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은 하나님 아나 메시지의 중심이다. 왜냐하면 부흥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림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똑똑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부흥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흥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메시아가 오기 전 종교 지도자들은 그의 오심을 위해 기도했고 가르쳤다. 전
세계적인 태동이 있었고 심지어 세속적인 사회에서 조차 무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예수가 태어나셨다.
점성가들은 그가 누군지 알았고 먼 길을 여행하여 그를 경배하고 그에게 선물을 드렸다. 마귀도 이를 알고 헤롯을 충동하여 장자들을 죽임으로써 인류를 구속하려는 예수의 계획을 멈추려 했다. 이 일이 실패하자 마귀는 광야 시험을 통해 예수께서 죄를 짓도록 유혹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일을 귀신들린 자들도 알아 차렸다는 것이다. 가다라 지방 사람이 그러했다. 그가 예수를 보았을 때 그는 예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곧 고통의 삶에서 놓여놨다. 하지만 그의 오심을 기도했던 종교 지도자들은 그가
오셨을 때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바울과 실라는 소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니며 말씀을 전했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이 마귀로부터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귀신들린 점치는 소녀는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했다. 어떻게 영적으로
무지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보는데, 통찰력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감지하지
못했는가?
하나님이 오시기를 위해 기도했지만 정작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놓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 속에
가득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은 하나님과 강한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에게도 일어났다.
다른 종류의 소경 – 많은 신자들 가운데는 세상 사람에게는 없는 종류의 소경이 있다. 세상은
무엇이 부족한지를 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일단 거듭나게 되면 점차 그들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하게 된다. 어떤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가늠케 해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다. 예수께서 이런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려 함이라”(요9:39)
역사의 증언과 성경의 기록은 우리에게 이런 실수의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마태는 마음이 완악해져서 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마13:15). 칼이 무뎌진 것이다. 완악한(둔해진) 마음이란 과거 하나님 안에서의
역사는 있지만 현재 하나님이 무얼 하시는지는 따라잡지 못한 마음이다.
우리가 계속 우리의 필요를 인식하면서 열정적으로 예수를 좇을 때에만 우리는 무뎌지지 않고 계속 날이 서있을 수
있다. 이러한 첫사랑만이 우리를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우리를 계속 안전하게 남아있도록 지켜준다.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안에는 예수께서 그들이
처음 사랑에서 떠났다고 말씀하신 내용이 적혀있다. 처음 사랑이란 그 성격상 열정적이고 그 밖의 인생의
다른 문제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다. 그런데 만일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촛대’(lamp stand)를 옮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촛대가 무엇인지에 대해 신학자들은 여러 가지고 말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촛불은 우리로 볼 수 있게 한다. 위에서
말한 소경이나 둔해졌다는 것이 반드시 지옥으로 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의도하신 바를 다 성취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 열정이 식으면 인식의 촛불은 결국 사라지게 된다.
어떻게 성도들이 하나님의 움직임을 놓치게 되는가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20세기 초반부터 하나님의
위대한 성도들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그는 위대한 선생이었고 기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부흥을 위한 그의 부르짖음은 전설적이다. 그가 1904년도 부흥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웨일즈 지방을 방문했을 때 그는 하나님 임재의 위엄에 깊이 감동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곳에 더 머무른다면 부지중에라도 하나님 역사의 순수성을 더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곳을 떠났다. 그는 그가 그동안 기도해
왔던 부흥을 향해 계속 밀며 나아가지 않았다.
하나님의 움직임은 보통 어떤 결함이나
오점과 함께 온다. 거기에는 매력도 없고 어떤 이들을 불쾌하게까지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방언은
20세기 부흥의 오점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받아들이기를 꺼렸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요
성경 주석가인 깸벨 모건(G. Campbell Morgan)은 오순절 부흥을 거부하면서 그것을 지옥의
마지막 구토라고 까지 불렀다! 비난을 감수하는 일은 종종 부흥 가운데를 걸어가기 위한 요구조건이다.
사람은 일달 거듭나면 치욕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을 추루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신자들이
하나님을 놓치는 것은 간절함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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