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2009

하나님의 뜻6 -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태도(2)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태도(2)
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마 26:42; 마 6:10, 33).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마 26:42-43)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그럴 때 하나님의 늘 함께 하셔서 형통한다(요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나.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이루어야 한다(4:13; 벧전 4:11).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벧전 4:11).

내 열심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시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늘 자신의 속을 살펴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욕심, 교만, 시기, 증오, 분노, 거부감의 쓴뿌리를 늘 제거해야 한다.

다. 온전하신 뜻을 행할 때 기쁨과 평강이 임한다(롬 2:9-10; 8:5-6)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롬 2:9).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6).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불안, 초조, 답답함, 두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 온전하신 뜻을 행할 때 영적, 신앙적으로 성숙한다(히 5:13-14).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 5:13-14).

그러므로 진정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 의지를 선한 목적으로 사용하여 내 뜻, 내 소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섬기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더 나아가서 지역이나 국가를 향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성숙한 신앙인은 기도 제목조차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그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예언적 기도라고 한다. 예언해 주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 제목을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적으로 받는다는 말이다. 그럴 때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더하여진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음성을 들을 때도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과 허용하는 뜻을 구분하는 영적 안목이 필요하다.

마. 온전하신 뜻을 행할 때,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늘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고, 첫 사랑을 유지하고, 열심을 낸다(요 15:6-7, 10; 요일 4:16-17; 계 2:4; 3:19).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0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거하리라 (요 15:6-7).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은, 신앙을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자발적인 순종이 아니라 딱딱하고 비인격적인 규정과 행동의 준수로 전락시킨 것이다.

이는 신랑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불꽃 튀는 인격적인 교제가 아니라 규정과 고백과 행동 강력으로 전락시킨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신앙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요일 4:16-17).
 <구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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