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2010

기름 부으심과 적그리스도의 영 - 빌 존슨


그리스는 예수의 성()이 아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 혹은 메시아”란 의미로써 어떤 경험을 일컫는 직함이다. 예수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실 때 직함만 가지고 와서는 부족했다. 그는 아버지께서 원하셨던 일을 성취하기 위해 기름 부음 받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기름부음(anointing)이란 말은 “기름을 붓다”는 의미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기름(oil)으로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위에 부어졌다(3:21-22참조).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에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시대마다 교회를 몰래 파괴시키려는 또 다른 영이 있었다. 이러한 세력에 대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불렀다.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요일2:18).

적그리스도의 영의 성격은 그 이름에서 드러난다. ‘(anti)’이란  말은반대하여(against)’  뜻이고그리스도(Christ)’기름부음 받은 자(Anointed One)’란 뜻이다. 예수는 그의 어린 시절을 인간의 한계 속에서 사셨다. 그는 그가 지닌 신성을 제쳐놓고(2:5-7참조) 오직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임무를 완수하는 일에만 힘썼다.

  임무란 인간의 삶을 살되 죄가 없는 삶을 살다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 일이었다. 이 일은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의 핵심이었을 것이다. 죄를 위한 대속 희생제물은 양(힘이 없는)이어야 했고, 또한 흠이 없어야(죄가 없는) 했다.

예수께서 받으셨던 기름 부으심은 그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입혀주셨던 필수 장비였다. 그는 인간을 구속해야 했을 뿐 아니라 아울러 아버지를 나타내야만 했다. 그럴 때 하늘이라 불리는 아버지의 세계를 이 땅에 펼칠 수 있었다. 그 일은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기름 부으심은 인간 예수를 하나님과 접속시킴으로써 마귀의 일을 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기적적인 방법들은 무엇인가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장차 그리스도께서 구속되는 날 인류가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늘(초자연적인 세계)은 인류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현재형으로서의 하늘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보여지고 있다.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 말씀은 천국이우리의 영원한 처소가 아니라 지금 누릴 수 있는 실체이며 우리 손이 닿을 수 있는 여기에 와 있다는 의미이다.

기름 부으심예수께서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성령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사명이란 아버지의 일은 온전히 이루는 것이었다(4:34).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그 기름 부으심에 의지했다고 한다면 우리 역시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일을 하기 위해 성령의 임재가 분명히 필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뒷장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지금 여기서는 우선 초자연적인 사역을 위해 성령으로 옷 입혀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해는 것이 중요하다.

구약에서 기름 부으심은 사역을 담당한 제사장들에게 주어졌고, 예수님의 예를 보듯이 신약 사역도 마찬가지다. 기름 부으심은 초자연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기름 부으심은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만을 행하고 말씀하신 것만을 말할 수 있도록 했다. 아버지를 그에게 나타내주신 분이 바로 성령이셨다.

예수라고 하는 이름에 붙여진 의미와 더불어 그분의 구속 역사를 훼손하기 원하는 사람에게는적그리스도라는 이름 보다는적 예수라는 이름  더 적합한 것 같다. 사이비 봉교조차도 예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며 최소한 선생이나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하나님의또 하나의아들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끔찍한 잘못들 때문에 이런 종류의 대적하는 영을 적그리스도[‘적 예수라 했을 때는 인간 예수를 부정하는 것이지만, ‘적 그리스도라 할 때는 기름부으심에 반대하는 의미가 강하다. 사이비 종교들은 인간 예수는 인정하되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부정하므로적 그리스도라 부르는 것이다. 교회 안에적 예수는 없지만 기름부으심을 부정하는적 그시스도가 역사를 통해 늘 있어왔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성경은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다]라 부르는 것이다.
지옥의 영들은 기름 부으심에 대적하여 싸우고 있다. 왜냐하면 기름 부으심 없이 인류는 어둠의 왕국에 대해 아무런 위협도 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관심에 대해서는 많은 찬사를 보내왔다. 그분의 겸손은 존경을 받아왔지만 실제로 초자연적인 역사를 이룬 것은 기름 부으심이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셨던 부분에 대해 종교 지도자들은 거부했다. 이러한 기름 부으심은 성령 그분께서 어떤 사람 위에 실제로 임하여 그 사람이 초자연적인 일을 하도록 무장시킨다.

예수께서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2)고 말씀하셨던 것을 보면 성령 하나님께서는 매우 존귀하게 여김 받으셨다.

능력있는 사역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았던 것은 성령의 능력 사역 때문이었다. 그들은 말과 행동에 있어서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이끌렸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의 폐부를 찔렀고 그분의 행동은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겸손한 자의 삶을 영원히 바꿔놓는다. 하지만 교만한 자들을 심히 불편하게 하고 그들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만든 것 역시 성령의 능력 사역이었다. 얼음을 녹이는 태양이 진흙은 굳게 만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에 따라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고 우리는 그분을 닮았다. 모든 신자들은 그들의 영적 DNA 속에 초자연적인 역사에 대한 갈망이 새겨져 있다. 우린 이 예정된 삶의 목표를 감지하고 있다. 하나님께로 나온 이런 열망은 이것을 멀리하라고 가르침을 받거나 혹은 이성적으로 따질 때, 아니면 초자연적인 일들이 실제로 행해지지 않거나 실망함으로 더 이상 이런 일을 하지 않으려 할 때 희석된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오늘날도 역사하여 신자들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거부하도록 영향을 미친다. 그 형태는 다양한 종교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근간에는우리가 조정할 수 없는 것은 거부한다고 하는 의식이 바닥에 깔려있다. 이런 영은 복음을 단순히 지적인 메시지로 전락시키면서 초자연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부정한다.

만일 그런 능력이 과거에 일어났다면 그건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때때로 다른 먼 곳에서 일어났을 때 그것을 문제 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은 하나님 능력의 기름 부으심이 현재 이곳에서 일어난다고 했을 때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이런 영들은 인간에게 있는 믿음(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요소)에 반하여 역사한다. 믿음이란 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주 안에 국한시키려고 하고 있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종교의 영이 일어나게 만든다. 종교의 영은 성령 대신 자신의 인도함을 받도록 대치시키는 마귀적인 역사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계속적으로 만날 수 있다. 종교는 어떤 개념을 우상화하고 개인적인 체험을 무시한다.

현재 우리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대신 과거에 있었던 역사만을 높이도록 만든다. 이런 영은 과거 부흥시대의 잔재를 먹고 산다. 이런 영이 가장 즐겨 쓰는 전술은 과거 성령의 역사로부터 배운 이념들을 화석화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종교의 영은 눈물은 인정하지만 웃음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또 하나의 우상숭배이다. 성령과 성령의 능력 있는 사역을 대신하고자 하는 그 모든 것 뒤에는 반드시 이런 영들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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