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2009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얼마 전 뉴스을 보니, 일반 은행은 소액대출은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이자가 비싼 사채를 빌려 써서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로 은행도 저리에 소액 대출을 해준다는 사실을 밝혔다. 물론 은행의 홍보가 미흡했지만, 차용자들이 선입견으로 알아볼 생각도 않고 나름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신자들이 말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지만 내심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여러 가지 편견이나 오해를 하거나, 그 결과 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내 소원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살펴본다).

-사소한 결정도 하나님의 확인을 받아야 할 것이다.
사소한 경우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하고 기대하면서 본인 자신의 자유 의사로 결정하면 된다.

-하나님의 뜻에는 논리성이 없다.
변증학에서는 하나님의 논리가 ‘궁극적인 논리’라고 말한다. 내 논리가 잘못된 것이지 하나님의 논리가 잘못된 것이다. 이런 사람은 내 시각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꾸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엉뚱하고 괴기하다.
‘만일 내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하나님은 당장 나에게 고난이나 질병을 주시고, 오지의 선교사로 가라고 하실거야’

‘하나님은 졸졸 따라다니면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나하나 방해하는 분이야’라면서 하나님은 마치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가 이전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축복을 주시기 위한 연단이었다. 하나님은 나의 그릇을 키우시기 위해 내가 생각하지 못한 훈련을 시키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길 힘을 주시고, 피할 길을 주셔서 오늘에 이르게 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이것은 위의 경우의 반대 입장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뜻대로 사는 것이 힘들 때도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힘들어서 타협하고 양보하고 절충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결국에는 승리하여 더 많은 축복을 누리기도 한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혼자서도 일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사람의 협력을 통해서 일하신다. 일반적으로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당사자의 순종과 불순종 여부에 따라 성취의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 내가 뒷짐 지고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지만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한 이스라엘은 여리고성, 아이성 등 한 성, 한 성 전쟁을치르면서 점령해 나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고 남녀노소를 진멸하라 했지만 그들이 소위 말하는 3 D 직종으로 일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유익을 주었다고 해서 같이 데리고거주하다가, 결국은 그들이 섬기는 신들로 인해 하나님을 버리는 배교의 길로 들어서서 주변 민족들의 침략을 당하는 고난을 수시로 겪었다. 또한 단 지파 족속들은 그들에게 할당된 땅을 정복하지 않아서 결국은 12 지파의 이름에도 끼이지 못하고 말았다(삿 18:1; 계 7장).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도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내가 순종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무효화 되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내가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나의 육신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다. 특히 ‘은사주의적 신자’들 중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멘,’ ‘할렐루야’하면서 은혜 체험하고 능력 체험하면 만사가 다 된 줄 알고 실제 생활을 챙기지 않거나 규모가 없이 생활하여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신령한 것을 채워주시기도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있다. 은혜 충만 성령 충만하다면서 시간 약속 제대로 안 지키고, 소속 단체나 관공서의 행정 요구를 무시하거나,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면서 계획 없이 돈을 함부로 지출하거나, 하나님이 돌보아 주신다면서 비상 대책이나 노후 대핵을 세우지 않거나, 집안이나 일터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 보다 많다.

최봉석(권능) 목사가 평양신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학기말 시험을 치루는데 전날 밤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기도만 하였다. 다음날 시험을 치루는데 문제를 받아놓고 보니 도무지 답안이 생각나질 않는다. 할 수 없이 시험지를 놓고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나 여전히 머리는 공허하기만 했다. 당황한 최봉석 학생, "시험은 성령께서도 쩔쩔 매시는 것을 몰랐었군!"이라고 하더라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다.

어느 교포 목회자가 개척 교회에 초기에 영어을 못하여 청년부를 인도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도움을 구하기 위해 삼일 금식을 했더니 응답은 “네가 하라”였다. 이후 그는 미국의 유명한 목사들의 영어 설교를 듣기 위해 시간이 나는 대로 귀에 이어 폰을 꽂고 다니면서 영어 공부에 전렴했다. 이렇게 하기를 일년 정도가 지니자 그의 귀가 열리고 입이 열려서 이제는 유창하게 영어 설교를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는 외국 사람들의 성령, 영성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감탄한 적이 많다. 우리는 흔히 영성사역, 성령 사역하면 사람이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고, 성령님의 역사하심만 기다리는 것으로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서양은 세미나나 컨벤션 문화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비록 성령사역 세미나이지만 참가자 등록부터 관리 및 진행까지 모든 것을 철저한 사전 계획을 통해 진행하고, 참가자들에 대한 주의사항, 필요한 사항을 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오히려 실제 세미나에서는 성령께서 마음 대로 사역하시도록 개방해 놓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 최대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이루어진다.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어겼을 때 심한 심판이 임할 것이다.
심한 심판이라기 보다는 내가 누릴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혹시나, 혹시나’하면서 하나님의 뜻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정도 벗어나면 어떻게 하실까,’ ‘저 정도 벗어나면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7-9).

필자도 한 때는 너무나 피곤했다. 아무리 타협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행한다고 했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피곤하지 아니하고 때가 되니 신령한 축복의 열매들을 거두게 하셨다.
한 두 개가 아니라 우후죽순-비온 후에 대나무 순이 많이 솟아나는 것-처럼 무더기로 거두게 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잠시 피곤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서 잠시 낙을 누리는 것보다 100배 낫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잠 16:1).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구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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