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2009

하나님의 뜻4 - 무조건적인 뜻과 조건적인 뜻

무조건적인 뜻과 조건적인 뜻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떻게 이루어지지 않는가?"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을 보니 하나님의 뜻이 아닌 모양이다.”

“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운명론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의지적인 뜻 중에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될 일이 있고 사람의 협력 여부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 일도 있다.

가. 무조건적인 뜻  - 이제 곧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모든 사람이 백보좌에서 심판을 받은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일들이다. 성경은 반드시 이루어질 일에 대해 기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 1:1).

나. 조건적인 뜻 - 그러나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축복과 재앙의 약속은 받는 사람의 순종과 회개 여부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성경을 보면 비록 하나님의 뜻이지만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었다.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출 3:17).

그러나 계속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 출애굽 제1세대 중에서는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죽어갔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이 소망이 100%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벧전 3:9).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경우, 개인이나 단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 사람의 순종 여부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좋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더라도 마음밭이 옥토가 되어 계속 키워나가지 않으면 열매를 맺기 어렵다.

물론 은혜가 풍성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가 한 두 번 불순종했다고 해서 약속을 쉽게 거두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신 것은 한 두 번의 불순종 때문이 아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는커녕 번번이 자기들의 육신적인 요구가 채워지기를 원했으며 마침내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원망했을 때 하나님은 단호하게 그들을 버리셨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마음이 미혹되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의심하고 시험한 결과 하나님의 혐오감을 자아내어 일주일이면 통과할 광야를 40년 동안이나 빙빙 돌다가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그 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 내가 사십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시95:9-10; 민14:21-23 참조). 



한편,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를 통해 니느웨성의 멸망을 선포하셨다.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 3:4). 그랬더니 그들은 왕으로부터 전 백성에 이르기까지 회개한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였다. 

이처럼 개인, 단체 또는 국가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은 대부분이 '조건적'이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순종 여부에 따라 성취 여부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속의 말씀에 계속 불순종하면 축복의 약속을 거두시고 또한 불순종하였더라도 회개하면 그 약속을 다시 돌이키기도 하신다.

*소명에 대한 부르심은 취소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임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거역하는 자는 늦어도 하나님이 반드시 부르시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니느웨 성에 복음 전하는 것이 싫어 도망갔다가 다시 불려온 요나처럼, 어떤 사람은 삼십대 후반에 소명을 받았는데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가 오십 대가 넘어서야 코가 끼여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르심은 거역해도 부르시는 경우가 많지만 축복의 약속은 순종 여부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우리 중에 순종하지 못하여 축복을 놓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구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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