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한 사람은 항상 상사의 뜻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일을 하였기 때문에 야단을 맞았고 다른 사람은 항상 ‘상사의 뜻’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일을 하였기 때문에 번번히 칭찬을 받았다. 둘 다 업무 수행 능력은 비슷했지만 어떤 관점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일을 하느냐의 차이로 인해 유능한 사원과 무능한 사원으로 구분된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내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라는 구분만 분명히 하여도 우리는 많은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신앙 성장은 이런 죄, 저런 죄 한 두 가지를 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사고 방식, 가치관, 세계관이 성경적으로 바꾸어져야 한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어떤 특정한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전혀 성경과는 상관 없는 말을 하는 것을 많이 본다. 이것은 사고가 아직도 세상적인 가치관에 젖어있다는 증거이다. 결혼, 자녀 교육, 재정 등 등. 이런 주제에 대해 성경적인 견해나 가치관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가진 신자들이 많지 않다.
그렇게 오랫동안 교회 다니고, 성경 공부, 말씀 공부, 이런 훈련, 저런 훈련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적, 인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말씀 묵상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꾸는 훈련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씀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성경적 가치관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세상적 가치관은 소유, 군림, 눈에 보이는 것, 물량, 업적, 과시를 중시한다. 그러나 성경적 가치관은 소유 보다는 관계, 군림 보다는 섬김,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적 가치, 물량이나 업적 보다는 마음의 동기, 과시 보다는 은밀하게 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러나 교회도 세속화 되다 보니 세상적인 성공을 영적 부요로 착각하여 신자들도 자연스럽게 물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적 가치관에 의해 '자기 뜻'을 정해 놓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왜 하나님이 기도 응답하지 않느냐고 의아해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말씀 묵상을 통해 끊임 없이 자신의 사고방식을 하나님의 그것으로 바꾸어 가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또한 잘 순종하는 사람이 된다.
(*이 내용은 ‘묵상 기도’에 있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
-자신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생각보다 깊고 높다. 개인의 직접적인 필요 위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놓치기 쉽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말씀 묵상을 통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항상 개방적인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하나님의 높은 뜻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인도와 안내의 원천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 내 방법으로 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기 쉽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벧전 4:11).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일반적으로 사람의 생각은 추리와 경험에 의해 얻어진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면 과거의 경험과 논리를 바탕으로 일을 처리하기 쉽다. “아, 과거에 이런 예가 있었죠. 그때 이렇게 처리했으니 지금도 이렇게 처리하면 되겠죠” “그렇지, 지난 번에 이런 일이 있었지. 난 그때 이렇게 처리했지. 이번에도 이렇게 처리하면 되겠군” 이처럼 사람은 전례에 따라 생각하고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전통이 생기고 소위 말하는 교단의 “법”이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이와 다른 경우가 많다. 가능하면 전례를 따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그렇다고 모든 것을 이런 식으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율과 전례에 지나치게 매이다 보면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놓치기 쉽다는 말이다.
-믿음이 자란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말씀을 그냥 많이 읽더라도 믿음이 자란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숲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무 하나하나를 살피듯 중요한 구절 하나 하나를 꼭꼭 씹어서 먹을 때 우리의 신앙이 균형 있게 건강하게 성장한다. <구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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