때 작동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 나라의 누룩, 천국의 영향력으로 가득 채우길 원한다. 우리는 기적을 원하며 또
이런 기적들이 우리에게 완전히 영향을 마침으로 우리가 보고 행동하는 방식이 변하되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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